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카드와 부적
크리스마스카드와 부적
  • 이계선
  • 승인 2014.12.11 0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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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선 목사 ⓒ <news M>

“당신은 11월부터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금년에는 12월이 시작됐는데도 보낼 생각을 안 하는군요. 혹시 파킨슨병으로 손이 떨려 그러는것 아녜요?"

“맞아. 내가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청와대 스타일이 아니지. 개개인에 맞는 문안을 써넣어야 하는데 파킨슨병으로 손가락이 약해져서 볼펜 쓰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금년은 그만둘까 하고있어”

“아빠, 그건 너무 비참해요. 파킨슨병도 억울한데 크리스마스 카드 마저 중단하다니요? 손가락으로 볼펜잡기가 힘들면 손바닥으로 잡아도 되는 굵은 매직으로 쓰면 돼요”

둘째딸 은범이가 끼어드는 바람에 나는 용기가 생겼다. 금년에도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자. 그 대신 전처럼 많은 이들에게 보낼수는 없다. 소돔성의 의인 50을 찾듯 50명만 추려내어 보내자. 어떻게 하면 멋진 매직카드를 만들 수 있을까? 드라마 '야경꾼 일지'가 생각났다. 야경꾼들이 부적(符籍)으로 귀신(鬼物)들을 때려잡는게 멋지다.

‘부적같은 성탄카드를 만들자. 나도 약간은 부적 비슷한 효험을 봤지 않은가?’

달포 전이다. 28평짜리 에덴농장에 도둑이 들기 시작했다. 이상한건 훔쳐가지는 않고 무 배추를 뽑아 짓이겨 내동댕이쳐 버리기만 했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시신처럼 처참해보였다.

우리부부는 쇠몽둥이를 들고 야간잠복을 했지만 허사였다. 네번씩이나 당하자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렇지 야경꾼들처럼 부적을 사용하자.

나는 16절지 하얀 종이에 아주 굵게 영어글씨를 써넣었다. 좀 크지만 부적처럼 보였다. 5천년 부적역사상 최초의 영어부적인 셈이다. 석장을 만들어 슬그머니 철조망벽에 붙여놓았다. 배추귀신을 물리치는 부적 글자들.

STOP!

WE ARE

GOOD NEIGHBORS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신기하여라. 무배추가 말짱했다. 한길로 왔다가 영어부적을 보고 혼비백산 일곱길로 줄행랑을 처 버린게 틀림없다. 그 후로 에덴농장은 태평천국 복락원이다.

우리가 사는 3층 아파트 복도에 마구 물건을 버리는 이가 있다. 바로 앞 옆에 사는 흑인남자다. 이상하게도 쓰레기나 찌거기가 아니다. 갓 구어낸 빵과 수프,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 어느 때는 멀쩡한 일회용 어린아기 기저귀를 박스채 버리곤 했다. 새것들이라도 버리고 나면 쓰레기가 되어 복도를 더럽히고 악취를 풍겼다.

이웃이 항의하고 사무실에서 주의를 줘도 여전했다. 그렇지, 이순신에게는 12척배가 남아있고 나에게는 부적이 있지 않은가! 배추귀신을 물리쳤던 그 부적 말이다. 컴퓨터에 입력해놓은 부적 두장을 빼내어 사건현장인 복도 양쪽벽에 붙여봤다.

STOP!

WE ARE

GOOD NEIGHBORS

신기하여라. 그 후부터 골칫거리가 뚝 사라져 버렸다.

에덴농장 입구에 개똥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경고판을 붙여놔도 여전했다. 사람이 안 다니는 농장서쪽으로 개를 끌고 가서 풀숲에다 싸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개들이 똥을 싸다 볼수있게 에덴농장 철조망에 이런 부적을 붙여놨다.

DOGS DUNG

TO THERE

<----

THANK YOU

개들도 부적을 무서워 하는지? 그때부터 개똥이 사라졌다. 세 번에 걸친 핵실험은 100퍼센트 성공. 액운을 물리쳐주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부적같은 성탄카드를 구상하자. 나는 폭풍을 헤쳐가며 비가 내리는 돌섬 바닷가를 걸어 다녔다. 한참 걷는데 갑짜기 삼각산이 나타났다. 산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소년이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소년을 향하여 외쳤다.

“아해야 靑山가자”

소년을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고향의 계화누님 계승형님 우리 7남매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막내처남과 암 투병중인 후배소설가. 그리고 친구들. 나를 미워하는 얼굴도 달려오고 있다. 나는 그들과 어울려 청산으로 가고 싶었다. 나비야 청산가자. 나비도 따라오고 사슴 칙범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에게 성탄카드를 보내기로 했다. 카드에 바닷가에서 구상한 그림을 그려 넣는거다. 굵은 매직으로 해가 떠오르는 산을 그리고 성탄멧세지를 적어 넣었다.

   
▲ 사진은 2014크리스마스카드.

“아해야 청산가자”

새해에는 우리 모두 울울창창 청산에서 만나자. 이리와 어린양이, 표범과 송아지가, 사자와 새끼 사슴이 아기예수의 인도에 따라 손잡고 춤추는 축제로 살아가자(이사야11:6-7)

일년동안 돌섬통신을 읽어주신 돌섬친구 여러분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암도 우울증도 훌훌 털어버리고 청산에서 만나요.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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