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강사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
코스타 강사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
  • 정이철
  • 승인 2014.10.21 02:19
  •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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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저자... 혼미한 코스타 복음주의 영성

   
▲ 이용규 선교사 © <뉴스 M>

코스타의 대표적인 강사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을 살펴보자. 영성이라는 말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말이 아니다. ‘영성’이 성경이 수 없이 강조하는 ‘경건’보다 더 수준이 높은 경지에 속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과 삶을 ‘경건’이라는 말로 표현할 뿐이다. 성경에서 단 한 번이라도 성도의 신앙을 ‘영성’이라고 표현하는 곳이 있으면 누구라도 말해보라! 신자가 오직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성령을 모시고 살며,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성경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고, 성경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 그리스도인의 경건이다.

경건 외에 성도가 추구해야 또 다른 비밀스러운 영적인 개념은 없다. 영성은 귀신과 교제하며, 사탄의 거짓 세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증진되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영의 세계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가 쌓여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경건을 말하지 않고, 영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종합하여 판단하면 그렇게 된다.

어떤 사람이 경건한 사람인지, 영성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으나, 성경의 가르침을 확실히 붙드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다.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나, 성경의 사상과 가르침과는 무관한 다른 영의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니고 영성있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긴다고는 하나, 성경과 무관한 다른 거짓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그러한 영적세계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체득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니고 영성있는 사람이다.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이라는 말은 불행히도 이용규 선교사에게 그러한 성향이 농후하다는 것을 뜻한다. 최고의 학력, 많은 베스트 셀러들, 코스타를 대표하는 강사, 유명한 교회들이 부르는 인기 강사 ... 이런 분을 감히 무고하는 것일까? 독자들이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서 냉정하게 판단하기 바란다.

이상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이용규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과 그 다음에 나온 「더 내려놓음」을 사서 보았었다. 이용규 선교사는 자신이 미국 유학시절에 코스타 집회에 참석하였고, 그래서 신앙의 변화를 얻었고, 장래의 비젼을 찾았다고 했다. 그 책들을 읽는 동안 저자인 이용규 선교사에게서 특별히 나쁘다 할 내용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괴이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방언전도사 김우현 씨가 쓴「하늘의 언어」라는 책을 읽다가 이용규 선교사의 신앙을 의심하게 되었다. 괴이한 옹알거림을 방언이라고 미화하는 김우현 씨의 그 책 속에 이용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가 몽골 선교지의 힘든 생활로 말미암아 때 우울증을 겪었던 모양이다. 치유받기 위해 성령의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어떤 목사와 함께 기도하다가 이상한 현상을 체험했다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의 턱이 흉측하게 돌아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용규 선교사는 당황하여 그 목사에게 물었다.

“쓰지 않던 턱 근육이 돌아가야만 하나님이 직접 ... 그의 입을 사용하셔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목사는 이용규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직접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에게 모국어로 말씀을 주시려고 입술과 혀를 돌리고 비틀면서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방언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려고 턱 근육을 강제로 움직이시며 준비시키셨다는 것이다. 이용규 선교사에게 이렇게 가르친 성령에 대해 조예가 깊은 그 목사는 과연 누구일까?

그러나 어떤 신자가 자신의 모국어를 억지로 구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자신에게 대언하는 방언을 성경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하신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 가능한 일일까? 이런 신기하고 놀라운 세계도 있었는데, 우리는 몰랐다. 이런 것이 바로 영성이다. 성경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런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경건이 아니고, 다른 신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영성이다.

성경의 방언의 특징

경건한 사람들이 이해하고 추구해야 할 성경의 방언은 배운 적이 없는 이방인의 실제 외국어였다. 한 번도 배우지 않았는데, 외국어가 성령에 의해 자유로이 구사되는 현상이 성경의 방언이었다. 성경의 그 방언은 다음의 세 가지 중대한 기능을 수행했다.

