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독립선언이 던지는 조소(嘲笑)
2·8 독립선언이 던지는 조소(嘲笑)
  • 전현진
  • 승인 2015.02.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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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M 전현진

“몇 년 만인가, 이 강당이 가득 찬 것이.” 2월 7일 재일본한국YMCA(부이사장 정순엽 목사) 회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8독립선언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념식에 온 ‘나름’ 거물급 인사들 덕분이다. 수년 째 이 행사를 여러모로 돕던 한 한국인 목사는 몇 년 째 소식조차 없던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보훈처장과 주일대사, 광복회장, 국회의원 등, 때 아닌 손님들 탓일까. 강당은 유난히 들뜬 분위기였다.

2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강당 좌석은 모두 찼다. 강당 뒤편 방송국 카메라 뒤쪽으로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벽에 기대 서성댔다. 동경한국학교 학생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날 어머니 합창단과 함께 합창을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한국식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저마다 조잘대며 떠들었다. 벌써 눈을 붙이고 잠든 녀석도 있었다. 강당 입구에는 방명록과 통역기가 놓여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어가 서툰 재일동포들이 주로 기념식을 찾았다. 한 참가자는 지난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와 재일교포 대부분이 일본어가 오히려 편할 정도로 일본에서 오랜 세월 머문 이들이라고 했다.

단상 뒤편으로 2·8독립선언서 전문으로 만든 병풍이 펼쳐져 있고, 한 쪽 끝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 적힌 화환이 세워졌다. ‘2.8 독립선언의 노래’가 동경한국학교 어머니합창단의 목소리를 타고 울렸다. 기념식이 시작됐다. 국민의례, 추모, 개식사와 기념사가 이어졌다.기념사를 지나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 재일한국유학생연합회 회장이라는 한 청년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2·8 독립선언을 낭독하게 되 영광”이라고 말한 그는 한 줄 한 줄 독립선언서를 끝까지 읽어갔다.

“우(右) 대표자 최팔용·이종근·김도연·송계백·이광수….”

낭독이 마치고 기념식은 계속 됐다. 한국에서 찾아 온 국회의원은 뚜벅뚜벅 단상에 올라 “새누리당 비례대표 황인자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설명하더니 치사(致詞)를 마치고는 국기를 등지고 걸어 내려왔다. 치사에 이어 동경한국학교 합창단이 단상에 올라왔고 동요에 담긴 독립 의식을 이야기하며 “홍난파가 작곡한 반달을 부르겠”다며 한 학생이 대표로 말했다. 합창을 마치고 기념식의 끝은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재일본대한민국청년회 회장이 단상에 올라섰고, 서툰 한국어로 만세삼창을 제안했다.
 

   
  ⓒ뉴스M 전현진

독립선언 기념식에서 느낀 건 독립을 향한 조상들의 열정과 그 정신을 지키려 애써온 재일동포들의 헌신 뿐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강당을 가득 채운 건 역사가 던지는 반어적 냉소였다. 2·8독립선언서를 쓴 이광수는 스스로 가야마미쓰로(香山光郞)라 창씨개명하고 자신을 ‘황국신민’이라 했다. 합창단의 노래 속에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노래라며 합창단이 부른 노래도 친일파로 유명한 이가 작곡한 곡이다. 고국에서 날아온 국회의원은 동포들에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아닌 ‘새누리당 비례대표’라 자신을 소개한다. 독립선언을 기억하고 이를 지켜내려 애써온 이들은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더 편해졌다. 어쩌면 96주년을 맞는 동안 가장 성대하게 치러진 것 같다는 이번 기념식은 순전히 보훈처장의 참석 때문인지 모른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그 정신에 순전한 감사와 찬양을 보내기 힘들게 하는 이런 ‘옥의 티’들은 어쩌면 역사가 보내는 조소(嘲笑)인지도 모른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조선인들에겐 참기 힘든 비아냥거림이다. 엄숙한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념하는 저리에서 이리 삐딱한 시선을 보낸 기자에게 ‘독립 정신을 폄하하는 것이냐’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낀 점을 남겨야 한다면 역사가 던지는 이 모순 가득한 블랙 코미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늘 흐릿하고 뿌옇다. 선명한 원색의 색감을 즐기는 민족에게 그래서 굴곡 깊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던지는 이 조소는 참기 힘들어 애써 외면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현재도, 언젠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평가의 잣대로 재단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 그들도 우리의 시간들을 선명하고 분명하게 정의하고 규정하려 할 것이다. 역사는 어쩌면 과거의 불편한 지점을 지우고 무시해 하나 둘 또렷한 무언가를 남기려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흑은 흑으로, 백은 백으로.

하지만,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늘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 옳은지 분명한 기준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역사는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믿음뿐이다. 현재와 동시적으로 살 수 없는 우리는 신앙의 영역에서 역사를 볼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친일 문학가가 쓴 독립선언서에서 독립운동의 정신과 민족의 아픔을 읽기 위해선 믿음과 애정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96년 전 기독청년들이 모여 조국을 기억하고 위협을 무릅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그 진심을 이해하는 길은 성대한 기념식이 아니라 가만히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들의 의지를 따라가려는 믿음과 애정뿐이다. 
 

전현진 주재기자(도쿄) / jin23@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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