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덫에 걸린 코스타
자본의 덫에 걸린 코스타
  • 양재영
  • 승인 2014.08.20 00:37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재수첩]‘코스타,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 에 대한 변론

지난 주 코스타와 관련된 기사가 나가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관심에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기사를 보셨고, SNS를 통해 기사가 퍼져 나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사에 공감을 표해주셨지만, 일부에선-특히 코스타 관계자 분들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들의 문제제기는 익명을 이용한 저급한 댓글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제기였기에 ‘취재수첩’을 통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대형교회 목회자의 윤리문제는 복음주의로부터”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몇몇 코스타 출신 복음주의권 목사가 저지른 윤리적 문제는 코스타의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라는 신학적 논쟁과는 아무런 연계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회참여에 대한 부분은 이전 기사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지난 기사는 1980년을 기점으로 부흥하기 시작한 ‘한국식 복음주의 신학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 글입니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80년대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복음주의는 태생부터 시대를 외면하고 시작했으며, 그들의 ‘번영신학’을 밑바탕으로 한 교회의 대형화는 당시 필연적인 시대적 산물(?)이었는지 몰라도 현재는 개신교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 복음주의에 대한 명확한 세 가지 이념이 있습니다. ‘개인주의’, ‘교회주의’, ‘성경주의’가 그것입니다. 복음주의는 이 세 가지 이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벗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복음주의적 이념과 ‘돈’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논리가 결부된 모습이 오늘의 대형교회요 메가처치(Megachurch)입니다.

복음주의 자체가 문제가 아닌, 복음주의가 ‘자본의 논리’라는 그 시대의 지배질서와 만나 만들어낸 ‘그들만의 교회문화’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문화’는 오늘날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대형교회 목회자의 윤리적 문제의 근본 원인입니다. 복음주의-상당수는 근본적 복음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대형교회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목회자의 윤리문제를 다만 목회자 개인의 도덕성 결여로만 몰아갈 수 있을까요? ‘한국식 복음주의가 흐르는 곳에 대형교회가 있고, 대형교회가 있는 곳에 돈, 섹스, 권력이 있다’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2014 미주 코스타 @ 미주 코스타 페이스북 갈무리

“자본의 덫에 걸린 코스타” 

그런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상당수가 ‘코스타 강사는 전 미주를 대표한다는 왜곡된 엘리트주의’와 ‘시대의 아픔은 교회의 논리가 아니라는 탈정치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스타강사 출신이고, 여전히 코스타는 이러한 왜곡된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입니다.

코스타는 참석하기에 참 많은 돈이 필요한 집회입니다. 가고 싶어도 항공료, 1주일간의 체류비 등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참석자뿐 아니라 ‘자비량 강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모든 강사와 참석자들에게 적용되는-물론 약간의 장학금 제도가 있다 하지만- ‘자비량’이라는 괜찮은 제도가 ‘훌륭하지만 가난한’ 강사를 부를 수 없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매년 ‘또 그 강사야?’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이는 역대 코스타 강사에 대한 ‘통계의 적확함’ 보단 ‘심리적 거부감’에 근거한 비판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그러한 심리적 거부감을 마냥 탓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코스타가 요구하는 자비량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강사는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코스타 강사는 돈 좀 있는-사실 자기 돈도 아닌 교회 돈이지만- 목회자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은 권력이고 이념입니다. ‘자비량’으로 코스타의 재정을 메울 순 없습니다. 1천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장소와 홍보, 진행비 등은 휴가를 반납하고 헌신하는 간사들의 능력 밖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코스타는 복음주의를 근간으로 한 대형교회의 ‘자본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본이라는 그늘은 코스타의 정체성과 방향도 결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의 논리’로부터의 독립은 신학과 정체성의 독립입니다. 많은 역량 있는 간사들과 소수의 의식 있는 강사로는 이 ‘골리앗’을 넘어뜨리기에 역부족입니다. 저는 그게 오늘의 코스타의 현주소라고 봅니다. 하지만, '골리앗‘을 넘어뜨리고자 하는 열정과 바른 신학이 있다면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코스타는 이러한 자본의 논리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몇 분들은 코스타의 소규모화, 개최 지역 다양화, 전임(Full time) 상주 근무자 고용 등의 방법을 제시하시기도 했습니다.