1)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며 교만했던 불신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었다.
2)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로 받으시고 성령을 부어주셨음을 확증하였다. 외국어 방언으로 인해 이방인 선교가 공식화되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없이 신약의 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3)신약교회의 신앙의 근거이고 원리인 성경이 완성되고, 교회 속에서 자리잡기 전까지 방언은 통역과 함께 임시적이고 보충적인 계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와 대조되는 이 시대의 영성있는 사람들이 추구하고 주장하는 방언은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신비의 언어, 영계의 언어라는 방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런 방언은 성경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대의 방언은 영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경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러한 방언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여러 기록을 종합하여 볼 때, 초대교회의 방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비교적 일찍 종결되었다고 보여진다.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신실한 지도자들, 이레네우스, 오리겐, 어거스틴 등이 남긴 기록 속에 방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전에 유대인 신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했던 이방인들의 실제 외국어 방언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들이 사역했던 그 시대의 교회에 성경의 그 방언이 실제로 나타나고 활용되었다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더 우리를 두렵고 놀라게 만드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후 교회사에서 성경의 방언과 비슷한 옹알거리는 현상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 이단 계열이었다는 것이다. 최초로 옹알거리는 현상을 들고 나온 몬타누스는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그 이후 비슷한 현상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 정통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현대의 옹알거리는 현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주사 거짓부흥의 주도자들의 신앙 배경을 조사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들의 신앙의 배경은 이단이었다.

옹알거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찰스 펄햄과 윌리엄 세이모어는 자신들의 거짓 방언현상이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훗날 그것이 외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것이 밝혀지자 ‘영의 언어’라고 또 다시 둔갑되었다. 지금 도처에 만연한 옹알거림 현상이 이렇게 이상하게 등장하여 교회 속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용규 선교사는 이상한 방언하면서 아내의 턱이 돌아가는 현상을 방언전도사 김우현 씨에게도 상담하였다.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에게서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 김우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턱이 돌아가는 현상은 방언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경지’라고 했다.

"그것은 일종의 ‘입 스트레칭’(mouth stretching)이며 그 또한 방언기도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는 어떤 경지라고 했다.”(김우현)

   
▲ 김우현 저 '하늘의 언어' © <뉴스 M>

김우현 씨의 책을 보니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같은 현상을 주셨다고 했다.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턱을 벌리고, 오므리고, 입술을 좌우로 돌리고 비틀면서 다음과 같은 한국말을 만들어 내셨다고 한다. 이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시면서 사랑을 넘치도록 표현하신 하나님이 굳이 더듬거리면서 이렇게 김우현 씨에게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우 .. 현 ..아! 내 .. 아 .. 들! 사랑한다!”(하나님이 한국 말 방언으로 김우현 씨에게 하신 말?)

이용규 선교사는 김우현 씨와 같은 대단한 영성가와 교제하고 있고, 그 자신도 그런 영성의 세계로 이미 들어갔다고 보여진다. 이용규 선교사가 서울대를 나오고, 하바드에서 유학하여 학위을 얻었으나, 모두 내려놓고 몽골로 갔다기에 나는 정말 대단하게 보았다. 베스트셀러를 줄줄이 써내는 것을 보고서 그의 재능이 부러웠다. 코스타의 대표적인 강사까지 되어 여러 곳으로 강의를 다니자, 매우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용규 선교사가 이런 물에서 놀고 있었다.

신사도 운동 영성에도 물든 이용규

이용규 선교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웹 싸이트 ‘천국노마드’에다 자주 글을 남긴다. 그곳에 있는 이용규 선교사가 남긴 어떤 글을 보게되었다. 이용규 선교사의 딸 서연이가 몽골에서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이용규 선교사는 자신의 딸에게 생긴 병이 일본을 지배하는 악한 영과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나타났다고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 영과 싸우는 영적전쟁의 기도를 시작했다. 일본을 지배하는 악한 영이 어떤 일로 심술이 나서 이용규 선교사의 딸에게 질병을 주면서 괴롭힌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도 중에 서연이의 병이 일본의 영과의 영적 전쟁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서 영적 전쟁을 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이용규)

이용규 선교사가 딸에게 생겨난 병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 얼마 전에 일본인 목사 다키모또 준이 몽골을 방문하였고, 이용규 선교사의 집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용규 선교사는 다키모또 준으로부터 영적전쟁과 그것을 수행하는 특별한 중보기도에 대해서 듣고 배우고 실습하였던 것 같다. 다음은 이용규 선교사가 남긴 글 속에 있는 말이다.

