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종교'는 필요 없다
'성직자 종교'는 필요 없다
  • 신성남
  • 승인 2015.03.22 12:15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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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혁명은 '섬김의 자리'로 가는 것
   
▲ 신성남 ⓒ <뉴스 M>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역자들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이런 신실한 분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탄식합니다. 왜 하필이면 거룩한 교회에 거짓 목사, 삯꾼 목사, 그리고 귀족 목사들이 계속 넘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교회 내에 그들이 먹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교회처럼 멋진 영업장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교회란 학력 세탁, 경력 세탁, 신분 세탁, 재산 증식, 그리고 노후 보장까지 제공해 주는 '돈 내는 바보'들이 가득한 꿈의 직장입니다. 현재 무려 14만 명에 달한다는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정말 모두 소명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해서 목회자가 되었을까요.

수년 전 어느 목사님이 한 보수교단의 신학교에 가서 간단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참석한 신학생의 약 90%가 "만일 십일조가 폐지된다면, 자신은 목회를 포기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지금 목회지망생들의 소명 수준이 대충 이 정도입니다.   

목회가 쉽다고 생각하는 분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사들에게는 목회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몇가지 기법만 잘 쓰면 생각보다는 목회가 제법 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정통의 모습으로 위장한 '자칭 성직자들'  

요즘 웬만한 귀족 목사들의 설교는 그 제목과 본문에 관계 없이 결론은 거의 다 비슷합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입만 열면 습관처럼 반복하는 말은 "하나님께 충성하라"와 "하나님만 의지하라"입니다. 이는 분명히 성경의 가르침으로 누구도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당연히 모든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충성해야 옳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못 사는 것이 탈이지, 그것을 권면하거나 강조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결정적인 함정은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내부로부터 치밀하게 좀먹고 있는 성직주의자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필요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선지자와 사도는 물론, 필요하면 하나님 말씀을 동원해서라도 기필코 그 불의한 목적을 달성합니다. 이는 마치 사탄이 광야에서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한 것과 같은 수법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그들의 설교 속에는 여러가지 부가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선 교회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회마다 빠짐없이 출석하여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주 반복되는 기복적 설교를 듣고 꾸준히 세뇌되어, 목사님 말 잘 듣고 얌전하게 우민화되고 맹신화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목사의 충실한 홍위병이 되어 헌금 잘 바치고, 건축 잘하고, 그리고 교세 확장하는 데에 크게 쓰임 받으라고 합니다. 그게 복받는 비결이랍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세력 확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오도하는 것이지요. 더욱 심각한 점은 이단과 사이비들도 이와 똑같은 수법으로 자신들만의 '종교 왕국'을 확대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귀족 목사들이 이런 방법으로 교회를 대형화한 후에 필연적으로 취하는 다음 수순은 교권 장악, 목회 독재, 재정 남용, 공금 횡령, 인사 전횡, 그리고 교회 세습 등으로 이어지는 '교회 사유화' 작업입니다. 사실상 이들 중 상당수는 정통 교회의 모습으로 위장한 아주 '세련된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교회 담임인 K목사는 별도로 당회의 추가 승인 없이 매년 재량껏 쓸 수 있는 돈이 고액 연봉을 빼고도 무려 7억5000만 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교회 장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에 일반 교인들은 그 돈이 접대비인지 판공비인지 그 세부 지출 항목조차 제대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재정 장부를 숨기고 있는 근처의 다른 여러 대형 교회들도 이보다 얼마나 차이가 있을런지는 큰 의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초대형 은행빚을 내어 초호화 예배당을 건축한 '사랑의교회'의 장부 열람을 강력히 촉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중세 시대 이후로 변질된 교회의 부정과 부패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독일의 시인 괴테는 그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이런 심한 말까지 했을까요. "교회란 어떠한 부정한 것들을 다 삼켜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는 튼튼한 위장을 가졌다."

