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
한국교회,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
  • 양재영
  • 승인 2015.02.02 15:5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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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탐방2] 풀러신학교 이학준 교수 인터뷰

뉴브런스윅 신학교(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에서 동양인 최초로 종신교수로 재직했었던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이학준 교수가 작년 기독교윤리학과 학과장을 맡게 되었다.

이 교수는 프린스톤 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드류대학교와 NYTS 등에서 강의했으며, 1998년부터 13년 간 뉴브런스윅 신학교에서 신학생을 지도해 오다, 지난 2011년 9월 풀러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신학과 윤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교수는 이민 2세 정체성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G2G 크리스찬 교육센터’(http://www.g2gcenter.org)를 설립 고등학생들 위한 교재 iDentity(학생용과 교사용)을 출간하면서 교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본지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윤리적, 신학적 난제와 해답을 찾기 어려운 1.5세/2세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학준 교수와 나눌 수 있었다. - 편집자 주

 - 작년 풀러신학교 기독교윤리학과 학과장이 되었다고 들었다. 

뉴브런스윅에서 13년 가르치고 여기 온지 3년 반 되었다. 윤리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던 글렌 스타센(Glen Stassen) 교수가 은퇴발표하고 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래서 제가 기독교윤리학과 학과장을 맡게 되었다.

풀러신학교는 본교와 8개의 캠퍼스가 있는데, 전 캠퍼스의 기독교윤리과목과 관련된 사안들을 책임지는 자리이다. 풀러가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윤리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어진 책임이 큰 자리이기도 하다.

- 과거 학교 총장이었던 리차드 마우(Richard J. Mouw) 교수가 기독교윤리학과 평교수로 왔다고 들었다. 

그렇다. 이곳은 권위가 ‘직위’에서 행사되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 분의 영향력이야 여전히 있다. 하지만 본인이 저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도울 일이 있어 부르면 언제든 와서 돕겠다”고 하더라. 이게 기독교 정신이고, 사회 전체나 학교의 생산성을 위해 중요하다고 본다. 이곳 풀러에는 학장을 역임한 분들이 평교수로 오는 경우가 많다.

   
▲ 이학준 교수 © <뉴스 M>

- 권위가 ‘직위’에서 오는 게 어떻게 기독교 정신과 연결될 수 있는가? 

기독교 정신 중 중요한 것은 천직사상인데, 총장이 평교수로 올 수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천직사상으로 볼 수 있다. 천직사상은 ‘부름’과 ‘사역’에 있는 것이지 ‘신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목사와 장로 관계나, 평신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라고 해서 그들의 DNA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능’과 ‘지위’의 차이이지, 그걸 ‘신분’의 차이로 오인하는 것은 비기독교적 생각이다.

유대인의 과오 중 하나가 자신들이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것을 신분적, 존재론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특별한 민족으로 생각했는데, 그건 미션을 감당하기 위한 사명이었다. 사명을 감당했을 때의 칭찬과 상급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사명이 끝나면 그 사명을 맡은 사람이 이어가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많은 부분이 유교의 신분주의와 기독교 사명이 혼동되어 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신분주의(身分主義)적 사고가 복음의 본질적인 것과 괴리를 만들고 있다.

-그러한 원칙은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그렇다. 한국 사회는 분명 신분주의가 남아 있다. 조현아 사건과 같은 ‘갑과 을’ 사건은 신(新)신분주의의 대표적 형태이다. 돈, 강남, 학벌 등에서 과거 양반과 상민을 구분하던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다. 비록 태어나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위를 얻으면 그것을 영구적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것이 한국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신신분주의로 전환되었지만, 교회는 그것에 대한 깊은 신학적인 분석과 판단을 못했다고 본다.

목사는 분명 기름부음 받은 것에 대한 권위가 있다. 하지만 그건 신분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사명과 미션으로 이해하면 되는데, 자꾸 신분을 창출하고 그에 따르는 권리와 이익을 도모하고, 그걸 세습하려는 것이 오늘의 교회 모습이 되었다.

루터와 칼빈이 발견한 소명은 ‘만인제사장주의’이다. 하나님 안에서 신분은 같지만 사명과 미션 등의 기능은 다르다. 권위는 그 기능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학교 총장이 그 기능을 하다 그만두면 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윤리학과의 평교수라는 새로운 기능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주어진 기능이 사회를 원활하게 만들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신분과 소명을 철저히 구분하는 게 기독교 정신이고, 종교개혁 정신이다. 이 원리가 성서적 원리라고 본다.

- 현재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윤리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결국 ‘리더십의 위기’이다. 리더십의 위기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한국 교회 목회자의 정체성이 정립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목회자의 정체성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는가?’에 대한 것인데, 이점이 분명하지 않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면 ‘사람’보다는 ‘본질’에 충실한 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쉽게 이야기하면 1970-80년대에 교회가 부흥하고 경제가 부흥하다 보니 목사가 직업이 된 것이다. 정년도 보장되고,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도 높아지니 사회적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무허가 신학교가 난립하고, 마구잡이로 목회자가 생산되다 보니, 목회자 정체성이 분명한 목사의 숫자가 상당히 작다.