“타키모토 준 목사님이 일본의 영적인 세력 배후에 몽골의 영적인 것과의 묶임이 있다는 깨달음 가운데 몽골에 와서, 우리와 같이 중요한 영적 포인트들을 다니면서 기도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묶어 가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서연이의 병은 그 후 며칠 있다가 발병했습니다.”(이용규)

이용규 선교사는 다키모또 준 목사가 몽골로 와서 중보기도로 일본을 지배하는 악한 영을 건드렸기 때문에 딸에게서 그 병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평안하게 있는 사탄을 건드리는 영적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사탄이 자신의 딸을 그렇게 공격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적전쟁일까? 다키모또 준과 이용규 선교사가 정말 가만있는 마귀를 건드리는 영적전쟁을 일으켰다면, 왜 하나님은 그 귀한 일 한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지 않았을까?

영적전쟁이 이렇게 귀신과의 병정놀이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의 영적전쟁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따르고,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퇴마사처럼 행동하면서 영적전쟁을 운운하는 것은 교정되어야 할 사이비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신앙이다. 영적전쟁의 핵심은 죄인이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사탄의 노예되게 만드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바른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해야만 하니, 영적전쟁을 위해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어야만 가능해진다. 교회에 30년을 다니고, 심지어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삶에서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영적전쟁이 조금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말하는 저런 영적전쟁이 신사도 운동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신사도 운동이라는 것도 기독교의 옷을 잘 갖추어 입고는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은 무당들의 영적인 세계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에 물든 사람들의 상태를 '영성', '000의 영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다키모또 준이라는 일본인 목사가 몽골에 와서 큰 무당들이 하는 영적인 일을 했을 때, 이용규 선교사도 따라다니면서 함께 했었던 모양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남긴 글을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타키모토 준 목사님이 일본의 영적인 세력 배후에 몽골의 영적인 것과의 묶임이 있다는 깨달음 가운데 몽골에 와서 우리와 같이 중요한 영적 포인트들을 다니면서 기도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묶어가시는 일이 있었습니다.”(이용규)

이것이 신사도 운동가들의 장기인 ‘땅 밟기기도’(player walk)이다.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악신을 권세있는 기도로 제압한다는 신사도 운동의 ‘영적전쟁’이다. 영성있는 큰 무당들이 그럴듯하게 기독교의 옷을 입고서 벌이는 푸닥거리이다. 아무데나 다니면서 이러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지배력을 행사하는데 활용되는 중요한 영적인 거점들을 골라내어 권세있는 영험한 기도로 찍어 누르듯이 기도한다. 이용규 선교사의 글을 보니 자신이 다키모또 준과 함께 ‘중요한 영적 포인트’를 찾아다니면서 땅을 밟으면서 사탄을 대적하는 중보기도를 했다고 암시되어 있다.

이런 일을 잘했던 또 다른 사람은 김종필 목사이다. 어떤 사람이 신사도 운동가 김종필 목사를 따라서 중동에 가서 고대의 여리고 유적지를 돌면서 중보기도할 때, 놀라운 영적인 기운이 임하는 것을 느꼈다고 간증하는 것을 읽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 미혹하는 악신이 자기에게 미혹되는 자기 백성들을 보고서 즐거워서 더 힘껏 장난하기 때문이다. 이후 그 사람에게서 귀신의 미혹의 힘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규 선교를 향해 박수치고, 기도해 주고, 돈까지 주어 선교사로 보냈더니 현지에서 이런 무당의 영성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용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을 한국으로 불러 다시 가르치고, 교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쓴 글 속에 아내가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고, 이상한 영성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상한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고 이용규 선교사도 이미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용규 선교사 주변에 바르게 진단하고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바른믿음을 가진 지도자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부류들인것 같다.

다키모또 준은 어떤 사람일까?

