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겐 엄격하고, 약자에겐 자상한
자신에겐 엄격하고, 약자에겐 자상한
  • 양재영
  • 승인 2014.10.22 09: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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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기윤실 설립자 유용석 장로의 사역과 이야기(1)
반 년 후면 구십을 바라보는 유용석 장로의 지난 20년 간의 LA 기윤실 사역을 정리해보자는 기획안을 세웠다. 별로 한 일 없는 자신을 보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거절하는 유용석 장로를 어렵게 설득해 인터뷰했다. - 편집자 주
   
▲ 유용석 장로 © 뉴스 M

LA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LA 기윤실)은 지난 1993년 시작되었다. 2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오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정체성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LA 기윤실을 창립한 유용석 장로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유용석 장로는 1925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89세. 반년만 있으면 90세가 된다고 수줍게 웃음 지었다. 유 장로는 북한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해방 후에도 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월남해서도 계속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75년 미국 LA로 이민을 왔다.

‘자신에겐 엄격하고, 약한 이들에겐 한없이 자상한’ 

유영석 장로를 잘 아는 지인들은 유 장로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 ‘자신에겐 엄격하고, 약한 이들에겐 한없이 자상한 분’ 이라고.

“1993년 4월 20일 LA 기윤실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70이 다 되었었죠. 이민 와서 주로 무역업에 종사했는데, 교인으로서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주일날 하루 교인이고, 엿새 동안은 세상 사람들에 묻혀 예수님의 냄새, 기독교인들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은퇴를 했거나, 생각할 나이인 70세에 유 장로는 LA 기윤실을 창립했다. ‘건강한 이민교회와 교인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닙니까?’라는 조금은 짓궂은 질문에 유 장로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 웃음엔 ‘나이는 그저 숫자에 지나지 않아!’라는 조용한 웅변이 배어있었다.

“기윤실을 창립할 즈음 김진홍 목사의 두레 선교회라는 것을 미국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몇 년 동안 제가 맡아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어 이끌었죠. 하지만 이후에 김진홍 목사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 분이 정치적으로 자기 이름 내려고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손 떼고, 기윤실 일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LA 기윤실 창립엔 기라성 같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창립 두 달 전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교수)의 도움으로 발기인 대회를 가졌고, 이후 고(故) 김인수 교수(고려대 경영학과)와 손봉호 장로(고신대 석좌교수)가 자비량으로 LA를 오가며 도와줬다고 한다.

“한국 기윤실과는 정체성은 같이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운동이었죠. 저희 LA 기윤실이 창립한 후 2년 정도 후에 워싱턴 DC, 그리고 디트로이트에 기윤실이 생겼고, 초기에는 같이 연합해서 몇 번 모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손봉호, 김인수, 이만열 교수를 초청해서 우리 취지를 알리고 조직하는데 도움을 맡이 받았습니다. 그 분들은 저희가 호텔비용이라도 내게 해달라는 부탁도 거절하실 정도로 헌신하며 도와주셨습니다.”

   
▲ 고(故) 김인수 (좌), 손봉호, 이만열 교수 © 뉴스 M

LA 기윤실을 창립할 즈음 남가주에는 교회가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다. 이민자가 가장 많이 들어오던 시절이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였으며, 당시 교회는 이민자들을 돌보는 사역이 주였다. 전국적 교회 연합조직도 없었으며, 교회 내부적으로도 큰 잡음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동양선교교회, 나성영락교회, 은혜한인교회 같은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커뮤니티를 위해 교회로 모였기에 잡음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당시 교회 중심으로 모여 신앙과 천당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을 보고 생각한 바가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사회적으로 나가서 사회를 위해서 행동하거나, 섬기는 모습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삶으로 보여주자.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말고, 행동으로 바르게 하자. 신앙을 생활로 실천하는 운동,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운동을 하자. 정직하고, 검소하게, 나누며 살자는 구체적인 실천 목표를 가지고 LA 기윤실을 시작했습니다.”

