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사이'가 아니라 '사람 사이'
'별 사이'가 아니라 '사람 사이'
  • 김기대
  • 승인 2015.02.0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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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에서 사람을 만나다

일찍 세상을 뜬 남편을 둔 아내의 기억 속 남편은 항상 젊은 사람이다.  아내는 할머니가 되어도 그녀가 고이 간직한 빛바랜 사진 속 남편은 청춘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게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한가운데 직접 있었던 사람들의 집에서 흔히 발견되는 장면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진 속 인물은 그 자식들보다도 더 젊은 모습으로 집의 중요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속 인물의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듯이 남은 자의 기억 속 시간도 멈춰 있다.  젊은 시절 나라를 지킨다며, 가족을 위해 돈을 번다며 떠날 때  멈추어 버린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당시 처럼 젊은 여인일 뿐이다. 그녀에게는 두 개의 시간대가 있는 셈이다. 멈추어버린 젊은 시간과 살아가면서 먹게 된 세월이라는 시간.

   
▲ 영화 '인터스텔라'

별 사이를 의미하는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4년)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헝거게임: 모킹제이> (프란시스 로랜스 감독, 2014년)와 박스 오피스 선두를 경쟁했는데 한국에서는 <인터스텔라>가 미국에서는 <헝거게임>이 흥행 우위에 있었다. 영화평론도 겸하고 있는 팝칼럼리스트 김태훈은 진중권과의 대담에서 이 부분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한국의 경쟁 상황은 살기위해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헝거게임의 내용과  크게 다를바 가 없으므로 굳이 영화관에 가서까지 그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헝거게임>의 흥행이 주춤한 이유였다는 것이다. 반면 <인터스텔라>는 상대성 이론이니 웜홀이니 하면서 마치 학습 영화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높은 교육열을 가진 부모들이 청소년들에게 많이 권했다는 것이다.  재미있으면서도 한국의  현상황을 잘 설명하는 씁쓸한 분석이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별과 별 사이라는 뜻이다. 과학자이면서 인문학적 글쓰기로 유명한 정재승 박사는 학자들이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굉장히 먼 거리’라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설명하면서 영화의 자문이었던 킵 손의 논문 ‘시공간의 웜홀과 성간여행에서의 그 유용성’(Wormholes in Spacetime and Their Use for Interstellar Travel)에서 따 온 제목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터스텔라>는 과학 지식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기 두려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위한 사전 지식같은 것도 인터넷 상에서는 떠다녔고 최근에는 <인터스텔라> 영화를 해설하는 책도 등장했다.

<인터스텔라>는 분명 과학 영화지만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과학적 지식의 습득이 아니다. 도구가 주제에 앞서 한국 관객에게 다가왔지만 별들 사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보여주는 영화가 <인터스텔라>다. 놀란 감독도 어느 인터뷰에서 “인간의 경험치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관객들을 데려간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그리고 인간성에 초집중하게 된다. 우리 영화는 그 부분을 평가할 때 굉장히 솔직하려 애썼다”고 했다.

시간도 어차피 피조물인 것을

물리적 시간에서 의미를 찾지 않는 영화 답게 지금 보다 미래인 시간, 그러나 장면은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기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 환경 때문에 모든 식물은 고사하고 이제 옥수수만 재배 가능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지구에 먹을 것이 없어지는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직 우주 비행사 쿠퍼(매튜 매커너히 분)는 장인과 함께 아들 톰과 딸 머피를 키우며 살고 있다.  머피는 요즘  2층 자기 방 안의 책들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가 유령때문이라고 하지만 전직 우주 비행사 쿠퍼에게 유령은 허상이다.

세상은 전직 우주 비행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첨단 과학의 상징인 우주 개발에 돈만 쏟아 붓다가  지금의 지구 위기가 도래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맹신 시대에서 과학의 불신 시대로 변해 버린 것이다..

중력 이상 현상을 분석해  좌표를 알아낸 쿠퍼가 도달한 곳은 우주개발국 NASA였다. 우주 개발이 지구 파괴를 앞당겼다고 믿는 세상에서 NASA는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쿠퍼와 머피는 물리학자인 존 브랜드(마이클 케인 분) 과 딸 아멜리아 (앤 해서웨이 분)를 만나게 된다. 브랜드 박사는 NASA에서 비밀리에 추진중인 ‘나사로’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준다. 성경에 나오는 부활한 그 나사로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다. 브랜드 박사의 설명이 길게 이어지지만 결론은 지구는 어차피 종말을 맞게 될 것이므로 NASA에서 무인탐사선을 보내서 지구와 조건이 비슷한  12개의 별을 찾아 이곳에 12명의 유인 선발대를 보냈고 그 중에서도 인류가 살 가능성이 있는 행성 3개를 추려냈다는  나사측의 설명이었다.

