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의사 예수를 따라
거리의 의사 예수를 따라
  • 양재영
  • 승인 2014.10.31 04: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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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사역자 김진숙 목사 인터뷰

150cm가 조금 넘는 자그마한 키의 김진숙(Jean Kim) 목사는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40년 넘게 노숙인과 함께 살아왔다. 어느덧 그의 나이 80이 다되었어도, 여전히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일에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김진숙 목사는1955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한국 신학대학에서 신학사를 전공했다. 2006년 71세에 노숙사역을 주제로 San Francisco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김 목사는 시카고 대학, 세이트루이스 대학, 풀러 신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그래서 그는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수프와 빵을 전해주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만의 ‘노숙신학’을 정립하고 강의하고 있다.

그는 미국장로교(PCUSA) 은퇴목사이며, 일생을 정신문제를 가진 노숙자를 섬기는 사역에 헌신해 왔다. 미국장로교의 ‘믿음의 여성상’과 ‘노숙자의 영웅상’, 대한민국 정부의 국민포장상과 모교인 이화여고에서 “이화를 빛낸 상”등 사회봉사상을 20번 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는 여전히 시애틀 둥지선교회의 담당목사이며, 노숙문제, 가정폭력, 여성문제, 목회자 성추행 문제의 집필가이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진숙 목사를 만나 나눈 이야기와 그의 저서의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었다.

   
▲ 김진숙 목사 © <뉴스 M>

- LA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일차적인 목적은 치과 치료 때문이고, 가장 중요한 목적인 집필 중인 책을 누군가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 올해로 80세이시다. 40년 넘는 세월을 노숙인 문제에 전념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그 문제를 말하려면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말해야 한다. 나는 1935년 음력 7월26일에 함경남도 함흥시 부잣집의 삼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나 비록 10살 미만의 어린 나이였지만 나라를 잃은 백성들, 강자에게 억압당하는 약자의 아픔을 보는 눈이 떴다고 할 것이다.

1949년에 이화여중에 입학했는데 일 년 후인 1950년에 전쟁이 났고, 같은 해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기차는 우리를 부산진역에다 쏟아놓았다.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우리가족 5명은 역전마당에서 세 밤을 잤다. 어느 날 어떤 할아버지가 자기집 마당에 들어와 자라고 해서 5식구가 그 집 마당 안에다 판자로 다섯 식구가 나란히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3년을 살았다. 그 때 가난과 집이 없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이북에 살 때 나는 학교에서 제일 부자집 아이였으나 전쟁 후엔 이화여중 전교에서 가장 가난한 집 아이가 되었다. 나의 인생 첫 17년 동안에 인생의 고통을 다 보고 다 경험한 것 같았다. 그 때의 경험이 오늘의 나를 이끌어 온 것 같다.

- 1950년대 당시 여성으로 신학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교회는 1950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 친구를 따라 정동교회를 가면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수복 후 서울제일교회에서 학생회 임원도 하고, 학교 채플 시간에 종교부장까지 했었다. 당시의 감리교 감독이셨던 변홍규 박사님께 세례를 받았는데 그 분을 통해 예수께서 가장 낮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환영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의대, 법대를 가라는 가족들의 기대를 뿌리치고 한국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경기도 부근의 12개 나환자촌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을 미국에 오는 70년 4월까지 감당했었다.

- 미국에 와서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고 들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지 7년이 되는 해(42살)에 St. Louis 대학에서 사회사업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의 정신질환, 정신박약, 마약에 중독된 노숙자들을 정신병원과 정신 건강원에서 치료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1978년 4월 30일, 17살 난 아들을 졸지에 잃게 되었고, 나는 완전히 혼이 나가 절망이란 웅덩이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나는 나의 삶 자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아들과의 이별은 심장을 비수로 쪼개고 뼈를 깎는 것 같이 아팠다.

당시 내 영혼은 집 잃은 노숙자가 되어 절망이란 짐승들과 죽은 마른 뼈들 속에 섞여 어두운 골짜기를 방황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요, 내 탓이요, 내 죄 값이라 외치며 나는 매일 아들 무덤 앞에 앉아 목 놓아 통곡했다. 나는 나를 꼭 붙들고 매달리시는 하나님께 나를 제발 놓아주시고 죽여 달라고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을 밀어내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나를 꽉 껴안고 놓아주지 아니하시니 결국 나는 기진맥진하여 "하나님께서 KO 승리를 하셨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하시라"고 항복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나의 영안을 뜨게 하시어 성경을 밤낮으로 미친 듯이 몇 번을 통독하도록 인도하신 후, 값없이 자신을 위해 죽지 말고 살아있는 불쌍한 이들을 위해 살고 죽으라고, 즉 살아야 하고 옳게 죽을 수 있는 목적을 주셨다. 그래서 1987년 4월 12일, 52살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 설교를 전하는 김진숙 목사 (사진: 김진숙 목사 제공)

- 노숙사역을 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무엇인가?

내가 노숙사역을 하게 된 그 진짜 동기는 예수님 때문이다. 갈릴리 길바닥의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든, 그리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죄인들, 이방인들과 병자들, 여인들과 아이들과 동거동락 하시면서 그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아픔을 고쳐주시고 구원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에 나는 10대 소녀시절부터 완전히 반해 버렸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봐주고 구원하라고 구구절절이 외치는 신 구약 성경 속의 하나님과 주님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서, 나는 주님이 남기고 가신 사역의 작은 일부라도 계속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었다.

- ‘노숙 신학’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나는 육체적으로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홈리스”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노숙사역을 하면서 정신적, 영적 노숙인이 많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도자 훈련을 할 때 “노숙생활을 경험한 일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할 때 한인교포 중에서는 손을 드는 이가 거의 없다. 창피해서 못 드는 경우도 있겠으나 노숙을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도 된다.