“정직하고, 검소하게, 나누며 살자”

기윤실을 창립하고 가정 먼저 실천한 운동은 성덕 바우만 군 골수 기증운동이었다. 당시 입양아로서 미국 공군사관학교 4학년생이었던 성덕 바우만 군은 백혈병으로 골수 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유 장로는 동족 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골수 기증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했다.

“당시 많은 교회에서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모금한 돈을 성덕 바우만 군에게 보낼 수 있었죠. 이후 고려인들을 돕는 운동을 했습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돕기 운동이었는데, 처음에 의료품, 의류 등을 컨테이너에 싫어 보내기도 했죠. 이게 저희 기윤실이 초기에 했던 기독교 실천 운동이었습니다.”

   
▲ 빵을 먹고 있는 북한 아이들(LA 기윤실 제공)

LA 기윤실의 대표적 사역으로 평가되는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은 1995년과 96년에 걸쳐 북한에서 발생한 수해로 북한 경제가 초토화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수해로 인한 식량 부족으로 42%의 아이들이 만성영양실조 상태였으며, 굶주림과 질병으로 2백만명 가까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LA에서도 95년 10월에 각 사회단체, 종교단체들이 모여 북한을 돕자는 운동을 계획했다. 유용석 장로도 LA 기윤실 대표로 참석했다. 하지만 한인회, 시민단체, 가톨릭, 불교, 개신교 단체 등으로 구성된 모임은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며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1996년 3월에 사업관계로 중국 연변을 방문했을 때였는데,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변에서 북한에 큰 수해가 나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봄인데도 나무껍질을 옥수수와 섞어서 삶아 먹는 다는 이야기와, 아이들이 굶고 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죠. 당시 ‘이건 어른을 상대로 하면 쓸데없는 시비가 있을 것 같으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빵을 만들어 두만강 연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져다 먹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나 떠올랐죠.”

당시 LA 기윤실은 전국 교회가 2백여 곳, 회원이 6백 명 정도 되었다. 유 장로는 연변 방문시 가졌던 생각들을 정리해 전국에 있는 모든 교회와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시 북한 동포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연간 3십만 불 정도의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이 돈으로 처음엔 중국에서 빵을 만들어 보냈죠. 그런데 빵이 잘 부패하더군요. 그래서 96년 7월 23일부터 딱딱한 월병으로 바꿔서 한 1년 정도 보냈습니다. 두만강 근처 남양, 온성, 회령 등에 보냈는데, 중국에서 빵을 만들어 북한에 보내다 보니 수송비, 통관비 등 돈이 꽤 많이 들었습니다.”

유 장로는 1997년 10월 북한 회령에 직접 빵 공장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회령은 김정일의 생모이자 김일성 부인인 김정숙이 태어난 곳으로 북한 내에서 평양 다음으로 성역화 된 곳이다. 유 장로는 그곳에 아는 지인의 도움을 통해 빵 공장을 만들 수 있었다. 1997년, 98년 북한은 당시 수해로 인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 시절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회령에 97년 10월 빵 공장을 지었습니다.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 사람을 파견해서 관리하게 했죠. 미주 한인 교회들의 후원으로 한 달에 밀가루 60톤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그때 수해대상자 아이들이 1만 5천명 정도였는데, 유치원, 탁아소, 초등학교(인민학교) 3학년의 저학년들에게 50g 빵 3개를 점심으로 나눠줬습니다.”

탄광 지역이면서 농촌 지역인 회령은 당시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사랑의 빵’ 공장을 통해 점심 배급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통학률이 100%에 달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한 명의 아이에게 1년간 점심을 제공하는 데 든 단돈 40불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 빵을 만들고 있는 어머니들(LA 기윤실 제공)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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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 2014-10-22 11:01:56
교계의 어두운 면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시는 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더 많이 실어 주시길 기대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