이중 플랜 A는 우주선을 쏘아 인류를 태우고 해당 행성으로 가는 것이고. 플랜 B는 500여 개의 수정란을 쏘아 보내 새로운 행성에서 인류를 재건한다는 내용이다. 플랜 B를 따르면 지구에 남은 사람은 지구와 함께 종말을 맞게 된다. 플랜 A를 가능케 할 중력방정식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인류를 실어 나를 우주선 인듀어런스호는 우선 3개의 행성을 탐사하고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그것이 불가능하면 몇 개의 수정란들로만 플랜 B를 계획에 옮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경험자 쿠퍼가 우주선 인듀어런스호의 선장을 맡자,  머피는 아버지의 위험한 여행을 만류한다. 불안해 하는 딸에게 자신의 것과 닮은 시계를 주며 귀환을 약속한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한다면 상대성 이론에 의해 비슷한 나이가 된 서로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며, 그때 두 시계의 시간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비교해보자는 것이었다. 머피는 떨어진 책들의 배열에서 머물라 (STAY)는 신호를 찾아냈다고 말하지만 쿠퍼는 우주를 향한다. 그때 다시 책장에서 책이 한 권 떨어진다. 하지만 쿠퍼는 이를 무시하고 결국 집을 떠나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우주로 향한다.

   
▲ 영화 '인터스텔라'

2년 후 동면에서깨어난 4명의 탐사대원들은 토성의 궤도에서 웜홀을 발견한다. 웜홀을 통과한 인듀어런스 호는 새로운 우주에서 별들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블랙홀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밀러 행성(그   별로 오래전 떠난 탐사대원의 이름이다) 을 비롯한 지구 환경과 비슷하다고 보고된 별들이 있다. 이 행성들은 지구와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행성의  한 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에 해당한다.  빨리 탐사작업을 마쳐야 하지만 거대한 파도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고,  대원 하나를 잃는다.  이러는 동안 지구 시간으로 23년이 흘러가 버렸다.

시간 왜곡 구역 밖에 대기하던 모선 인듀어런스호로 돌아 왔을 때 도착한 지구로부터 메시지에 나온 쿠퍼의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버렸다. 어른이 된 아들 톰과 머피는  영상 메시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쏟아 댄다.  아버지에게는 고작 2년의 시간이었지만 지구에서는 20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지구의 존 박사는 노환으로 죽어가면서 제자로 삼은 머피에게 자신이 그들을 속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존은 처음부터 플랜A가 불가능함을 알고 플랜B의 실행을 위해 아멜리아, 머피와 쿠퍼를 속였던 것.  말하자면 딸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고 쿠퍼의 입장에서 보면 가족을 죽이면서 혼자만 살자고 우주에  도망쳐 나온게 된다.

화가난 쿠퍼는 인듀어런스 호로 지구로 복귀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러저러한, 그야 말로 과학적 해설이 필요한 여러가지 현상을 거쳐  블랙홀의 경계를 넘은 쿠퍼는5차원의 존재가 보내준 공간에서 머피를 발견한다. 이 때 만난 머피는 책이 자꾸 책장에서 떨어지는 것을 의아해하던 때의 머피다.  쿠퍼는 우주 저편에서 머피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딸이 유령의 장난 같다고 했던  그 일은 미래의 아버지가 머피에게 보내던 신호였던 것이다. 당연히 당시 쿠퍼도 몰랐던 일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늙은 딸과 젊은 아빠는 인류가 도피한 새로운 우주 공간에서 조우한다. 존 박사는 불가능을 이야기했지만 아버지를 만나려는 딸의 노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일반 관객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중력  방정식이 풀린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 영화

영화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다.  우주 개발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메시지,  미국 자본주의의 총아인 프로 스포츠에 대한  변론(초라해진 뉴욕 양키스 야구 게임이 영화 중에 나온다),  시간의 상대성,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인 타스와의 우정, 극한 상황에서 리더십의 중요성, 가족의 의미  등 영화는 많은 주제들을 수학 공식들처럼 우리에게 주입시킨다.  그러면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야 만다.

