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 교회를 세우리라!"
  • 강만원
  • 승인 2014.08.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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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처치(Arche church,원형 교회)

오늘날 한국교회는 흔히 생각하듯이 ‘양적 성장의 정체기’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총체적인 ‘붕괴의 길’에 들어섰다.

   
▲ 강만원 © 뉴스 M

마치 주께서 유대 ‘성전주의 신앙’에 대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무너지리라”라고 주저없이 예언하셨던 것처럼, ‘기독교 역사 이래 가장 타락한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는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 세우지 않는한, 폐허로 변한 율법주의의 본산 예루살렘 ‘돌 성전’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아스라이 스러질 수 밖에 없다.

주께서 당시 유대 율법주의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상기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빗대서 다시 적용해 보라. ‘외식하는 자들’, ‘장로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중시하는 자들’, ‘과부의 가산을 탕진시키며.., 돈을 사랑하는 자들’, ‘시장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듯이 자기 의를 과시하는 자들’, ‘말로만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마음은 멀리 있는 자들’, ‘자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자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락한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정확히 해당되는 지적이 아닌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에 맞서 거세게 비판하셨던 말씀들을 다시 살펴보면 안식일, 성전, 제사, 십일조, 자기 의... 등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지금 한국교회에서 독실한 종교행위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안식일은 주일로, 제사는 예배로, 성전과 회당은 교회로, 제물은 헌금으로, 바리새인은 기독교인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주께서 저주하신 유대 율법주의 신앙과 도무지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믿기지 않는다면, 주께서 “화있을진저, 너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아!”라고 말씀하셨던 구절을 다시, “화있을진저, 너희 한국교회의 목사들과 교인들이여!”로 대체해서 문장을 천천히 읽어 보라. 소름이 끼칠만큼 일치하지 않는가? 율법주의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인간의 종교’인 것처럼, 한국교회라는 비성경적, 반성경적 ‘개교회주의’는 주의 뜻과 정확히 상반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거짓 강령일 뿐이다.

나날이 죽어가는 한국교회에 정작 필요한건, 수천 년 종교사에 걸쳐서 수없이 반복되는 ‘개혁 운동’도 아니고 새로운 모델을 염두에 둔 ‘교회 갱신’도 아니다. 한국교회가 살 길은 오직 하나,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 교회’, 다시말해 ‘주의 교회’로 돌아가는 교회 원형의 오롯한 회복이다. 물론, 원형 교회로 돌아가는 길은 지금까지 제도권 교회를 끊임없이 타락시켰던 제반 요소들을 낱낱이 점검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를 애써 고친들 별반 소용이 없다. 교회를 타락시킨 주범은 사실상 제도가 아니라, ‘성직자’라는 반성경적인 직위를 제멋대로 남용해서 인위적 종교제도를 만들어 ‘자기 배’를 채웠던 교회권력이며, 이를 완전히 타파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결코 주께서 말씀하셨던 교회의 본성, 이른바 원형교회의 바른 모습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는 어떤 경우에도 그 자체로 ‘선’일 수 없으며, 언제든지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종교권력의 손아귀에서 생긋 미소 지으며 재롱 피우는 재밌는 노리개로 전락할 수 있다. 진정한 변화, 가치있는 변화의 동력은 이른바 ‘제도개선’이 아니라 반성경적 종교권력의 완전 타파다!

부패한 중세 가톨릭의 사제주의에 맞섰던 개신교가 과연 타락의 온상인 성직계급을 무너뜨렸는가? 아니다. 중세 가톨릭의 사제 성직주의가 이제 개신교에서 이름과 형식만 바꾼 채, 개교회의 목사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었을 뿐이다.

미사를 독점하는 사제와, 이른바 ‘설교권’을 빙자해서 예배를 독점하는 목사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물론, 개신교의 예배는 가톨릭의 7대 성사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지만, 형식만 바꾸었을 뿐 본질적인 적용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개신교에 의식적인 고해성사가 없을망정, 개신교의 목사는 마음만 먹으면 안수기도, 중보기도(?)를 통해서 사실상 고해성사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는가? 오히려 독신의 가톨릭 사제들과 달리 개신교 목사들은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면서 물질적인 탐욕과 늘상 벗하기 때문에, 타락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훨씬 크다.

이제 예수께서 선언하신 ‘내 교회’ 즉, 주의 교회로서 ‘원형 교회’ 운동이 불같이 일어나야 한다. 원형 교회의 모델은 개신교도, 가톨릭도, 초대교회도 아니다. 종교사를 되짚어 보건대, 역사상 인위적인 어떤 교회도 때가 되면 사람이 주인의 자리에 앉았을 뿐, 주께서 진정한 주인이 되신 경우가 없다.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던 교회는 주께서 몸 바쳐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베드로의 교회도, 교황의 교회도, 목사의 교회도 아닌 오직 ‘주의 교회’다. 따라서 원형교회는 공생애 동안에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세상에 보여주신 영적 가치를 준수하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말씀’에 순종하고, 주께서 주신 ‘새 계명’에 충실한 신앙공동체로서 반드시 수평적인 개념의 ‘형제 교회’가 돼야 한다.

요컨대 ‘원형 교회’의 강령은,

1)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따라서, ‘사랑’이 최고의 강령이 돼야 한다.

사랑하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라"는 명령에 따라, 자기 사랑과 가족 사랑의 이기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이웃 사랑, 형제 사랑으로 나아가는 이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이 돼야 한다.

2)“나는 섬김을 받으러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다”...!

