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키운 비밀의 세월
바울을 키운 비밀의 세월
  • 김기대
  • 승인 2014.05.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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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사도 바울] 페인티드 베일

다마스커스에서 삶의 방향을 전환한 바울은 유대교 회당에서 그의 경험을 전하면서 자칭 사도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바울은 그때까지 예수께서 행했던 이적이나 선포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강렬했던 경험으로부터 예수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선포할 수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사도행전 9:20~22)라는 선포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결국 바울은 아라비아로 도망치듯 떠났다가 약 3년 뒤에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온다. (갈라디아 1:17)

그러나 다마스커스의 냉냉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바울은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찾는다. 그곳에서 사도들과 사귀려 했지만 사도들은 열정만 가득해 보이는 바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바나바의 중재로 어렵사리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기는 했지만 (갈라디아 1:18-19) 베드로와 15일 정도 함께 지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바울은 고향인 다소로 다시 돌아간다. (사도행전 9:30)

이후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로 부임하면서 바울을 데리고 간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체류한 뒤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한다. 전도 여행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는데, 여기서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역할이 분담된다. 예루살렘의 첫번째 방문 당시의 어색함을 기억한다면 약 14년으로 추정되는 바울의 비밀의 세월은 1차 전도 여행 기간과 함께 바울과 베드로의 어깨를 나란히 만드는 시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14년의 기간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바울이 갈라디아 1:15-16에서 소명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사야 49:1,9 예레미야 1:5와 같은 소명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갈라디아 1:24, 2:2 에서도 각각 이사야 49:3~4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샌드니스(Karl O. Sandness)의 주장이고 장로회 신학대학의 김철홍 교수도 이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

김철홍 교수는 아라비아는 로마 행정국역 나바티안 왕국(Nabatean)의 사막지역이고 이사야 42:11의 예언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아, 게달 사람들이 사는 부락들아, 소리를 높여라. 셀라의 주민들아, 기쁜 노래를 불러라. 산 꼭대기에서 크게 외쳐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은 회심때부터 선지자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바티안 왕국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예루살렘 방문뒤의 다소 생활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14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아라비아 생활 3년을 포함한 세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3년의 포함 여부는 제쳐 놓고라도 다마스커스 회심 이후 무려 14년에서 17년 사이에 바울의 행적이 모호하다(1차 전도 여행기간이 있기는 하지만). 샌드니스나 김철용 같은 학자들이 비밀의 세월을 찾아낸 것은 예언과 성취라는 성서의 맥을 놓치지 않으려는 학문적 수고의 결과다. 하지만 성서에서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설득력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이러한 수고는 다마스커스에서 경험한 바울의 회심을 유일한 즉 그 자체로 완성도를 지닌 사건으로 명토박아 두기 위해서이다. 사도바울은 그때부터 이미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14년은 비밀의 세월이 아니라 성서에만 나오지 않았을뿐 나름 선교활동을 했다고 봄으로서 다마스커스 회심 부터 바울의 사도적 역할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기록없이 비밀의 시간으로 남겨 두었을까? 이방인의 사도라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공식 결정이 있고서야 그가 지역 교회에 편지를 쓰기 시작할만큼 바울이 사도들의 권위를 존경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바울은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2:6)

바울은 구원파가 아니야

바울은 이 기간 동안 회심 이후 다마스커스에서 쫓기듯 나온 경험을 반추하며 명상했을 것이다. 아라비아라는 척박한 땅에서 율법도 복음도 모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 즉 낮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예수의 전도 방법을 터득하며 아직 그에게 남아 있는 배설물과 같은 옛것들과 씨름했을 것이다. 3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시큰둥한 대접을 받자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바울은 이제는 고향 다소로 가서 기초부터 차근 차근 짚어 나간다. 그리고 또 긴 세월이 흐른 뒤에 바나바의 부름을 받고, 안디옥 사역과 이후 전도여행을 마친 뒤 베드로 앞에 자신있게, 아니 그를 키운 바나바의 문제점을 지적할 정도로 당당한 사도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가 비밀의 세월 동안 선교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구약에서 예언된 것들을 성취하는 과정을 겪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마스커스에서 경험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명상과 수행, 수많은 번민과 기도의 시간으로 채워졌던 비밀의 세월이 다마스커스 구원 체험을 깎아내리는 것이라면 한 번의 구원체험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구원파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마스커스 사건은 그것 대로 의미가 있고 이후 바울에게도 성화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 산골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부부는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 영화의 한 장면.  
 

페인티드 베일(존커란 감독, 2007년)

키티(나오미 왓츠 분)에게 첫 눈에 반한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의 청혼으로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가족으로부터의 탈출구로 결혼을 택한 키티에게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다. 세균학자인 월터는 연구차 런던에서 상해로 이주하고 낯선 땅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 진다. 영국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던 키티는 연구에 빠진 월터가 못마땅하고 월터 역시 사랑도 연구처럼 격식을 차려 한다. 결혼생활을 따분해 하던 키티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영국 외교관과 사랑에 빠지고, 아내의 외도를 눈치챈 월터는 배신한 아내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산골마을의 근무를 자청한다.

