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이순신장군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 양재영
  • 승인 2014.08.16 11:12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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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기 2014-08-29 23:35:08
저는 몇년간 교회 분란을 겪으며 구원관이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목사님께 알리지 않은 "팀장회의"를 하고 익명으로 교인 전체에 목사님을 헐뜯는 편지를 보내고 계속 나쁜 소문들을 퍼뜨리며 교인들을 선동하다가 어느 한 날을 기하여 교인의 반이 갑자기 예배에 나오지 않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벌써 3~4년 전의 일이네요.

그 사람들은 떠나서 새 교회를 세웠는데... 저는 그때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 안의 불신자들"에 대해서 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주여주여 하지만 교회 안에서 희생과 결단의 순간이 오면 꼬리를 내리고 자신의 체면을 위해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 아무리 봐도 세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것 같지 않은데, 그들은 또 교회를 세우고 봉사하며 또 싸우다가 찢어짐을 반복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전통적으로(?) 계속 반복되는 일입니다. 과연 이들이 구원을 받을 믿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오랫만에 와서 참 좋은 기사 보고 갑니다. 세 목사님들의 의견이 다 일리있고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나중에 존경하는 목사님께 여쭈어 봤을때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었습니다.

제 눈에 믿음이 없는 것으로 보였던 그 사람들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언젠가 회개하고 참 믿음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자신의 믿음과 구원에만 신경써도 힘든 판국에 남을 판단하고 그들의 구원에 대해 신경썼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하두 이상하게 변해서 혼란이 컸었나봅니다. 어쨌든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진한 커피 2014-08-23 07:09:15
이순신 장군은 안타깝게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하고 범죄한 아담 안에서 출생하여 생을 살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록 이순신 장군이 인간적으로 의로운 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원한 죽음의 저주를 받은 아담 안에 있었으므로 영생할 길이 없었습니다. 오늘 날의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두 번째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으신 두 번째 아담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류, 죄 사함을 받은 재 창조된 인류에 속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과 알 수 없었던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이순신 장군은 아타깝게도 타락한 아담 안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루이스 [3] 2014-08-20 12:26:21
그렇다고 마냥 불가지론적이지도 않다. 베드로나 바울 그리고 요한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다가 구원에서 배제된 것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의 사역’ 때문에 구원받은 것은 알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이제 자신의 몫이 될 것이다. 구원에서 여러 시제가 있지 않는가.
아는 것 한도 내에서 옳다 그르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해한 잣대를 가지고 인간의 상황과 현실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물론 만인구원설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구원에서 배제되는 잣대를 선명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처럼 어느 누구라도 구원에 열려 있음을 선포하고 동참케 하는 것이 아닐까?

루이스 [2] h 2014-08-20 12:25:18
구원을 말할 때 지성을 가지고 상식을 가진 인간이 복음을 듣고 반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 장애인시설에 있는 정신박약아와 지체부자유아들은 도저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죽어가는 신생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사야에 등장하는 자들은 어린 양 어린 염소, 어린 사자, 어린 아이, 새끼, 젖 먹는 아이, 젖 뗀 어린 아이들이다. 이사야가 그리는 그림은 마냥 상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성이나 이해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모두가 구원에 참여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구원에 배제된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는 내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동일하게 복음을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김세윤 교수님의 일반 은총은 칼빈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인간에게 미치는 것이며, 그들도 하나님의 은총을 자신의 분야에서 발한다.

요는 구원에 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참으로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구원 자체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것(욘2:9)이기에 우리의 이해 범주로 잣대를 삼기에는 신비적인 부분이 많다. 레슬리 뉴비긴의 설명처럼, 주님이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구원받은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 모두가 놀라워하는 마지막 날의 재판장은 하나님이시며 다른 어떤 이도 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은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창18:14) 말씀하셨고,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란 질문에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고 대답하셨다. 뉴비긴은 ‘정말로 신중한 신학자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구원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루이스 [ 1] 2014-08-20 12:23:26
20-30십년 전 대학교 시절에 한 후배 여동생이 근무하는 장애인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렇게 심각한 아기와 아이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기억이 조금 가물 하지만, 태어나서 1달을 사는 아기, 1년을 견디는 아이, 머리가 커서 늘 누워있는 아이, 한 번도 자기 손으로 식사를 한 적이 없는 아이, 대부분이 중중의 장애를 가진 아기와 아이들이었다. 그 당시 후배의 여동생은 한 어린 아기를 10여일 간호하였는데, 그 아이는 결국 세상을 보지 못하였다. 이런 일들을 계속해서 겪어왔고, 또 겪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었다.

여러 마음이 교차하는 때에 후배가 질문을 하나 하였는데 이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형, 이 아이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실까요?” 그 때 드는 성경구절이 이사야의 말씀이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 해 됨과 없고 상함이 없는 그 나라가 올 것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