‘섬기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주의 뜻에 따라서, 그리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낮디낮은 종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이신 주의 가르침에 따라서 아르케 처치는 단순한 동정을 넘어서 진정한 ‘섬김의 공동체’가 돼야 한다.

3)“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세상의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라!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은 제사나 예배처럼 종교의식을 통한 영적 숭배가 아니라, 주의 계명을 지켜 사랑을 올곶게 실천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4)주께서 회당에, 들녘에, 갈릴리 호숫가에 두루 다니시면서 성서의 본뜻을 가르치신 것처럼, 말씀은 신앙의근본이며, 말씀의 바른 이해와 적용은 ‘바른 신앙’과 불가분이다. 성경 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인은 이른바 ‘성경의 사람(Man of the Book)’이다. 성경을 벗어난 진리와 계시는... 허구다! 아르케 처치의 형제들은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또한 애써 가르쳐야 한다. 말씀의 왜곡이 결국 신앙의 왜곡과 더불어 교회의 타락을 초래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하지 말라.

5)“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던 대로 주의 바른 복음을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마치 애굽처럼 느껴졌던 한국교회를 기꺼이 떠난 가나안 성도들이 사실인즉 말이 ‘가나안’이지 사실은 황량한 광야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저들이 다시 주의 교회, 곧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주의 교회가 세상 곳곳에 세워져야 하며, 저들을 ‘주저없이’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덧붙여, 비리와 탐욕의 끈질긴 유혹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교권을 완전히 타파하며, “교회의 사역은 각자의 은사에 따라서 철저히 분산돼야 한다”는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원형 교회의 형제들은 '만인제사장'으로 하나하나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진정한 사역자’가 돼야 한다. 한 명의 교황, 또는 사제나 목사가 아니라 여러 형제가 모두 ‘왕같은 제사장’으로 교회의 한 몸을 이룰 뿐이다!

당연히, 주께서 말씀하신 제사장은 율법주의의 제사장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신 동시에 ‘어린 양’으로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쳤다. 이처럼,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부인하며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주의 종’이며,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제단에 바치는 진정한 제사장이 돼야 한다.

주께서 모든 형제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개별적인 은사를 주셨다. 형제 각각은 한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그리고 ‘지체이기 때문에’ 주 안에서 ‘한 몸’인 교회를 바르게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원형 교회’는 주의 계명에 순종하는 ‘'직분’이 있을 뿐, 성직자 또는 사역자와 평신도를 구별짓는 ‘종교계급’이 있을 수 없다.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과 역할은 맡은 사역에 따라 철저히 분산돼야 하며, 담임이나 당회장 따위 종교적인 감투나 권력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 교회의 타락은 사실상 성직자, 목사, 중직 등 소수에 의한 교회권력의 독점과 남용에 기인한다.

형제 하나하나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면, 원형 교회 안에는 더 이상 지금 한국교회처럼 ‘제왕같은’ 목사가 존재할 수 없다. 목사도 평신도도 모두 주 안에서 동일한 평신도이며, 너나없이 모두가 평등한 형제로서 ‘왕’이며 ‘제사장’이다.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은사에 따라서 교회를 섬기고, 교회는 주의 뜻에 따라서 세상의 작은 자들을 ‘주를 섬기듯이’ 사랑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주께서 말씀하신 원형 교회, 주께서 온전히 ‘주’되시며 주의 계명을 기꺼이 실천하는 원형 교회의 형제들... 이들의 영적 대각성과 용기있는 행동이 영적 난치병에 걸려 나날이 죽어가는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치유이며 대안이다. 동시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실로 아름다운 사명이 아닌가!

영성을 잃은 한국교회의 영성 회복을 위한 ‘원형 교회 운동’에 형제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한다.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앞장서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골리앗 같은 한국교회의 아성에 맞서야 하는 평신도 운동은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는 만만한 사역이 아니다.

작은 도랑이 합쳐 큰 물줄기를 이루며 마침내 바다에 이르듯이,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합치고, 뜻을 합쳐서 함께 손에 손잡고 나아가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험난한 길이며, 그길은 반드시 ‘좁은 문’을 지나야 한다.

한국교회의 타락과 목사들의 비리에 말없이 침묵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형제들의 영혼이 소리없이 죽어간다...

분명히 말하면, 내게는 이처럼 ‘혁명적인 운동’을 이끌만한 어떤 능력도 없다. 조직을 이끌만한 재력도, 영적인 파워도, 지식과 지혜도 없지만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누군가는 앞장서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무턱대고(?) 앞장설 뿐이다. 내가 먼저 나설 뿐, 무지무능한 내가 이처럼 엄청난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선도’로서 중요한 사역을 맡은 동안은 일에 전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아르케 처치는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부정과 불의를 가차없이 고발하는 ‘알림방’이 돼야 한다. 나아가, 형제들과 더불어 바른 복음을 연구하는 ‘공부방’이 돼야 하고, 영성이 깃든 신앙서적들을 세상에 펼치는 ‘글방’이 돼야 한다. 영적 전쟁에서는 오직 말씀만이 ‘승리의 검’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떤 것도 세부 지침으로 정하지 않은 채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는 단계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주 안에서, 그리고 주 앞에서 목사와 평신도의 차별없이 동동한 형제로서 성도가 중심이 되는 ‘연맹’이 돼야 하며, 형제 각각은 기존 개교회의 가증스런 불의와 타락에 단호하게 맞서는 ‘전사’가 돼야 한다...

주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영적 신념을 가진 100명의 형제가 ‘원형 교회(아르케 처치)에 모이고, 100명이 다시 100명을 세워서 마침내 10000명의 순교자가 세워지는 순간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한국교회는 다시 태어난다!

강만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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