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없다!
‘우리 교회’는... 없다!
  • 강만원
  • 승인 2015.01.14 03:1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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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국교회의 교인들 만큼 종교심에 뜨겁게 불타는 경우는 온 세상을 뒤져본들 극히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나라에도 없는 ‘새벽 예배’라는 기도모임이 한국교회에는 매일 새벽마다 열리는가 하면, 공예배라는 이름으로 주일은 물론이고 수요일, 금요일마다 매주 끊임없이 반복된다. 뿐만 아니다. 철마다 정기 부흥회가 열리고, 때만 되면 특새를 비롯한 특별집회를 개최하면서 쉴새없이 교인들의 발길을 교회로 유도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미국의 오순절교단을 비롯한 일부 교단에만 남아있다는 십일조가 한국교회에서는 자발적인 헌금을 넘어서 ‘참된 교인의 자격’으로 거론되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애써 신약시대 십일조의 비성서적 근거를 제시해도 독실한(?) 교인들에게 그런 반론은 차라리 사탄의 유혹일 뿐이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 이른바 ‘우리 교회’를 위해서라면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활이 빈곤한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록 자기가 살고있는 집이 비좁은 셋집에 춥고 누추할망정, ‘우리 교회’만큼은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 화려하고 넓으며 최고의 음향시설에 뛰어난 영상 시스템까지 갖추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물론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비록 없는 살림일망정 온갖 명목의 헌금도 마다하지 않는다.

빚을 내서라도 ‘분에 넘치게’ 헌금하면 머잖아 하나님이 차고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순간적인 고생쯤은 대수롭지 않다. 단지 시간이 조금 문제이지만, 마침내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실테니까 그때까지 다소곳이 기다리기만 하면 결국 ‘만사형통’을 누린다는,실로 가상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이런 열성적인 믿음(?)은 대관절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다른 교회들보다 영적인 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물질적인 면에서도 마땅히 우월해야 한다는 허튼 신념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자기가 섬기는 교회, 이른바‘우리 교회’의 가시적인 성장과 부흥을 마치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의 증거이자 척도로 생각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교회’라는 낱말은 성서적인 근거가 없는 허사虛辭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의 유일한 교회를 세우신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전적인 무지이며 가증한 도발이다. 나아가, 우리 교회를 유난히 강조하며 나름 충성스러운(?) 교인들의 속내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탐욕의 복음’에 찌든 이기적인 욕망이 번뜩인다.

우리 교회는 사실상 교회의 돌연변이로서, 한국교회를 타락의 수렁에 깊숙이 빠뜨린 ‘개교회주의’의 가증한 발현이다. 요컨대 교회는 오직 하나, 예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던 그 교회로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을 뿐이다. 가장 성경적인 교회의 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초대교회에 과연 지금처럼 ‘우리 교회’라고 부르는 개교회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예를들면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고린도 교회’, ‘에베소 교회’처럼 특정한 이름을 지닌 다양한 개교회들이 있었는가? 아니다! 예컨대,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라는 간판을 내건 개별 교회의 독자적인 이름이 아니라,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다시말해, 예루살렘 교회는 고유명사로서 특정한 교회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일컫는 보통명사다. 성서의 원문을 보면 단수의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복수로 ‘예루살렘 교회들’로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지명을 따서 편의상 예루살렘 교회라고 불렀을 뿐,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사나 교인들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임의로 정한 것처럼 다분히 ‘의도적인’ 명칭이 아니다.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가 복수인 ‘예루살렘 교회들’의 초대 주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에는 어림잡아 20여개의 다락방 교회들이 존재했으며, 어떤 다락방 교회도 독자적인 이름을 갖지 않았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존재하는 교회들의 총칭일 뿐, 별도의 ‘정관’과 ‘목사’가 있는 개별적인 조직 교회가 아니다.

굳이 교회에 이름을 붙힌다면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을 뿐이며 교회에 지명을 덧붙여 구별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안디옥 교회는 안디옥에 있는 교회,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서 모두 ‘주의 교회’일 뿐이다. 요컨대, 은연중에 다른 교회와 구별짓는 ‘우리 교회’라는 호칭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니라 제도적인 교회이며, 예수가 주인인 교회가 아니라 우리들이 세운 ‘목사’가 주인인 변형교회에 해당된다.

