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또 일어난다!”
“세월호 참사는 또 일어난다!”
  • 양재영
  • 승인 2014.08.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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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목사 '한국 역사 속의 세월호 참사'강연회
장준하 선생 셋째 아들인 장호준 목사(유콘 스토어스 교회)의 ‘한국 역사 속의 세월호 참사’라는 주제의 강의가 지난주에 있었다. 장준하 선생 39기 추모와 함께 열린 이번 강연회는 ‘세월호 특별법’ 난항과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30일이 넘는 단식을 강행하는 힘든 국면 속에 열렸다. 장호준 목사는 현재 코네티컷 주에서 평일에 스쿨버스 운전을 하며, 주말에 강연과 목회를 하고 있다. 세월호와 같은 참사의 재발 방지하기 위한 역사적 고찰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장호준 목사 © 뉴스 M

세월호 참사가 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미국에 살기에, 우리 아이들은 제주도에 보낼 일 없기에, 세월호 탈일 없기에, ‘도대체 며칠 째냐?’, ‘우리 아이들이 세월호 탈일 없는데 뭐 때문에 분노하느냐?’며 항변하기도 합니다.

제가 스쿨버스 기사입니다. 스탑 사인이 있으면 모든 차가 다 서야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 법을 어기면 벌금이 9백 불 정도로 아주 비쌉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은 가장 힘없는 사람이고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강의를 통해 세월호 참사는 한국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원인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 때 배의 수명을 30년으로 늘려 다 썩은 배, 고철덩이로 내다 팔아야 할 배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게 근본 원인입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불법 증축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무게 중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세월호는 짐을 엄청나게 실기 위해서 평형수라는 물을 다 뺐습니다. 게다가 세월호는 황금알을 낳는 노선인 인천부터 제주까지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가 침몰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세월호 참사를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바라보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재난의 역사는 책임 회피의 역사”

   
▲ 김훈 중위 의문사 © 뉴스 M

1998년 김훈 중위 사건을 아실 겁니다. 국방부는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렸습니다. 관련 자료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해도 없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가 1998년부터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데, 그가 삼군사령관을 했던 김척 중장입니다. 삼군 사령관이었던 김척 중장이 사령관으로 있던 지난 3,40년 군 생활 중에 그와 같은 사건이 없었겠습니까?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자기 자식에게도 일어난 겁니다.

1984년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방부는 자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도 되지 않는 결론입니다. 국방부는 ‘허 일병이 M16이란 총으로 자기 왼쪽 배에 쐈는데 안 죽었다. 그래서 오른쪽에 쐈는데 역시 죽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에 쏴서 죽었다’라며 자살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그런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1970년 와우아파트 참사는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김현옥 시장이 와우 아파트를 산꼭대기에 짓는데, 공무원들이 “왜 하필이면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를 산꼭대기를 짓느냐?”했더니, “이렇게 높은 데 지어놔야 각하께서 잘 보이신다. 청와대에서 보려면 높은 곳에 지어야 잘 보인다”고 했습니다. 대림건설이 지었는데, 물론 부실공사이고 날림공사였습니다. 그로인해 33명이 사망했지만, 대림건설 회장은 병보석으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재벌 총수들은 잡혀가기만 하면 아픈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 1971년 대연각 화재 사건 © 뉴스 M

1971년 대연각 화재 사건으로 내,외국인 포함 163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고층 빌딩에 스프링클러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졌습니까? 결국 화재신고 받은 사람이 책임 졌습니다. 서울시장, 소방방재청, 고위공무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전화 받은 사람이 늦게 전달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바로 몇 년 후 1974년 대왕코너 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연각 화재 이후 10층 이상의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달아야 한다는 법률을 만들었는데, 단 건물도 있었고 안 단 건물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스프링클러를 다는 데 100만원 든다면, 안단 건물은 걸리면 만원의 벌금을 냅니다. 누가 스프링클러를 달고 싶겠습니까?

