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문제를 세상법에 의존하는 것, 과연 옳은가
교회 문제를 세상법에 의존하는 것, 과연 옳은가
  • 박문규
  • 승인 2007.04.26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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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국가와 종교와의 관계,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미리엘 신부가 있다. 감옥에서 탈출해 성당을 찾아온 장발장을 숨겨주고 먹여주는데, 장발장은 성당의 금촛대를 훔쳐서 도망간다. 도망가던 장발장이 경찰에 잡혀 다시 성당으로 오는데, 신부는 경찰관에게 말한다. 그 촛대는 자신이 장발장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나는 지금껏 이 이야기가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과 용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설사 타인의 범법 행위에 의해 스스로 피해를 보았다고 해도 구체적인 이웃을 공권력에 고발하는 것은 기독교인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잘못을 징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소송 불가’의 원칙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특별히 지켜야 할 일이라고 믿어왔다.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이 교인들끼리 송사하는 것을 극구 말렸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교회 분쟁 시에 경찰이 등장하고 법원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웠고 또 절망하였다.

얼마 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LA 한인타운 내 한 대형 교회의 분규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교회의 재정적 불투명은 명백한데 교권을 쥐고 있는 분들은 관련 서류를 공개하지도 않고 그것의 공개를 원하는 인사나 단체들(기윤실을 포함한)의 요청은 일체 무시해버린 채 변호사를 통해 아주 무례하고 협박적인 편지까지 보내왔다. 공권력에 호소하지 않으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이런 경우에도 공권력에 호소한다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기윤실 내에서도 나의 의견은 절대적으로 소수였다. 공권력에 호소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그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공권력에 의존하지 않고는 공의도 세울 수 없고 약자와 억울한 자를 보호할 길이 없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보면 이 분들의 생각이 마냥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세상 권력은 가이사의 것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나라가 세상 나라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혹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심을 믿는다면, 비도덕적인 이웃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는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시정을 소리쳐 요구하는 데까지이고, 더 이상은 국가 권력이 아닌 하나님께 맡겨야 된다고 나는 믿는다. 섣불리 국가 권력을 동원해서는 이웃을 보호하기보다는 이웃에게 군림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종교와 국가에 대해 우리를 혼란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사건은 요즈음에 미주에 있는 목사들이 한국의 한 크리스천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에 적극적이라는 소식이다. 실상 이것은 핍박받는 자, 버려진 자들을 위한 기독교적인 행동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내 눈에는 그저 권력에 줄을 서는 것 같아서 불쾌하게만 느껴지고, 이제 한국의 기독교가 다시금 집권자의 종교, 기득권층의 종교가 되기 위한 아름답지도 정의롭지도 못한 작태로만 보인다. 그래서 구토감이 난다. 종교 지도자가 정치인 앞에 줄서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박문규 /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대학 학장, 기윤실 실행위원
* 이 글은 LA기윤실 소식지 4월호에 실린 것으로, LA기윤실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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