몽골에 가서 이용규 선교사와 함께 사탄의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탄의 세력을 제압하는 땅 밟기 기도를 하고, 이용규 선교사의 집에 머물면서 교제를 나눈 일본 사람 다키모또 준 목사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이미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신사도 운동가이다. 그가 신사도 운동가라는 것은 그에게 목사라는 타이틀이 있기는 하나, 그를 통해 일하는 영이 성령이 아니고 귀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다키모또 준은 거짓된 능력을 행하는 거짓 영성의 사람인 것이다. 그가 수년 전에 한국에 와서 인도했던 부흥회를 촬영한 실제 영상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가 하는 행태를 보니, 전형적인 신사도 운동가들의 기름부음 집회의 모습이다. 당시 그는 양재동 온누리교회의 청년부와 함께 전남의 어떤 지역에 선교하러가서 이런 부흥회를 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키모또 준이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서 넘어뜨리는 것은 신사도 운동가들이 기름부음을 전한다는 행태이다. 사람들에게서 괴이한 옹알거리는 소리가 난무하는 것도 참으로 불건전하고, 특히 신사도 운동가들의 집회에서 흔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다키모또 준 목사와 관련된 또 다른 사실이 기억난다. 방언전도사 김우현이 일본 나고야에 있는 신시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었던 적이 있다. 집회 후 벽에 금가루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고 김우현 씨가 간증한 적이 있었다. 금가루 현상은 이제 많이 수그러들었으나, 신사도 운동이 처음 등장할 때 우매한 사람들을 미혹했던 마귀의 대표적인 수작이었다. 이런 일과 관련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 영과 함께 일하면서 미혹하는 거짓의 사람들임이 드러났다. 김우현 씨가 금가루를 보았던 일본 나고야의 그 교회가 바로 다키모또 준이 담임하는 신사도 운동교회이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김우현 씨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그런데 신시로에서 그것이 처음 열릴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기도가 끝나고 우리는 더 놀라게 되었다. 집회 장소 정면 벽에 금가루가 가득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환호와 그것을 만지려는 이들로 강단이 가득 채워졌다. 이것은 아버지의 이벤트였다.”

이용규 선교사는 이런 사람들과 교제한다. 금가루를 만드는 괴이한 방언전도사 김우현, 심각한 신사도 운동가이고 금가루까지 나타나는 나고야의 신시로 교회의 목사 다키모또 준,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가 괴이한 방언현상을 보이면서 턱이 돌아가게 만들고, 하나님이 한국말 방언으로 직접 말씀 주시기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어떤 성령의 은사에 대해 조예가 깊은 목사 ... 이용규 선교사는 이런 사람들과 영적인 코드가 일치한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괴이한 영적 거장들이 이용규 선교사 주변에 있는지 누가 다 알겠는가?

코스타 복음주의의 정체가 궁금하다

이용규 선교사는 서울대를 졸업하였고, 하바드에서 학위를 했다는 대단한 이력으로 인해, 또한 그런 세상의 자랑거리를 아낌없이 내려놓고 선교지로 갔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넘치도록 받으면서 불현듯 등장하였다. 글 솜씨가 좋아 쓰기만하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껌뻑하였다. 젊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힘이 있고, 특히 교회의 여성 청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재능을 가진 세련된 평신도 지성인의 이미지를 탄탄하게 구축하였다. 그리하여 코스타의 대표적인 인기 강사까지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이런 심각한 불건전성이 넘치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의 유명한 인물이 된 이용규 선교사에게 존재하는 사이비 성을 그냥 묵인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영적으로는 불건전한 영성가이지만 사람은 선하고 좋으니, 그가 한국 교회의 신앙과 영혼들에 계속 악영향을 미치도록 활동하게 그냥 두어야 하는 것인가? 다른 코스타 유명 강사들처럼, 돈 문제, 여자 문제, 표절문제, 폭력 ... 등의 하자를 만들이 않았으니 여전히 코스타를 빛내는 대표적인 강사라고 칭찬받도록 두어야 할까?

그렇다면 코스타는 영혼이 혼미하고, 사이비 복음주의에 빠졌어도 도덕과 윤리에서 문제가 없고, 책을 잘 쓰고 학력이 좋으면 누구나 강사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코스타가 그런 혼미한 복음주의를 추구하는 곳이되어도 우리 모두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코스타의 강사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사탄의 고도난도의 전략을 분쇄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복음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사탄이 교회를 미혹하고 더럽히는데 쓰여지는 사람을 높여주는 괴상한 복음주의를 추구하는 곳으로 코스타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용규는 내려놓은 후 무엇을 붙잡았나?

이용규 선교사는 한국 교회에 ‘내려놓음’이라는 유행어를 선물하였다. 그러나 이용규 선교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세상의 자랑거리를 내려놓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실한 도구되기 위해 세상 것을 내려놓았다면, 그는 영원히 칭찬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감히 누가 지금 그에게 이런 시비를 걸수 있을까?