2014년 <노아>와 <엑소더스> 두 영화가 성서를 되살리는 것이 놀란 감독은 불편했을까?  브랜드 박사가 추진한 인류 구원프로젝트의 이름은 '나사로'지만 그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사기였다고  브랜드 박사는 고백한다. 시간의 비밀을 푸는 5차원의 존재들은 얼핏 보면 인간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존재같지만 쿠퍼에게 그들은5차원 마저 활용할 수 있게된 진보한 미래의 인류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놀란은 인듀어런스 호와 여주인공 아멜리아를 통해 인류의 가성성을 긍정한다.  인듀어런스호는  1914년 어니스트 새클턴이 선장을 맡아 남극탐험에 나섰던 배로 유명하다. 그는 실패했지만 남극의 혹한을 이겨내고 선원들과 함께 무사히 귀환한 사건으로 대부분의 성공학 강사, 자기 개발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아말레아는 미국의 최초 여류 비행사의 이름이다. 놀란 감독은 인류의 미래는 인류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 계속 강조한다.

서로 연결된 삶

놀란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졌던간에 우주와 인간, 시간의 관계라는게 신비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별마다 시간이 각기 다르게 흐르는 것은 중력방정식으로만 설명되지 않고 일찍 떠난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 선 할머니에게도 설명된다. 딸보다 훨씬 늙어버린 아버지 쿠퍼의 경우는 일찍 아버지를 여읜 집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을 보고 나름 자신의 세상을 꿈꾸어  왔다.  70년대 번안 가요는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의 너의 별  ~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는다”고 노래했고 , 윤동주는 ‘별헤는 밤’에서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고 읊는다.  별을 보며 자기만의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처럼 <인터스텔라>는 시가 아니라 과학으로 인류의 꿈을 지속시키려고 노력한다.

과학이 과학으로만 설명되지 않기에 놀란 감독 역시 사람 사이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별의 주인이 되어 버린 선배 탐사대원들은 고집불통으로, 죽어 버린 시신으로 쿠퍼와 아멜리아를 맞는다. 그들의 별이 혼자의 별이 되어 버렸을 때  즉 관계의 끈이 끊겼을 때 희망 대신 절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의 시간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예언자들은 점쟁이로서 미래를 예측하는게 아니라  지금의 가치에 충실하라고 가르친다.  예정론이 운명론과 다른 이유도 지금의 삶에 초점을 두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쿠퍼가 긴 (지구 시간 기준으로) 우주 여행을 거쳐 도달한 시간은  딸 머피와 함께 대공황기와 같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던 바로 그 때였다.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살아가는 자세 안에 하나님의 예정은 숨겨져 있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마치 <인터스텔라>를 본듯이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전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로 우리들에게 온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여행을 반복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무한한 거리를 가로질러 갈 수 있겠는가? 그 일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더구나 그 방법은 익숙한 길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자랐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자리를 잡는, 이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우리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은 모든 나무 중에서 어떤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 (십자가를 의미함)

(중략)

못에 박혀 있는 동안에도 영혼이 하나님의 방향으로 주의를 돌렸던 사람은 자신이 우주의 바로 그 중심에 못 박혀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저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중심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이다.  공간에도 속하지 않으며 시간도 아닌 아주 다른 차원에서 이 못은 모든 피조물의 세계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두꺼운 벽을 통과하여 하나의 구멍을 뚫는다. 이 놀라운 차원에서 영혼은, 육체가 존재하는 장소와 순간을 떠나지 않고, 모든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하나님 계신 곳으로 간다. 그곳은 창조와 창조주 사이의 교차로에 있다. 이 교차점은 십자가 가지의 교차점이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

책장을 사이에 두고 머피와 쿠퍼는 긴 시간의 장벽과 우주와 지구라는 장벽을 넘어 막 만나려고 한다.  그 순간의 머피와 늙은 머피는 시공간에 매여 있었지만 마음은 늘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다. . 쿠퍼는 우주라는 지구의 물리적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시공간에 머물렀지만 마음은 항상 딸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지켜 보고 있다.  지금의 내 속에 미래가 있고 미래의 내 안에 지금의 내가 있다.

결국 <인터스텔라>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별의 이야기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였다. 사람의 관계가 회복될 때 영혼도 진리도 발견된다. 놀란 감독은 어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시간도 결국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이 피조물 안에서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감독은 보여주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3:17-19)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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