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은 보수파영화가 아니다
국제시장은 보수파영화가 아니다
  • 이계선
  • 승인 2015.01.2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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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선 목사 ⓒ <뉴스 M>

“천만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이 뉴욕에 왔어요. 우리식구 같이 그 영화 보러가요”

애들에 끌려 극장으로 가면서도 팔려가는 당나귀처럼 기분이 찝찝했다. 동아일보가 ‘국제시장‘을 애국심을 끌어올린 보수영화라고 사설을 늘어놨기 때문이다. 천만관객영화는 “광해” “변호인”처럼 진보일색이었는데 “국제시장”은 보수때깔이라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은 한술더 떠 “나라사랑하세”영화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니 심기가 불편 할 수밖에.

대형스크린이 열리자 부산국제시장이 등장했다. 거지들이 몰려다니는 6.25때의 국제시장이 아니었다. 고층빌딩과 슈퍼마켓이 즐비하고 금빛우산을 바쳐 쓴 하얀전망대가 하늘높이 솟아 있는 관광명소였다.

아름답게 늙은 노부부가 무지개처럼 떠있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회상에 젖어있다. 주인공 덕수(황정민분) 영자(김윤진분)부부다. 덕수의 회상을 따라가며 스토리가 전개된다.

영화는 6.25 흥남철수부터 시작된다. 흥남철수를 보니 보수파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6.25가 터지고 공산군이 몰려오자 보수파 이승만정부는 부산으로 줄행랑을 쳤다. 국영KBS라디오에서는 대통령의 녹음테이프가 연속 돌아가게 해놓고.

“친애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국군은 연전연승 북진하고 있으니 곧 통일이 될겁네다. 안심하고 생업에 정진하시오”

한강을 건넌 이승만정부는 6월 28일 새벽 2시 30분에 몰래 한강교를 폭파시켜버린다. 그것도 모르고 한강교를 건너가던 차량 50대는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쳤고 540명이 떨어져 죽었다.

   
▲ 흥남철수때 찍은 흑백사진

흥남철수는 정반대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하던 유엔군과 국군 10만명이 흥남으로 집결한다. 자유를 찾아 남하하는 10만 피난민까지 몰려와 아비규환이다. 육로가 차단되어 뱃길밖에 없다. 193척의 함선에 군사와 장비를 싣고 나면 피난민이 탈 자리가 없다.

이때 28살의 청년통역관 현봉학의사가 알몬드소장에게 피난민 구출을 눈물로 호소한다. 현봉학의 호소에 감동한 알몬드는 장갑차 무기 군장비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10만 피난민을 태우고 부산으로 떠난다.

그게 1950년 12월 24일. 군인10만 피난민10만 도합20만을 태운 193척의 함선이 동해바다를 헤쳐 나간다. 홍해가 갈라지는 “십계”처럼 장엄한 대탈출이다. 한국판 쉰들러 현봉학의사는 평생을 의술과 통일운동에 바친 자유주의자다. 그 형은 반독재 민주화투쟁으로 유명한 이대교수 현영학박사. 서울시민이 피난 못 가게 한강교를 폭파하고 달아난게 보수주의다. 무기를 모두 바다에 버리고 10만 민간인을 태워 피난시킨건 자유주의다.

박근혜대통령이 영화에 나오는 태극기 경례를 보고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사랑하세”한것도 그렇다. 군사독재시절 국기 하강식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전국이 동작그만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걸 안하면 간첩죄에 걸렸다. 영화에 부부싸움 하던 부부가 애국가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일어나 국기에 대하여 경례하는 장면이 나온다. 관중들이 깔깔 웃었다. 박근혜식 감동이 아니라 조롱이다. 역사상 동작그만하고 국기경례를 시킨 독재자가 둘이 있었다. 독일의 히틀러와 한국의 박정희. 그래서 웃은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그 장면을 나라사랑으로 알고 감동한 모양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흥남철수때 아버지와 막내여동생을 잃은 덕수는 어머니 두동생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온다. 국제시장에서 구두닦기를 하던 소년가장 덕수는 청년이 되자 서독광부로 월남노무자로 나가 돈을 벌어온다. 악전고투 끝에 남부럽지 않게 살만한 노인이 되자 아버지와 막내 막순이가 그립다. 이산가족찾기에 나가 10만 신청인을 미친듯이 만나본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LA에서 살고 있는 막내여동생 막순이를 만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알고 남매는 눈물 흘린다.