런던 출신의 그들에게는 상해도 낙후한 곳인데 중국에서도 오지인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 유배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월터 역시 선의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속죄하듯이 다가간다. 키티의 속죄가 불륜에 대한 것이었다면 월터의 속죄는 ‘사랑할 줄 모름과 용서할 줄 모름’이었다. 처음에 낯선 백인의 헌신을 의심하던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자 아내에 대한 월터의 마음도 차츰 열리고, 자기 밖에 모르던 키티도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본다. 조금씩 서로를 향해 열어가던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기는데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데서 키티도 월터도 진정한 용서를 배워나간다.

원작 <페인티드 베일>(Painted Veil)은 서머세트 모옴의 장편소설을 영화로 한 것인데 2007년 작품은 같은 원작으로 만든 세번째 영화다. 키티와 월터는 광야같은 곳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동시에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를 치유한다.

하지만 월터는 마을에 창궐한 콜레라로 목숨을 잃고 키티는 런던으로 돌아온다. 영화 도입부에서 화려하게 수놓였던 꽃들은 영화 말미에서 꽃은 1주일이면 시들고 말것이라는 키티의 말을 통해 이 땅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시사한다. 5년만에 옛 내연남과 우연히 조우한 키티는 그 남자의 아이일 수도 있는 아들에게 저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중국 오지에서의 경험이 키티와 월터를 성숙시켰다. 그들은 사랑과 참회, 용서를 배웠다. 부부에게 오지 마을은 복수의 장소로 택하거나 강요된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그들의 사랑이 확인되고 성숙한 훈련의 장소였다. 월터의 죽음으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늙은 부부와 같아

마을의 수녀는 키티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늙은 부부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간에 신뢰가 있어 상대방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관계라고 말이다. 화려한 수식어도, 짜릿한 표현도, 사랑을 매순간 확인하려는 과정이 없어도 사랑은 얼마든지 진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조율이 덜 된 것처럼 투박하다. 하나의 건반을 누르면 세 개의 줄이 건드려지는데 세 줄(저음에서는 두 줄)의 소리를 같게 만드는 것이 조율이다. 그러나 영화음악은 세 개의 줄이 맞지 않아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는 듯이 투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전한다. 우리는 똑같아 질 필요가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조금 서툴게 이해하도 아름답고, 우리의 서툰 모습에도 하나님은 미소 지을 것이다. 오히려 다 안다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율법에 빠져들게 된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핍박하던 때의 열정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에도 바울에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인생관을 변화시킬 만큼 경험은 강렬했지만 한 순간에 정말 모든 것이 변했다면 회심의 진정성은 더 없지 않을까? 그는 14년(17년) 세월동안 섣불리 선교하지 않고 마음과 신념,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아픈 것을 참아냈다. 다마스커스 체험이 진실한 것이었는가를 매순간 물으면서 동시에 자꾸 솟아 오르는 의심에 대해 번민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늙은 부부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수식과 덧칠해진 가면(페인티트 베일)을 내려 놓았을 때 그에게 자신감이 생겨났다. 미개하고 무지하다고 봤던 중국 오지의 사람들에게 감동되어 가던 월터와 키티처럼 예수를 따르던 이들을 무지하다고 봤던 바울 역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척박한 광야에서는 3층천 경험까지 하게 된다.

바울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죄 용서를 받았다고 죄없다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속죄와 구원이라는 신학적 개념에 묻혀 안하무인으로 생활하기에 오늘 기독교인은 여전히 사회의 해악처럼 취급받는다. 이란의 영화감독이지 시인인 압바스 키아로스 타미는 아주 짦은 시를 통해 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잊어 주기를, 그러나 나도 다 잊을 만큼 깨끗이는 말고”
죄는 용서받았지만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 조차 잊거나 여전히 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잊으면 그것은 속죄가 아니다.

사도바울에게 비밀의 세월이 있었기에 일정에 쫓기는 전도 여행 중에도 신학적인 편지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비밀의 세월 동안 바울을 훈련시키고 공부시키고 색다른 체험의 기회를 주었다. 비밀의 세월을 통해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롭게 된다.
바울이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 곧장 사도로 나섰다면 바울의 열정은 많은 적대자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고 그날의 경험은 개인의 회심으로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필요없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를 대신 세웠을 터이니까. 결국 바울에게 있어서 비밀의 세월은 그의 열정을 다스리는 훈련의 기간이었고 훈련을 통해 바울은 그날의 경험이 개인의 신비적 체험이 아닌 로마 제국과 맞서는 논리를 다져나가는 보편의 체험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밀의 시간을 가지라!

영화에서 부부는 오지 유배의 생활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배워나간다. 부부사이에도 이처럼 서로를 알기 위해 모진 세월이 필요한데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고 설치고 외치고 다녔는가를 자문해 본다면 누구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광야의 경험, 비밀의 세월 또는 공간이 필요하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죄이지만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더 큰 죄일게다. 하나님이 인간의 성숙을 위해 준비한 비밀스런 과정을 무시하고 우리는 빨리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바울같은 대가도 14년이나 잡아 두었는데 그릇도 안되면서 편의점처럼 지점을 내기 위해 안달인 목사들, 선교라는 미명아래 광기에 사로잡힌 전투적 선교단체들, 욕망과 성공에 목맨 것을 신앙의 축복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모두 부탁하건데 제발 비밀의 시간을 가지라!

김기대 목사 / LA 평화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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