하지만 우리들의 몸은 우리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깃들어 사는 집이다. 우리 주변엔 많은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아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많다. 가족과 친구 및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몸이 거처를 잃지 않았어도 그 안에 평안히 거해야 할 마음이 집을 잃고 방황할 때, 그들은 ‘정신적으로 노숙자’가 된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은 우리의 집이시고, 또한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은 그 분들이 거하는 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들을 떠나면 ‘영적인 노숙자’가 된다고 하겠다.

이렇게 노숙의 정의를 세 가지로 분류해 설명하고 나서 참석자들에게 "자, 이제 노숙을 체험하신 분 계십니까?" 하고 물으면 여러 사람이 손을 든다. 그때 나는 "나도 그 세 가지의 노숙상황을 다 경험해 보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 중에 노숙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바로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유독 보라색 옷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노숙 근절"이 새겨진 보라색 셔츠를 지난 15년 간 밤낮으로 언제, 어디서나 입어 "보라색 여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색깔을 택할 바엔 이왕이면 모든 옷, 양말, 운동화, 여행가방, 핸드백, 모자까지도 보라색을 택하다 보니 항상 보라를 입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자주 가는 의사 사무실이나, 식당이나, 버스를 탈 때나, 비행장에서 검문대를 통과할 때에도 사람들은 "당신은 보라색을 좋아하는 가봐", "완전히 보라로 통일했네" 라고 한마디씩 던진다. 그때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선교의 색깔이라고 하면서 가슴에 새겨진 ‘노숙근절’을 보여준다. "아, 그러냐" 고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좋아, 좋아, wonderful, 나는 그 메시지가 좋아" 한다.

사순절에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의 색이 보라색이다. 보라색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색깔인 것처럼 이는 또한 노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상징하는 색깔이 된 것이다.

평생을 통해 얻은 많은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나 자신의 많은 아픔과 남의 아픔을 아파하며, 나처럼 아프게 사는 많은 사람들을 내 가슴에 안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내게는 매일이 보라색 인생이고, 매일이 회개하는 날이고, 그래서 내게는 매일이 사순절이다.

-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노숙사역을 하는 동안 자주 듣는 질문이 “왜 그들은 노숙자가 되었는가?” 였다. 나의 친구 하나가 노숙자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사역을 수 년 하였다. 그러나 그 친구는 밥만 먹였을 뿐 그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그들이 왜 노숙자가 되는지에 대해 이해 없이 변화하지 않는 그들에게 실망해 그 사역을 그만두었다. 그 일이 내가 노숙의 근본 원인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이 부지런히 일만 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단정할 일이 아니다. 예배 드리고 밥 먹이고 끝날 일이 아니라 우리가 섬기는 그들이 왜 노숙자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노숙자가 된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지만 나는 노숙자가 되는 일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추운 어느 날 몇 달 일하고 실직된 한 가족을 본 적이 있다. 이들 여섯 식구는 살림살이가 가득 찬, 여섯 식구 누울 자리란 전혀 보이지 않는 밴 안에서 자는 것을 발견하고 둥지선교가 그들에게 모텔방을 얻어준 일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집을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저소득주택을 얻는 길이다. 저 소득 주택은 수입의 3분의 1을 내고 나머지는 정부가 보조하는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저소득 아파트를 얻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 5년을 기다려야 하고, 더 이상 신청을 받지도 않는 도시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 금전적 도움을 받을 곳이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노숙인이 될 수밖에 없다.

   
▲ 김진숙 목사와 노숙자 여성교인 (막달라 노숙여성교회를 섬길 때 사진: 김진숙 목사 제공)

- 책을 집필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미국에 이민 온 지도 벌써 45년째 들어간다. 지난 40년간 미국장로교 목사로서 술과 마약을 남용하거나 중독된 노숙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80을 바라보니 몸이 낡아지고 있다. 가난과 노숙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섬기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무덤에 가지고 가는 것 보다 두뇌활동이 아직 왕성할 때 글로 남기려고 시도해 본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나의 손자, 손녀들과 내 뒤에 오는 후세대들이 그들 주위의 가난하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섬기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나의 경험과 지식이 도움이 되도록 나누기 위함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내가 집필하는 5권의 저서가 가난과 노숙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교육 기관이나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자료가 되었으면 하고 감히 소망해본다.

나는 이 책들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내가 사랑하는 노숙자 형제자매들의 교육과 직업훈련과 관련한 비용에 사용되도록 남기려고 한다. 그들이 교육을 받고 기술을 얻어 집을 구하고, 노숙을 근절하고 자급자족하는 생을 향해 일어나 걷게 하기 위함이다.

- 마지막으로 목사님이 보시는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너무 부자가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교회는 가난해야 하는데, 요즘 교회들은 교회를 더 크게 짓고, 교육관 더 많이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다. 사회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정부가 보살피지 않는 곳을 적극 찾아가, 그곳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룩해야 하는 게 교회의 임무인데, 요즘 교회들은 그렇지 않다.

예수 믿고 찬양하고, 밖에 나가서 전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노숙인을 위해 일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개인 구원과 개인 축복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웃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삶은 예수의 제자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은 아니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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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영적노숙인 2014-11-01 00:14:02
김진숙목사님,
이렇게 근황을 알게되니 참 반갑고 좋네요. 정말 존경합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펼치는 데에 필요한 제도마련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어느 한 구석에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가?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소리없이 한 구석에서,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일에 앞장 서 주시는 목사님,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신체적으로도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