“기타의 문제들”

앞에서 언급 한 것처럼 지난 기사는 코스타 재팬의 김규동 목사 스캔들을 계기로 바라본 코스타라는 대형 이벤트의 역사적 조감도(鳥瞰圖)입니다. 그렇기에 코스타 최대 참석 인원이 3천여 명이었다는 제보자의 내용이 조금 과장(?)되었다는 지적이나, 코스타의 조직이나 강사 선별 원칙과 같은 내부적 정보가 부족했다는 식의 비판엔 별다른 언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각론에 충실하지 못한 ‘총론’, 미시를 구체화하지 못한 ‘거시’를 두고 비판하는 것은 각각의 영역과 언론 기사의 한계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봅니다. ‘총론’ 속에 각론을 담고, ‘거시’ 속에 미시를 구체화하기에는 기사라는 특성과 한계가 발목을 잡습니다.

인터뷰에 임해 주신 몇몇 코스타 강사 분들과 수년간 코스타를 참석한 학계 분들을 통해, 코스타를 위해 헌신하시는 간사 분들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주 한인교회의 중심적 리더로 성장할 만한 자질과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지난 기사가 조금은 불쾌할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다만 지난 기사가 김규동 목사의 쇼킹한 스캔들로 인해 조회 수나 올리는 미끼기사나 상대의 주장에 대한 이전투구식 비난만 난무하는 장이 아닌,  ‘코스타는 왜 금년과 같은 상황에서도 ‘세월호 아픔’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외면했을까?’, ‘왜 수많은 한국 국민들은 프란시스코 교황과 유민아빠와의 만남의 순간을 숨죽여 봤으며, 눈물을 흘리고 환호할 수 밖에 없었는가?’ 에 대한 고민의 장으로 인도해 함께 만나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Eric Kim 2014-10-07 14:41:27
의견을 나누어 주신 분들은 한결같이 코스타에 직접 관여하셨거나 참석하신 분들이시군요. 저는 참석은 안해본 사람이고 한국에 있을때 CCC활동만 했던 사람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강사들이 코스타 강사임을 이력에 넣어왔고 또한 인기강사였으므로 또한 일본과 한국에서 대형교회의 목회자 이기도 하며, 그 누구보다 교계와 사회에 영향력과 책임감이 많은 분들이십니다. 여러분들은 일단 코스타를 비판하는 양기자를 조목조목 사실관계를 따지며 반론하기에 앞서 ,홍정길 목사님 처럼 그런 강사들을 코스타의 강사들로 초빙하여 젊은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강의를 하게 했던것에 대해 가슴아파하여 사과해야 합니다. 코스타를 사랑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 태도들은 사랑의 교회 교인들이나, 금란교회 교인들이 자기 목사님들을 감싸고 돌며 나름의 논리를 찾아내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우선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강사들은 세웠던 것에 대해 참담해 하고 허무해 하는 반성이 더 진심으로 담겨져 있는 댓글이었다면 좋았겠다 생각합니다.

조은성 2014-08-30 04:01:14
코스타강사를 했다는 것은, 젊은이를 향한 열정과 욕심이 있는 목사라면 자신의 이력서에 꼭 집어넣고 싶어하고 또 넣는 것을 보았다. 코스타란 이름을 향해서 가해지는 이러한 비판은 분명하게 이유있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주 코스타를 조금이라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비판이 코스타(국제)를 넘어, 미주코스타까지 연결된다면 조금이 아닌 아주 많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분이 인용한(전기사에서) 코스타 강사분이 3000명에서 1000명으로 준것을 양적침체이고, 그것이 코스타 간사와 운영진의 구태의연한 사고와 정치논리 때문이라는 평가는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솔직히 그 강사가 누구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이상으로 나누어 시카고와 인디아나에서, 컨퍼런스를 나누어 진행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분이 강사로 오게되었는지 강사선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2010년의 인기강사였던 분은, 그 이후 한번도 미주코스타의 강사를 한적이 없다. 적어도 미주 코스타를 운영하고 섬기는 사람들은, 양적인 성장이나 성공을 향해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코스타란 이름을 공유하기에 다른 지역 코스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 사건을 미주코스타까지 연결해서 적용하는 것은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