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현지시간) 낮 미국 앨라배마 주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50년 전인 1965년 3월7일, 백인 경찰의 곤봉에 맞아 수 십 명이 부상 당해 ‘피의 일요일’로 불렸지만, 미국 흑인 참정권 운동의 불을 댕긴 장소에 4만여명이 다시 모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50년전 ‘셀마 행진’에 나선 참가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정당한 미국을 만들려는 이들의 노력이 승리를 거뒀고, 이 사건이 미국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역설했다.
▲ 지난 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왼손에는 이곳에서 남편과 투표권 쟁취 운동을 처음 시작한 아멜리아 보인튼 로빈슨의 손을, 오른손에는 존 루이스 앨라배마주 민주당 하원의원의 손을 잡고 50년 전처럼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위를 가로지르는 '셀마의 행진'을 하고 있다.(백악관 사진) |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10일 조지아 주 아틀란타를 방문 조지아 공대에서 학자금 융자를 받은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학자금 보조 권리장전(Student Aid Bill of Rights)'을 1만여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공표했다.
권리 장전은 연방정부 학자금 융자를 제공하는 교육부 및 정부와 계약을 맺은 대출 업체 등은 채무자들의 상환이 밀렸을 때 이를 반드시 고지해야 하며, 더 나은 상환 조건 등에 대해서도 안내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셀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등이 50년전 앨라배마 주도(州都) 몽고메리까지 87㎞를 평화롭게 걸어간 ‘셀마-몽고메리’ 행진의 출발점이다. 당시 참가자 600명은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무자비한 진압을 당했다. 이틀 후인 3월9일에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 폭력으로 인권운동가 제임스 리브가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미 전역의 여론이 들끓으면서 린든 존슨 대통령은 군 병력을 보내 평화 행진을 지켜줬고, 그해 8월에는 흑인 참정권을 인정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 아틀란타 방문과 셀마 50년을 계기로 킹 목사의 고향인 아틀란타도 관광 특수를 누렸다. 아틀란타 시내에 있는 킹 목사 기념관에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 킹목사의 아버지가 목회하던 에벤에젤 교회 내부, 지금은 교회로 사용되지 않고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킹목사는 이곳에서 협동목사로 있었다. |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민권센터가 있다. 흑백 분리주의자들의 사진을 공개한 전시물 앞에서는 우리는 언제쯤 친일파들의 사진을 저렇게 공개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했다. 민권운동에는 의식있는 대중음악가들도 함께 했다. 존 바이에즈와 밥딜런의 사진 앞에 섰을 때 마침 존 바이에즈의 '오 프리덤'(Oh! Freedom) 이 흘러 나왔다.
▲ 민권센터 안에 있는 흑인 차별주의자들의 사진 |
하지만 이 센터가 들어선 부지가 코가 콜라에서 제공한 땅이라는 데서 묘한 이질감이 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가 콜라 박물관 바로 옆에 코카콜라의 기부로 세워진 민권센터를 보면서 인권도 코카콜라의 세계에 속한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북한 인권도 그들의 인권보다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판에 인권이 자본주의 상품이 되어버린 정도는 그냥 견딜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서글픔이 다가온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