“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 수 밖에”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 수 밖에”
  • 양재영
  • 승인 2014.08.0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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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밀알연합 이재서 총재

“내게 실명은 축복이었다. 내게 남은 1%가 나를 살렸다”

1979년 10월 총신대 3학년 재학 시 한국밀알선교단을 만든 세계밀알연합 이재서 총재의 인생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25일 ‘밀알선교단 창단 35주년 기념 및 새로운 리더십 취임 감사예배’에 이재서 목사는 세계밀알연합 총재 자격으로 새로이 취임하는 밀알 리더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석했다.

   
▲ 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 © <뉴스 M>

“절망 한가운데서 건진 빛”

이 총재의 고향은 전라남도 승주군이다. 그가 황전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쯤 뒤 원인불명의 고열을 앓은 후 실명하였다. 크게 좌절하고 방황했지만 이후 마음을 다시잡고 1968년 국제서울맹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교복입고 학교 다닐 때 저는 낫을 들고 농사일을 해야 했죠. 그러더니 그 해 겨울 고열을 앓은 며칠 후부터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더니 두세 달 사이에 급격히 나빠졌어요. 할 수 있는 모든 처방은 다 해봤지만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실명이었죠. ‘왜 나에게 이런 절망이 찾아왔을까?’라는 생각에 정말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공포 속에 죽음까지 생각했으니까요.”

서울맹학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였다. 점자를 익히고 새로운 글자를 읽혀나가면서 조금씩 글을 쓸 줄 알게 된 무렵 한 목사님의 말을 통해 시각장애에 대한 새로운 혜안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각을 잃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토록 하고 싶던 공부를 하면 기쁠 줄 알았는데, 시각장애의 현실에선 그렇지 못했죠. 그때 한 목사님이 시각장애인은 비록 육안은 잃어버렸지만, 지혜를 분별하는 지안과 다른 이들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심안,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영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저에겐 시각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소망을 꿈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꿈은 인내로 움직인다”

그는 장애인 선교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1977년 총신대학에 입학을 한 후, 3학년 때인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한다. 이후 1984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필라델비아 바이블 칼리지(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편입하여 학사학위를, 이어 템플(Temple)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행정으로 석사학위(M.S.W.)를 받고, 1994년 5월 루트거(Rutgers) 대학에서 사회복지정책 전공으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한다.

“강원도에 성광원이라는 시각장애인 촌락에 ‘하계봉사단’을 결성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 마을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서였죠. 그 봉사단이 계기가 되어 밀알선교단을 만들었습니다. 밀알선교단은 서서히 자리를 잡았고, 5년 쯤 지났을 때 미국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개월 어학연수비자를 가지고서 떠난 미국 유학은 말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 자료사진 © <뉴스 M>

그는 미국 유학 중인 1987년 필라델피아 밀알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워싱턴, LA, 뉴욕 등 미주 전역에 밀알 지부를 세웠고, 1992년에는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미주밀알선교단을 출범시켜 미연방 정부에 등록하였다. 1995년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세계 여러 곳의 흩어져있던 밀알들을 통합해 세계밀알연합회를 출범시켰다. 세계밀알연합회는 현재 세계 28개국 총 100여 선교지에 지단 및 지소를 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거대 조직이 되어 장애인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5년 전에 밀알이 시작됐지만, 시작은 그날 저녁이었지만, 그날 저녁이 있기까지 많은 시간과 아픔이 필요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밑거름이 되어 밀알선교단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까 시작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시작할 때 가졌던 초심, 처음 가졌던 생각과 정신을 지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5년을 쭉 반추해보면 많은 부분에서 노력을 기울였지만, 제 나름대로 가장 많이 애썼던 것을 말씀하자면 저는 당연히 처음생각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쉽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신학과 장애인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

이 총재는 지난 밀알선교단 설립 3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에 ‘장애인신학’을 주창하고 나섰다. 국내 신학자들과 함께 엮은 신학논문집 ‘신학으로 이해하는 장애인’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 개선’과 ‘새로운 장애선교 패러다임’을 주장했다.

“아직도 장애인을 구제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한 현 시점에서 성경적으로 건강한 시각을 제시하고,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바로 잡기위해선 ‘장애인신학’을 실천신학 범주 안에 정립이 필요했습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장애인들의 복음화를 높이기 위해선 장애인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반드시 신학적 정립이 필요했던 거죠.”

   
▲ 이영선 미주밀알 총단장과 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 © <뉴스 M>

그는 이번에 새롭게 취임한 미주밀알 이사장 김영길 목사와 남가주 밀알 이사장 남성수 목사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전하면서, 새롭게 미주밀알 총단장으로 부름 받은 이영선 단장과의 남다른 인연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모두들 소중하고 감사한 만남이었지만, 무엇보다도 15년 전 이영선 목사님과의 뉴저지에서 만남은 많은 동역자들을 만났던 그 기쁨과 보람, 축복에 비해서 정말 소중했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남의 결실들이 남가주에서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이 총재는 한국이나 남미, 유럽에 비해 미주가 가진 여러 가지 측면의 편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주가 밀알이 추진하고자 하는 기도제목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을 담당했으면 하는 바램을 말했다.

“밀알의 과정적 목적인 세계 천 곳에 밀알 사역지를 세우자는 기도제목을 이루어가는 소중한 전진기지로 미주가 그 역할을 담당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금년 10월이면 밀알 창립 35주년이 되는데, 미주 뉴스앤조이가 밀알을 총괄적으로 평가해주는 사역을 담당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수줍은 듯 밀알의 비전을 말하는 이재서 총재의 표정은 그의 저서 <내게 남은 1%의 가치>에서 했던 ‘실명은 내게 축복의 통로였다’라는 고백처럼, 99%를 잃은 후에도 남아 있는 1%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왔던 삶의 여정을 계속해 나아갈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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