또 하나는 ‘교회의 정체성’ 문제이다. 세상의 기업이나 노동조합, 학교와 달리 교회만이 가진 정체성을 성도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체성이 분명하면 그 안에 가치가 생기기 때문에, 아무리 세상에서 잘 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이 약하니 세상의 정체성과 기준이 스며든 것이다.

대표적 예가 ‘카리스마가 있느냐’, ‘설교를 잘하느냐’, ‘교인을 불리느냐’ 등의 가치들인데, 이런 가치에 휘둘려 목사들은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안수, 학위, 테크닉만 가지고 교회에 들어오고 있으니 하나님의 방법과 세상의 방법을 구분할 수 있는 신학적 판단 능력을 많이 상실했다고 보여진다.

한국교회는 현재 목사도 성도도 많이 혼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마치 성장을 하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라는 기준이 지난30-40년 동안 개신교의 암묵적인 기준이 되어버린 결과 이젠 성도들이 그 기준을 목사에게 씌우고 있다. 새로운 목회를 꿈꾸는 목사들이 아무리 잘하려 해도 장로들이 그 기준을 가지고 빨리 성장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목회자’라고 몰아가는 시대이다.

목사로부터 시작해서 들어온 약한 정체성과 세상의 기준이 교인들에게 공유되고, 그 공유된 것들이 거꾸로 새로 목회하려는 사람들에게 부과되니 새로운 목회를 하려는 사람들이 발 붙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총체적 난국이다. 정체성이 약한 교회가 정체성이 약한 목회자를 만나니 시류에 따라가는 교회가 된 것이다.

-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라 보는가?

   
▲ <한국교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산다>(이학준 저, 새물결플러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지’라는 생각은 우리의 단순한 꿈일 뿐이다.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급속히 무너질 것이라고 본다. 서울과 지역의 몇몇 대형교회는 자본주의 경영방식의 적용을 통해 더 많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수평이동으로 늘어나는 소프트 크리스천으로 채워지겠지만, 나머지는 결국 바닥을 칠 것이라고 본다.

한국교회는 재정적으로도 지난 15년 동안에 미래를 보며 준비한 것이 별로 없다고 본다. 미국교회들은 긴 안목으로 미래를 위한 자산관리를 잘하고 있는 반면, 한국교회들은 거꾸로 교회건물 짓는 데 대부분 투자했다. 이미 많은 교회 건물들이 경매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갈수록 가톨릭과 불교와의 경쟁에선 뒤지고 있다. 더욱이 개신교는 주변과 변두리에서 일고 있는 일부 갱신운동을 제외한 기존의 교회에선 어떠한 대응능력도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 한국 개신교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들어가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포로로 끌려갈 때 온갖 수치를 다 당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성소까지 무너지지 않았나. 중요한 것은 포로 시기에 새로운 신학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 비전으로 새롭게 한국교회의 사명을 이해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없다. 과거 IMF를 겪은 기업들이 가진 위기의식을 교회들이 갖지 않다면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공적신앙’이 없는 종교는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가 고려 말까지 오는 동안 나라의 국교였는데 유교로 바뀌지 않았나. 유교가 위기와 침략 속에서 그 역할을 못하므로 개신교가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 과정에서 교회가 산업화는 받아들이고 민주화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톨릭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러니 그쪽으로 민심이 간 것이다. 역사 속에서 국민들이 종교를 어떻게 보는 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신교는 고려말 불교처럼 사회 내에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그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나. 

그렇다. 이민교회는 한국교회와 비교해 볼때 도전 자체가 다르다. 이민교회의 문제도 많지만, 그래도 이민자들의 힘든 삶을 어느 정도 목양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권위만 생산하고 있는 반면, 이민자들의 필요를 50% 이상 채워주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옮기더라도 다른 교회라도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민교회는 목양적 기능은 비교적 잘 감당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와 역사성을 가지고 미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 또한 이민교회를 거쳐 간 1.5세와 2세들이 어떻게 이민교회를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없다. 교육의 컨텐츠가 없으니 어릴 땐 부모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완전히 결별하게 되는 것이다.

-현 이민교회의 2세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이민교회에서 2세 교육은 변두리이다. 2세 교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 후세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게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이 좋아야 부모가 온다는 생각, 즉 교인 끌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교회가 2세 교육에 대한 비전도 열정도 없다. 따라서 한인교회를 다니던 아이들 가운데 대학에 들어가면 술, 마약, 혼전 성교 등 믿지 않는 아이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가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한 것이라고 하기보다 그저 베이비시팅만 해준 것이다.

오늘 시대는 모든 젊은이들이 자기 고민 안에서 자신이 진짜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대이다. 부모가 기독교인이니 자녀도 기독교인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기에 교육의 질이 높아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 화제를 바꾸겠다. 동성애에 있어서 입장이 궁금하다. 

