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지성의 무덤
기독교적 지성의 무덤
  • 양승훈
  • 승인 2015.02.01 03:4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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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주의와 기독교 지성의 피난처
   
▲ 양승훈 원장 © <뉴스 M>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창조 여부는 논쟁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만드셨는가 하는 창조의 방법과 과정은 사정이 다릅니다. 창조론자들 간의 논쟁에서(창조론자와 진화론자의 논쟁이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하나님은 이 세상을 초자연적으로만 창조하시고 운행하실까요? 그렇다면 창조의 신비를 밝혀내고 있는 과학은 하나님이 만들지 않고 사람들이, 혹은 사탄이 만들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초대교회 때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영지주의적 사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지성의 무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주권적인 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초자연적으로도 만드실 수 있지만 자연적인 방법, 즉 하나님이 만드신 과학 법칙을 따라서도 만드실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니면 일부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과학 법칙을 따라 창조하셨을 지도 모르지요. 하나님은 주권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만 세상을 창조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만 창조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우리가 과학으로 연구할 수 없는 방법으로만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은 자칫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지성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연적인 것이나 초자연적인 것 모두에 대해 열려있다는 점입니다. 우주를 인과율에 의해 운행되는 폐쇄체계로 이해하는 자연주의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역사와 간섭에 열려있는 개방체계로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적 지성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만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은 우주가 우주 내적인 어떤 동인에 의해 저절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는 자연주의만큼이나 해로운 도그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창조과학의 핵심 논점은 무엇입니까? 창조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늘날 주류 천문학이나 물리학에서 우주나 지구의 창조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과학적인 이론이나 모델들, 때로는 과학적인 법칙조차 거부합니다. 우주 형성에 관한 대폭발이론도, 은하계 형성 이론도, 태양이나 태양계의 기원에 관한 이론도, 지구나 그 외 행성들의 기원에 관한 이론도, 달의 형성에 관한 이론도 부정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론들이 갖는 문제점들만을 계속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우주는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말씀으로, 그리고 순간적으로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창조과학은 현대 과학의 주요한 성과들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탄소연대측정법도, 우라늄-납 연대측정법을 비롯하여 오늘날 과학계에서 통용하고 있는 40여 가지 이상의 방사성 연대측정법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아직도 지구의 모든 화강암은 마그마가 땅 속 깊은 곳에서 굳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6천 광년 이상 떨어진 천체들을 설명하기 위해 광속이 과거에는 빨랐지만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대폭발이론의 급팽창 모델에서 광속 변화를 주장하는 것과는 다름). 어떤 사람은 아직도 우주의 반경이 6천 광년(우주의 나이가 6천년 정도라고 보기 때문에)보다 크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이보다 더 멀리 있는 천체들은 거리 측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태양이 핵융합이 아니라 중력붕괴에 의해 타고 있다는 기가 막힌 주장을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직도 “성경대로”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창조과학에는 과학적인 연구가 전혀 없다거나 창조과학자들의 모든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과학에도 과학이랄 수 있는 바가 있습니다. 한 예로 비록 주류 지질학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대부분 아마추어들이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노아의 홍수에 의한 전 지구적 격변과 이로 인해 모든 화석과 대부분의 지층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시 대부분 아마추어들이지만 우주나 지구의 연대가 6천년 이상일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록 전문적인 연구가 뒷받침 된 경우는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학술지도 만들고, 학회도 열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행본들이나 비디오, DVD 등도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관된 창조과학의 핵심 논점이나 근간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믿음은 이해를 추구한다"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만 우주를 만들었음을 말하고 있을까요? 사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 혹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는 말이지 창조의 구체적인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처럼 성경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창조론자들 간에도 창조의 방법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즉 인간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주를 만드셨다면 그것은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과학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현대에 와서 “과학적”이라는 말이 갖는 프리미엄이 크더라도 초자연적 주장에 대해 과학이란 말을 붙이면 안 됩니다. 과학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연구하여 하나님이 제정하신 과학적인 이론이나 법칙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초자연적인 사건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초자연적인 것이라면 믿어야 하고, 과학적인 것이라면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믿어야 하고, 열역학 법칙이나 상대성 이론은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믿는다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고 했고,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 1033-1109)은 "믿음은 이해를 추구한다"(Fides Quaerens Intellectum)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양면을 표현한 것일 뿐, 믿음의 대상과 이해의 대상을 구분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 양승훈 교수는 그동안 여러 차례 창조론 저서들을 집필하며 국내외 창조론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년 7월에 열린 그의 신간 <창조에서 홍수까지> 북 콘서트에서 양 교수는 성경과 과학,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창세기 주해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기자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혹은 과학과 비과학은 구분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는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물론 한 때는 초자연적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들도 있고, 드물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한 때는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후에 보니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실제로 오늘날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들 중에도 비과학적인 가정 위에 세워져 있는 것들이 있고, 반대로 일반인들이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도 전문가들이 볼 때는 과학인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있는 것들도 있지요. 이처럼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은 쉽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학자들이 나서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혼돈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구분하려는 노력이 빗나가면 “간격의 하나님” (God-of-the-Gaps)이라는 개념이 비집고 들어올 위험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즉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만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주장이지요. 여기서 하나님은 단지 인간의 이성적인 설명의 간격을 메워주는 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개념이 아니며, 그 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나 없는 것 모두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운행하신다고 믿는 것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는 사도신경의 진정한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것만으로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나 우주의 기원을 초자연적인 것으로만 돌려버리려는 것은 둘 다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편향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연주의나 과학주의를 주장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그 반대 극단으로 가는 것 역시 맹신주의나 반과학주의, 반지성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주를 초자연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아예 그 과정이나 방법에 대한 연구를 무시하거나 과학적 이론에 대안이 될 수 없는 초자연적 모델만을 주장하는 것은 바른 그리스도인의 태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피조세계를 연구하는 데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피조세계에 대한 책임 있는 청지기의 자세가 아니며, 그런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종교적인 게토(ghetto)가 형성될 뿐입니다.

분명한 근거가 있다면 비록 불신 과학자들이 발견한 과학의 법칙이라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제정하신 법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주장하려면 그리스도인들도 저들과 같이 피조세계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법칙을 찾기 위한 치열한 노력에 성실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우주나 생명의 기원에 관해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고 기독교 계통의 언론이나 일반 성도들을 상대로 대중적 캠페인에 주력하는 것은 충성된 청지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기원논쟁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쉽게 “초자연적 방법” 혹은 “말씀으로”라는 피난처에 숨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초자연”은 더 이상 기독교적 지성의 피난처가 아니라 무덤이 될 뿐입니다. 제가 창조과학회를 떠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점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양승훈 원장 /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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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콤 2015-02-07 03:19:58
양교수님의 과학과 믿음의 깊이가 다시 맘에 다가옵니다.
귀한글과 깊은 지혜의 말씀들 더많이 알려 주세요.감사합니다.

love134 2015-02-06 13:32:05
좋은 글 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많이 바뀌셨네요. 많이 부드러워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