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격변에서 다중격변으로
단일격변에서 다중격변으로
  • 양승훈
  • 승인 2015.01.14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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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 마지막 전 지구적 격변
   
▲ 양승훈 원장 © <뉴스 M>

다중격변설(Multiple Catastrophism)은 지난 2006년 7월, 제가 <창조와 격변>이라는 책을 통해 제시한 지구 역사에 대한 하나의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서는 현재 지구상의 모든 지층과 화석은 한 차례(단일격변)가 아닌 여러 차례의 전 지구적, 혹은 국부적 격변으로 형성된 것이며, 이 격변들 중 마지막 전 지구적 격변이 노아의 홍수일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다중격변설의 직접적인 출발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형 운석공(隕石孔)들이었습니다. 100여개가 넘는 거대한 운석공들은 대부분 지구 표면의 30%를 차지하는 육지에서만 발견되었으며, 만일 지구 표면의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바다에 떨어진 운석들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지구 역사에서 전 지구적인 격변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났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지구론 오랜 우주의 증거"

제가 창세기의 과학적 연구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8년, 당시 건국대 물리학과의 쥬영흠 교수님의 강연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를 과학적인 연구결과들과 비교하면서 연구할 수 있다는 쥬 박사님의 강연은 제게 일종의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날(욤)을 시대로 보았던 전형적인 진행적 창조론자였던 쥬 박사님의 도전은 젊은 지구론자 헨리 모리스를 위시한 미국 창조과학자들이 인도한 1980년 창조과학 강연을 기점으로 완전히 저의 관심사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그로부터 7년 동안 저는 의심의 여지없는 젊은 지구론자로서 열변을 토하고 다녔습니다.

언젠가 울산대 어느 선교 단체 초청으로 창조론 강의를 갔다가 예나 다름없이 젊은 지구에 대한 확신을 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 후 연세가 드신 한 교수님이 조용하게 다가와서 심각하게 “양 교수님은 정말 우주가 6천년 되었다고 믿으십니까?”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주저하지 않고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은 더 이상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듯 아무 얘기도 하지 않으시고 돌아서서 나가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분의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7년까지는 제가 젊은 우주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중에 저는 1년간 시카고대학에서 객원학자로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동안 시카고 인근에 있는 위튼대학이나 트리니티 신학교 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복음주의 진영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이들 학교 학자들(과학자들과 신학자들 모두)이 하나 같이 창조과학을 반과학적일 뿐 아니라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창조과학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있다니 이들이 정말 복음주의 학자들이 맞는가라고 분노했습니다.

그로부터 2003년까지는 젊은 우주에 대한 저의 확신이 줄어가면서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제가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과학사로 문학석사(MA)를, 위튼대학에서 신학으로 문학석사(MA)를 마친 일이었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신학적, 교회사적 공부에 집중하면서 저는 젊은 지구 해석이 과학적인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성경해석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차츰 깨닫게 되었고, 주요 복음주의 학자들이 왜 그렇게 강하게 창조과학에 반대하는지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젊은 우주의 증거라고 생각하면서 주장하던 증거들이 하나씩 반증 내지 부정확함을 알게 되었으며, 잘못된 증거라고 비판하던 오랜 우주의 증거들이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한 두 가지 증거에 의해 제가 갑자기 우주나 지구가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젊은 지구 문헌을 읽을 때는 그 쪽으로, 오랜 지구 문헌을 읽을 때는 다시 반대 쪽으로 기울곤 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동안 1996년에는 비록 강의록 모음이지만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던 <창조론 대강좌>를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젊은 지구 쪽으로 기울기는 했지만 오랜 지구의 증거도 동시에 제시했습니다. 그 때부터 2003년까지 저는 정말 밤잠을 설치는 큰 혼돈 가운데 지냈고, 창조연대에 관한 한 절망과 불가지론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1997년, 기독학술교육동역회(DEW)의 파송을 받아 경북대를 사임하고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을 설립하여 창조론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미국과 캐나다를 위시한 전 세계 지역에서 수많은 야외 탐사와 수십 개의 자연사 박물관 탐사를 했습니다. 점차 늘어만 가는 오랜 우주의 증거들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을까 고민하면서 캐나다와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과 일본, 호주 등 기회가 닿기만 하면 어디든지 미친 듯이 쫓아다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가장 자주 탐사여행을 했던 캐나다와 미국 서부는 격변의 보고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지질학적 증거들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단일격변에서 다중격변으로"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우연히 200여년 전에 살았던, 프랑스의 위대한 생물학자이자 창조론자였던 퀴비에(George Cuvier)가 제시한 다중격변설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때 마침 1994년 7월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과 충돌한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소행성 충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구에 떨어진 운석공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어 오래 전 알바레즈 부자(父子)팀이 예측한, 중생대를 끝내게 한 대형 운석공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 칙술럽에서 확인되면서 운석공으로 인한 전 지구적 멸종의 확신은 점차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림3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베링거 운석공