학교의 동성애에 대한 입장은 과거에 발표한 원칙 그대로임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겠다.

교회는 미국에서 자라나는 젊은 세대(밀레니얼스)의 80%가 동성애나 동성결혼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 80% 안에는 복음주의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은 교회에 와서 이 문제에 관한한 귀를 닫고 있다.

한 예를 들면, 교황청과 가톨릭의 기준은 이혼한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피임도 할 수 없으며, 낙태는 말할 것도 없다. 바티칸의 입장은 그렇다. 그런데 특별히 미국의 가톨릭교인들의 80-90퍼센트가 피임을 하고 있다. 바티칸이 아무리 말해도 따르지 않는다. 가톨릭 교인들은 교회가 틀렸다 생각하고 자기생각대로 간다. 동성애 문제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2013년 풀러신학교가 원테이블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황진기 교수(한인목회학), 후안 마르티네즈 부총장, 이학준 교수(신학윤리), 이광길 교수(한인목회학). (미주뉴스앤조이 자료사진)

바나 리서치(Barna Research) 조사 결과를 보면 젊은이들이 교회에 가지 않으려는 첫째 이유로 호모포비아(Homophobia, 동성애 혐오)를 들고 있다. 그들은 ‘교리로 다른 사람들이 자살하도록 만들지 말라’고 한다.

교회는 동성결혼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왜 그렇게 동성애자가 생기고, 자살하고, 인권의 문제가 되어가는 가’에 대한 논의 자체는 활발하게 교회 안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왜 신학적으로 동성결혼을 찬성할 수 없는 가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고 깊은 신학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철저히 보호하고, 교회가 철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성경적 원리는 절대 양보하면 안되며, 교회 안에서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 문제와 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왕성한 신학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입장과 생각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게 된다.

오늘 이민교회나 한국교회가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경험하는 이슈들을 신학적으로 절대 피하면 안된다. 낙태, 이혼, 계약직(갑을 관계), 청년들의 혼전순결, 동거 등의 문제에 대해서 일찍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충분한 대화 속에 청년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와 목회자가 그만한 역량이 있다고 보는가? 

교회나 목회자가 겁을 내서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한 신학적 정리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와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괴리를 메우기 위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G2G의 원칙은 이것이다. ‘아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우리가 꼭 다룬다.’ 교회가 문제를 두려워하거나 피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해답이 되시고 계신다. 우리의 과제는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는 해답을 오늘 시대에 맞게 풀어내는 것이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답이라고 이야기는 해놓고 답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오늘 사람들의 경험과 사회 문제 자체가 많이 달라졌고, 질문 자체도 변화했는데 오늘도 30년 전의 답을 아직도 그대로 주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성경의 진리는 바뀌지 않지만, 해석과 설명은 시대 속에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교회는 오늘날 사람들이 던지는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동성결혼 문제이다.

- 이민 교회의 대 사회적 참여가 많이 부족한데

그렇다. 미국의 많은 백인 교회와 흑인교회들이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해 그 기초를 잘 닦아 놨기 때문에 한국이민교회가 정확한 판단을 가지고 한인들을 위한 사회적, 신학적 목소리를 바로 낼 줄 안다면 상당히 사회적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공적신앙을 만들 수 있는 역량과 신학적 사고를 가진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많지 않아 상당히 아쉽다.

이민교회는 이민교회 고유의 문제를 찾고 그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마이클 브라운 사태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미국의 사회 문제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민교회가 이곳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을 다한다면, 앞으로 남북문제, 중국 문제 등 할 일이 엄청나다 할 수 있다.

인터뷰 정리: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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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134 2015-02-06 13:14:56
동성애에 대한 교수님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들을 몇 권 소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hadow 2015-02-03 12:48:05
역시 이학준 교수님이십니다.
뉴스엠에서 가장 값진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atom 2015-02-03 09:31:37
시의 적절한 참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명을 감당했을 때의 칭찬과 상급은 분명히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상급'이란 뭘 말하는 건가요? 그냥 메타포인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어떤 차등적'상급'을 말하는 건지... 이학준 교수님의 의견을 좀 듣고 싶습니다.

atom 2015-02-03 09:29:09
시의 적절한 참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명을 감당했을 때의 칭찬과 상급은 분명히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상급'이란 뭘 말하는 건가요. 그냥 메타포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적 차등적 '상급'을 말하는 건지... 김학준 교수님의 의견을 좀 듣고 싶습니다.

atom 2015-02-03 05:47:55
시의 적절한 참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명을 감당했을 때의 칭찬과 상급은 분명히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상급'이란 뭘 말하는 건가요. 그냥 메타포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적 차등적 '상급'을 말하는 건지... 김학준 교수니의 의견을 좀 듣고 싶습니다. '상급'이란 인간 세상에서는 '상대적'의미가 큰데요, 절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에서도 상대적 의미의 '급'이 있다는 건지... 여전히 논란이 되는 주제인데, 교수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