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립다
그가 그립다
  • 길벗
  • 승인 2014.05.2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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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의 몰래 읽은 책 4] [꿈을 비는 마음], [그가 그립다]

노래 하나도 두려워 하는 사람들

 

 

     
     
 

1967년 한국 찬송가 위원회가 발간한 (개편)찬송가는 기장, 예장 통합, 감리교에서 주로 사용했는데 개편 찬송가의 546장은 ‘주의 가정’이었다.

“미더워라 주의 가정, 반석 위에 섰으니, 비바람이 불어쳐도 흔들리지 않으리. 하나님을 믿는 마음, 서로 서로 믿는 맘, 얼기 설기 하나되어 믿으면서 살리라” (1절) 당시만 해도 드문 한국 작곡가(곽상수)의 곡으로 아름다운 노랫말과 함께 애창되던 찬송가였다.

1984년 한국 찬송가 공회는 통일찬송가를 간행하는데 여기서 546장은 빠진다. 교단구별없이 사용하게 된 통일 찬송가에서 546장이 빠진 것은 작사자가 고 문익환 목사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뛰어난 구약학자로 공동번역성서의 번역을 주도했고, 간도의 명동학교 동창인 윤동주 시인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시를 쓰던 시인 문익환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1975년) 이후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뛰어들면서 학자에서 활동가로 변신한다. 1980년대라는 철권 통치 시절 정치 군인들의 압력이든, 찬송가 선정 위원들이 ‘알아서 기었든’ 개편 찬송가 546장의 삭제는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장면으로 남겨야 한다. 2006년 새찬송가가 발간되면서 다행히 558장으로 부활하는데 그렇다고 부끄러운 역사가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찬송가 하나를, ‘임을 위한 행진곡’ 하나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가까이 있다. 546장이 찬송가에서 사라졌던 시절, 가정 주일에는 항상 이 노래를 프린트 해서 교인들과 함께 불렀다. 문익환 목사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문목사의 아들 문성근씨(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그는 아버지의 노래가 찬송가에서 사라졌던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로부터 ‘교회사적’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조선신학교(지금 한신대의 전신)를 세운 김재준 목사가 작사한 ‘어둔 밤 마음에 잠겨’(582장)의 3절은 김재준의 작사가 아니라 문익환이 김재준에게 선물한 가사라고 한다.

“맑은 샘 줄기 용솟아 거칠은 땅에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하늘 새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되어 타거라.”(582장 3절)

문목사는 학자에서 활동가로 변신한 후에도 시인의 자리는 놓치 않았다. 그의 둘 째 시집 <꿈을 비는 마음> (화다 출판사, 1978년)에 나오는 같은 제목의 시 일부다.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이런 아름다운 시를 지은 시인이 아직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빨갱이’ 활동가로만 남아있는 것은 우리의 비극이다. 지난 주일 대표기도 시간에 “메모리얼 데이가 본래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을 추모하던 행사였으나 지금은 전국가적인 추모일이 되었듯이 우리 나라도 남과 북의 희생 장병들을 함께 추모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게 해달라” 고 기도하면서 교인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속으로는 떨었다. 아! 아직도 나는 비겁하고 소심하구나!. 이럴 때일 수록 그가 그립다. <꿈을 비는 마음>이 모든 인터넷 서점에서 절판으로 뜨는 현실, 그를 그리워 하는 사람 조차 사라져 가는 시대가 아프다.

<그가 그립다> (생각의 길, 2014년)

 

 

 

 

     
 
     
 

그리운 사람이 또 있다. 벌써 그가 간지 올해로 5주기 째다. 그는 결코 진보적인 정치인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지형은 그를 좌파 지도자로 만들어 버렸다. 왼쪽이 아니어도 왼쪽이 되어 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면서 화들짝 놀란 야권 정치인들은 아무 생각 없음이 중도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현재의 야당이라는, 야권의 적통을 계승하고 있다는(지난 번 6.15 선언과 10.4 선언을 강령에서 빼려했던 것을 보면 이것도 못 믿겠지만) 새정치 민주연합은 아무 생각없는 두 지도자에 의해 아무 방향없이, 세월호에 편승해 그렇게 버텨가고 있다.

노무현은 왜 좌파가 되었는가? 그는 자기의 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영복 선생이 하방연대라는 말을 즐겨 쓰듯이 낮은 이들과 함께 할 줄 아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쓰여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의 소리를 내는 사람들, 강한 자들에게 강하고 약한 자들에게 약할 줄 아는 사람들을 한국에서는 좌파라고 부른다’고 사전에 기록해도 될 정도로 한국에서 좌파는 기득권과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 대한 통칭이다.

<그가 그립다>는 노무현 5주기를 맞아 스물 두명이 ‘~~싶다’라는 주제로 그를 회고한 글 모음 집이다. 노무현 하면 쉽게 연관지을 수 있는 유시민, 조국, 한홍구의 글도 있지만 의외의 필자들도 많다. 요즘 외모로 뜨고 있는(?) 기생충 학자 서민 교수는 ‘갚고 싶다’에서 비교적 초기에 노사모에 가입했었다고 고백한다. 보통 교수쯤 되면 직위에 상응하는 다른 형태로 지지활동을 하는 법인데 노사모에 일반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는 이름처럼 서민이었고 그러기에 노무현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밖에도 전속 이발사의 회고, 청와대 전속 요리사의 회고도 흥미롭다. 80년대 초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를 처음 연출한 연극인 김태수씨도,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류근 시인도 이 책을 통해 ‘우리 편’임이 밝혀져 반갑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이들과 함께 하기를 즐겨했던 것처럼 명망가에서부터 낯선 이름을 가진 이들까지의 진솔한 회고가 그를 더욱 그립게 만든다.

길벗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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