국제시장이 히트를 친건 보수나 진보때문이 아니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광해“ ”변호인“도 노무현이야기라서가 아니다. 나는 영상미학을 잘 모른다. 화면이 아름답고 스토리가 재미있고 감동이 있으면 좋아한다. 첫눈에 반하게 하는 미녀처럼 ”국제시장“은 시작부터 내 눈을 사로잡았다. 대형화면을 재미있게 끌고 다니는 에피소드가 일품이다. 그중 하나 달구이야기.

   
 ▲영화 <국제시장> 갈무리

부산 국제시장 구두닦이시절부터 덕수와 단짝이 된 달구. 덕수가 돈을 벌러 서독광부로 떠나자 달구는 백마(서양미녀)를 타고 싶다며 따라나선다. 지하 1천미터 갱도에서 기름범벅이로 일하던 광부들에게 성탄절 쌍쌍파티가 열린다. 덕수는 파독간호사 영자와 쌍쌍춤을 춘다. 짚세기도 짝이 있다는데 짝이 없는 달구눈앞에 백마미녀가 나타난다. 파티를 주관하는 글래머 독일아가씨다. 달구는 암사마귀를 유혹하는 숫사마귀춤으로 글래머에게 접근하여 아양을 떤다. 사마귀는 암놈이 크다. 달구의 사마귀춤을 거들떠보던 글래머가 냅다 달려들더니 한발로 차버린다. 체구가 작은 달구는 글래머에게 차여 나가떨어지자 침실로 기어들어간다. 한탄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하얀 망또를 걸친 글래머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망또속에 칼을 숨긴게 아닐까? 달구는 벌벌 떠는데 달구의 코앞으로 바싹 다가온 글래머가 확 망토를 벗어내린다. 저것 보게! 망토가 아니라 잠옷이었고  칼이 아니라 독일미녀의 옥탑이 아닌가? 달려든 백마를 타고 겨우 일합을 치뤘는데 달구는 힘이 부쳤다. 글래머가 또 달려 들까봐 방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벌벌떠는데 글래머아가씨는 단꿈을 즐기며 코를 곤다. 배꼽을 쥐게 잘 만든 영화다.

흥남철수, 국제시장, 서독광부, 월남파병, 이산가족찾기....다 아는 이야기들이라 진부할것 같은데 새로운 추억으로 다가오게 했다. 윤제균감독의 메카폰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부산이 고향인 윤제균은 “해운대”로 천만관객을 모은 명장이다. 이번에 “국제시장”마저 천만을 돌파하여 최초로 쌍천만 감독으로 등극했다. “해운대” “국제시장” 모두가 윤감독의 고향 부산에 있는 이름들이다.

나는 영화를 보러 가기전에 현인의 “굿세어라 금순아”를 연습해뒀다. 영화속에서 반드시 듣게 될텐데 그때 같이 불러야지.

영화가 끝나려 하자 덕수부부는 이산가족찾기로 만난 막내동생 막순이 축하파티를 연다. 돌려가면서 노래를 하는데 덕수의 어린손녀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른다.

1.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이느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 왔다.

고음이라 힘드는지 일절만 부르고 만다.

“아빠 2절은 우리가 불러요”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은범이가 속삭였다. 그래. 조용히 부르는데도 슬프다.

2.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란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아빠는 상영시간 내내 울던데 무슨 생각을 했어요?”

2절을 함께 부르던 큰 딸 진명이가 물었다.

“북한에 남은 동포들 생각을 했어. 흥남철수때 북한동포들을 모두 싣고 와야 하는건데. 이민을 사는 해외동포들 생각이 나서 울었어. 이민자들은 지하 1천미터아래서 탄을 캐는 서독광부, 시신을 다루는 서독간호사, 목숨건 월남참전과 똑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우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더 열심이 공부하고 일해야지”|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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