대왕코너 화재 사건은 새벽 2시 반에 일어났는데, 당시엔 통행금지가 있었습니다. 12시 지나면 잡혀가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2시 반에 6층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이 몰랐을까요? 경찰들이 왜 모르겠습니까? 대왕코너 화재로 인해 많은 20대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1993년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고가 발생한 목포 공항이 없어졌습니다. 애초에 공항이 건설되어서는 안되는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아시아나 기장이 거기에 착륙하기 위해 세 번 시도했으나, 안개가 걷히지 않아 활주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번 돌았는데, 도저히 내릴 수 없었습니다. 본사에선 ‘다시 돌아오면 그 돈이 얼마인데, 그냥 내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야산을 들이받고 추락했습니다. 누가 책임졌습니까? 죽은 기장이 책임졌습니다. 그 조직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하나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1993년 발생한 서해 페리호 사건은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여객선의 정원이 221명인데, 362명을 태우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서해 페리오 안에 구명조끼도 없었습니다. 구명조끼를 비치하는 데 2백만원이 든다면, 벌금은 2만원이면 됩니다. 결국 320여명이 죽었습니다. 누가 책임졌죠? 선장이 책임졌습니다. 분명 누군가 배를 점검했을 거고, 구명조끼 여부를 조사했을 것이며 허가를 해줬을 겁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가 무너졌습니다. 제가 그 당시 싱가포르에 있었는데, 현대건설에서 많이 나와서 건물을 짓고 했습니다. 현대건설 직원들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젊은 여자들을 감리사로 채용해서, 구석구석 조사하고, 시료 채취해서 조사했습니다. 성수대교는 부실공사였습니다. 감리 감독은 누가 했습니까? 공무원이 했습니다. 이 사고의 원인도 자본의 논리였습니다. 그 사고로 무학여고 학생 8명 포함 32명이 숨졌습니다.

   
▲ 씨랜드 참사 유가족이 아이들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 뉴스 M

1999년 씨랜드 참사 때 유치원생들을 포함 2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이장덕이라는 화성군 건축계장이 있었습니다. 씨랜드라는 수련회장을 만들었는데, 이게 말도 안되게 지어놓고 허가를 내달라는 겁니다. 이 계장은 몇 번이고 안된다고 했습니다. 화성군 군수가 빨리 허가 내주라고 나섰습니다. 이 계장은 탈출구와 탈출계단, 방화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사회복지계로 전보 발령했습니다. 그 다음 날로 허가 내줬습니다. 건축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씨랜드와 돈을 주고 받았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잘못되었다고 한 이장덕 계장만 짤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국가대표 하키선수였던 김순덕 씨도 어린 아들을 잃었습니다. 국가대표 때 받은 훈장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월호 사건이 밑도 끝도 없이 어느 날 떡하고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와 이 조직과 구조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천박한 자본주의와 전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충(忠)을 백성에게 하면 죽고, 대통령에게 하면 산다”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948년에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친일파 색출을 위한 ‘반민족 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고 딱 1년 후인 1951년, 전쟁 중에 피난처였던 부산에서 정부각료들이 모여 ‘반민족특별법’을 폐지했습니다.

안두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김구 주석을 살해했습니다. 1949년 6월 26일 이승만이 정부를 세운지 1년 후에 김 주석을 쏴 죽였습니다. 탄흔도 있고,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이 사면했습니다. 6.25전쟁이 나니까 군대로 복귀시켰습니다. 김구선생의 죽음을 누가 책임졌습니까?

   
▲ 용산참사 유가족의 오열 © 뉴스 M

이명박은 국회의원을 상실한 자였습니다. 선거법위반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상실한자가, 13번의 전과를 가진 자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에 수없이 많은 일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용산참사가 있었습니다. 참사 후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이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쫓아내서 노역장이나, 산 속에 넣은 게 아니라. 오사카 총영사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난 후 한국항공공사 사장으로 갔습니다. 누가 용산참사를 책임졌습니까?

명량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충은 임금에게 하는 게 아니라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충을 백성에게 한 이는 다 죽고, 잡혀가고, 결국 망했습니다.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가족까지 다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충을 대통령에게 한 자는 무슨 짓을 해도 살았습니다. 그것도 잘 살았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해 가는 과정에서 그 해경 구조대원들이 세월호에 들어가서 ‘나와라!’ 이 말 한 마디만 해줬으면 수백명이 살았을 텐데,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구조헬기가 가고 있는데, 해경총장이 왔으니 돌아오라는 명이 왔고, 그들은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죽든 상관없습니다. ‘해경총장에게 잘 보이면 진급할 텐데, 내가 왜 거기가?’

세월호 같은 사건이 하루에 백 개, 천 개씩 안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됩니까? 잊지 맙시다. 잊지 말아야합니다. 잊어버리면 우리는 똑같이 이런 일을 겪게 됩니다. ‘내일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중장을 생각해 봅시다.

세월호 참사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은 또 일어날 것입니다. 여기 LA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랍고도 뜨거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매일같이 기원소를 찾아 지키고, 시위하고,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비록 외롭지만 잊지 않고 나아가는 길만이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정리: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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