세상에는 내려놓은 사람들이 많다. 승려가 되기 위해 내려놓은 사람, 무당이 되어야 하는 운명 때문에 울며 내려놓은 사람, 부모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내려놓은 사람, 애인을 붙잡기 위해 내려놓은 사람, 직장과 연봉을 위해 내려놓은 사람 ...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속 내려놓으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이용규 선교사의 책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등이 박수갈채를 받았던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내려놓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 내려놓았던 이용규 선교사가 새로이 붙잡은 것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을까? (이 글에서 이용규 선교사의 영성의 위험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꼭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읽기를 바란다.)

정이철 /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목사, '바른믿음'(good-faith.ne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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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2 2014-10-27 21:05:27
부산호산나교회에 다니는 41살 남자 집사입니다. 성령충만이나 방언 내안에 계신예수의 생명은 다 실제이고요 저는 모태신아이지만 2010년8월부터 내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을 느끼는 은사?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정이철목사님께서 이런글 많이쓰시던데요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저로서는 참 안타갑습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긴것은 실제이고 관념일수 없습니다 저도 지나가다가 안타가워서 몇자 적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런 살았는 신앙을 신사도운도으로 치부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정이철목사님은 성령충만울 경험해보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한 마디 2014-10-24 13:40:21
모든 것 다 떠나서 '내려 놓음' 그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어야 합니다. 제3자가 그의 사역을 보고 옮겨 지는 것이 참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삶은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사의 영성 2014-10-24 12:07:35
선교사의 영성이 과연 무엇일까? 사실 진짜 선교사는 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지위 학벌 배경을 똥으로 여기고 주님 주신 선교의 사명을 갖고 목숨까지 내놓는 열정,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 선교사라면 그저 대단하든 대단하지 않던 말 그대로 복음 전하는 선교를 하다가 이 세상 떠나는 사람을 보고 선교사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지금은 선교했던 것을 대부분 목회를 하기 위한 경력정도나 세상에서 인기를 얻는 스타강사가 되는 하나의 수단, 즉 세상 말대로 스펙을 하나 잘 쌓은 것으로 여기고 편안한 목회나 사람들이 불러주는 인기강사가 되기 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삼는다. 인간이 한때 아무리 대단한 선교 아니라 오지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했어도 자신의 본본을 잃어버리면 결국 세상 속에 묻혀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본능이다.
이용규, 정이철 두분 모두 화려함 또는 너무 냉소적 비판감 이런 것만 생각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본분을 잘 찾아서 쓰임받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바로보자 2014-10-23 10:25:20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나다가님의 생각에 충분히 동의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다 맞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자체입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말씀이시니까 복음은 성경이고 그리스도라는 얘기가 성립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님이 말하는 신비와 제가 말하는 신비는 다른 개념임이 분명합니다. 님은 신비를 신학적으로 풀고 있고 저는 신비를 사회학 혹은 종교학적인 개념으로 풀고 있거든요 신학적으로 님이 말하는 신비의 개념은 맞습니다. 그러나 종교사회학에서 신비를 일종의 히에로파니 혹은 크라토파니 의 개념입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말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비현상 소위 말해서 바위에 절을 했더니 아들을 낳았다든가, 어느 교회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광채가 나서 교회가 환하게 밝혀졌다든가 이런 류의 것들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주변에서 주장되는 수 많은 신비현상에 대해 기독교가 분명한 기준 즉 성경적 기준으로 해석해서 바른 복음의 길을 알려 주지 않으면 혹세무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와 다른 것입니다. 사회학적인 문제고 종교학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복음과 세속적인 신비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이철 목사의 노력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가다가 3 2014-10-23 08:22:29
'바로보자'님에게 어떤 딴지를 걸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없었으니까,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마 바로보자님과 제가 사용하는 복음과 신비의 개념이 조금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복음이 성경이다... 신비가 복음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라고 하셨지만, 제 생각은 복음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그리스도라고 보구요, 신비는 복음의 존재양식이어서 과연 복음과 분리해서 선후를 정할 수 있는 단어인가 싶어요. 말씀하신 일각에서 하는 짓거리에 대해서는 저도 물론 반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