소행성 충돌에 대한 관심은 과학자들의 연구로 이어져 많은 논문과 책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쏟아지는 전문 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접하면서 저는 어쩌면 퀴비에 당시에는 지질학적, 천문학적 증거가 부족하여 단순한 개념에 불과했던 다중격변설이 지구의 역사를 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일 수 있다는 희미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 처음으로 이 모델을 접했는데 그 후 이것을 다듬어나가면서 저는 창조과학의 단일격변모델로도, 현대 지질학의 동일과정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다중격변설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좀 더 큰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중격변설의 기본적인 골격은 2004년 여름, 제가 근무하고 있는 밴쿠버 인근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Trinity Western University)에서 개최된 북미주 기독과학자협회(ASA/CSCA) 연차 대회에서 발표하면서 다듬었으며, 그 후 국내외 몇몇 곳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리고 VIEW 대학원 학생의 졸업논문 지도를 하면서 좀 더 다듬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처음에 과학적으로나 성경해석학적으로 불분명했던 것들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모델은 창조과학의 단일격변설을 포함하면서도 현대 지질학의 여러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학철학자 라카토스(Imre Lakatos)의 표현을 빈다면 다중격변설은 “전진적 연구 프로그램”(Progressive Research Program)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다중격변설에서는 현대 지질학에서 절대연대를 측정하는 표준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은 방사능 연대나 현대 천문학에서 관측하고 있는 먼 우주(deep space),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대규모 운석공 등을 설명하기 위해 젊은 지구론자들이 제시하는 어색한 가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외에도 다른 모든 생물들의 화석은 풍부하게 발견되는데 인류의 경우는 화석이 아니라 유골만이 출토되는지(대홍수 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는데), 왜 석유(해양 기원이라 추정되는)와 석탄(육지 기원)이 같은 지역에서(예를 들면 캐나다 앨버타 주) 생산될 수 있는지, 어떻게 그 단단한 현무암이(워싱턴주 컬럼비아 계곡 등에서 볼 수 있는) 그렇게 깊은 수로로 침식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깊으면서 여러 지층들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그랜드 캐년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 왜 100억 광년 이상 떨어진 은하들이 지금도 관측되는지 등등을 설명하기 위해 어색한 가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다중격변설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이론으로도 과학적으로나 성경해석학적으로 설명이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창조론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던 지난 30여년간의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이론은 물밀 듯이 쌓이고 있는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 이론은 오늘날 관측할 수 있는 자연과 말씀의 수많은 증거를 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며, 겸손하고 진지한 대화에 활짝 열려있는, 다시 말해 결정적인 반증의 증거가 나온다면 언제든지 폐기처분할 수 있는 일종의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연구에서 작업가설이 도그마의 성격을 띠기 시작하면 지성의 무덤을 파게 됩니다.

양승훈 원장 /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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