얼마전에 사랑의 교회 갱신위 형제들이 주도하는 금요마당기도회에 갔다가 봉변같지 않은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오목의 비서목사라는 주 아무개 목사를 위시해서 여러 목사들과 이른바 중직들이 나서서 “당신은 우리 교회의 교인도 아니면서 여기에 왜 왔소?”라고 따져 묻는데,순간적으로 “목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이건 정말이지 너무 무지하고 무식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목사와 중직이라는 자들의 입에서 ‘우리 교회’라는 말과 더불어 “우리 교회의 교인이 아닌 당신이 여기에 왜 왔소?”라는 경망스러운 말이 서슴치 않고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교회지도자라는 자들의 치명적인 무지와 저급한 영성에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인들마다 ‘우리 교회’가 있고, 따라서 개교회들이 각각 ‘다른 교회’라면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들만의 예수, 이른바 ‘다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교회는 오직 하나로서 예수가 주되시는 ‘원형교회’가 있을 뿐이다. 반면에,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우리 교회들’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엄격히 말하면... 이단이다.

내가 ‘아르케 처치’(원형교회)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주의 교회로 돌아가자면서 ‘교회 혁명’을 외치는 유일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며,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스스럼없이 우리 교회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다른 교회’에 속한 교인들로부터 모진 비난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끝내 저항하며 나아가는 이유가 있다. ‘우리 교회’는 개교회의 다른 이름일 뿐, 개교회에는 예수가 아니라 목사가 주인으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교회는 ‘목사 성직주의’의 아성이기 때문이며, 목사 성직주의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에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유일하신 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우리 교회’나 ‘다른 교회’라는 차별적인 낱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영적 무지의 증거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우리 교회’를 들먹이며 정작 예수의 거룩한 교회를 찬탈하려는 세상의 모든 이단적인 교회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영적 전사가 돼야 한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자. 작가.
성균관 대학교와 프랑스 아미엥 대학에서 공부했다. "당신의 성경을 버려라"의 저자이며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가로 활동한다. 단순한 열정, 젊은 날 아픔을 철학하다, 신이 된 예수, 루나의 예언,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예수의 역사와 신성 외 다수의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아르케 처치'에서 성경강의 및 번역, 출판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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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기 2015-01-21 11:13:27
뉴조는 왜 기성교단들을 공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이단으로 판명된 교단과 교회들이 많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제 칠일 안식교회 등 그들은 교묘하게 속이며 확장해나갑니다.

그렇지만 뉴조가 주로 공격하는 것은 멀쩡한 기성교단들이며 특히 이런 글을 통해 아주 교묘하게 공격합니다.

예를들어 도덕적으로 보이는 글 중간에 슬쩍 "...신약시대 십일조의 비성서적 근거를 제시해도..." 라는 문구를 넣습니다. PCA같이 교단 법 안에 십일조를 명시해서 성경적이라 인정하는 교단을 비성서적인 이상한 교단으로 만듭니다. 세상에는 자기의 혹은 자기교회의 욕심을 위해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사들도 있지만 목사적 양심에 따라 십일조를 가르치는 목사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그것을 안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구약에는 율법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양심과 순종으로 자발적으로 지킵니다.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부모를 때리겠습니까? 헌금은 예전에는 법이었지만 이제는 감사의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같습니다. 구약에서 동성애가 구역질난다고 하신 하나님이 신약시대라고 동성결혼을 인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라 드러난 것들은 당연히 해야합니다. 더군다나 십일조는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성도의 기본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뉴조의 가르침은 십일조가 비성서적이라 아주 못을 박습니다. 이런 글들로 십일조를 가르치는 교단들과 목사들을 공격합니다.

저는 옛날에 이곳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밑도끝도 없이) 같다는 글도 보았고 하나님이 홀로 영광받으시라는 말도 잘못된 말이라는 글도 보았습니다. 뉴조는 스스로 "이민사회의 유일한 정론지"라며 착각하지만 사실은 세상과 타협하는 자유주의에 물든 타락한 기독신문을 가장한 찌라시일 뿐입니다.

charles 2015-01-21 00:49:36
강만원씨는 십일조 낸적이 없죠? 본인의 수입의 얼마를 헌금하며 기부할까?
대형교회의 기도회는 가면서 언제 달동네교회는 가 본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주님의 명예 2015-01-16 13:03:51
올쏘!!! 교회 목사들은 절대 못하는 소리를 하셨네요.
탱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