'종교 영업'으로 변질된 목회

알면서도 당하는 것이 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 일부 교회에 아주 잘 부합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매우 슬픈 일입니다. 사실 일반 교인들은 진짜 목사와 삯꾼 목사를 구분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정당한 절차와 합법적인 자격을 갖추어 목사가 되었고, 또한 설교 중에는 거의 옳은 소리만 나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충성하자"는데 거기에 무슨 이의가 있겠습니까.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지요. 하지만 이 말씀에 자신들은 쏙 빼놓고 적용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저 성도들을 이용하기 위해 크게 소리칠 뿐이지요. 실제 자신들은 돈을 의지하고 맘몬에 충성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충성한다는 목사가 과연 수억 대의 연봉과 고액의 추가 지원비를 서슴치 않고 챙겨 가도 될까요. 게다가 표절, 거짓말, 당회 시녀화, 날치기 제직회, 헌금 유용, 뇌물 수수, 성추행, 성직 매매, 외부 강사 영업, 무분별한 은사 집회, 그리고 교회 무속화까지 도대체 이들이 못 하는 재주가 무엇입니까. 그저 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이들이 열심히 펼치는 것은 오직 '외형적 목회 성공'을 위해 꾸준히 매뉴얼화한 잡동사니 목회 기술뿐입니다.

설교는 구구절절 바른 말에 청산유수입니다만, 이들의 행실이 너무 기만이라는 것이지요. 나귀 타신 예수님을 설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값비싼 고급차나 일등항공석을 타고 돌아 다닙니다. 가난한 제자들을 설교하면서 호사스런 생활을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설교하고는 상습적으로 성추행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설교할 때는, 그냥 마음만 가난하면 된다고 합니다. 마음껏 부자가 되어 재물을 쌓고 잘 먹고 잘살며 교회에 헌금이나 많이 바치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 힘들다'는 예수님의 말씀 정도는 아예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아무튼 세상이 욕을 하든 말든, 복음이 밟히든 말든, 그저 교인들 유혹하여 교회당 덩치만 커지면 그게 선교고 그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선전하는 자들, 그들이 한국교회를 밑뿌리부터 깊히 썩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건물 성전화'나 '목사 미화'에 힘쓰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교회와 목사의 이미지가 좋아져야 자신들의 '종교 영업'에 큰 보탬이 되니까요. 즉 교회당을 성전으로 둔갑시켜 신성시하고, 경건하고 청렴한 목회자들을 앞세워 널리 알리면 자신들의 부정과 비리를 어느 정도라도 다소 희석할 수 있기에 "교회에 대해서는 항상 듣기 좋은 소리만 하라"고 기를 쓰고 주문합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의 뜨거운 역사는 화려한 성전이나 회당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 제자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었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특정 건물 속에서 특정 성직자를 통해서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모든 성도들의 상한 심령 속에 직접 임하십니다.

기독교는 '성직자 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의 성도에게 성직자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성직자의 밥그릇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 성직자가 주인이 되어 군림하는 종교, 성직자 홀로 북치고 장구치며 독주하는 종교, 성직자가 월권하며 공동체의 재산과 재정을 가로채는 종교, 그리고 결국엔 고위 성직자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종교, 이런 중세적 저질 종교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기독교는 구약의 유대교처럼 제사장 종교나 성직자 종교가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의 지체가 된 모든 성도는 사실상 성직자의 신분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사제나 무당같은 별도의 대리자를 매개로 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자신이 다른 성도들보다 특별히 더 성스러운 존재의 성직자나 제사장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가르치는 장로' 직분의 평등한 사역자라는 깊은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목사도 다른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보통 교인의 한사람일 뿐입니다. 성직자를 위한, 성직자에 의한, 성직자의 종교, 그건 결코 기독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개신교 문제의 핵심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눈 먼 자들, 돈과 권력으로 눈 먼 자들, 그리고 안락과 편함으로 눈 먼 자들, 이런 양복입은 무당들이 교권을 훔쳐 쥐고 마치 유대교의 제사장처럼 행세를 하며 갖은 특권과 명분을 자작하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정상적인 목회자들을 폄하하고픈 마음은 결단코 없습니다. 도리어 그분들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정말 우려되는 점은 우리 주변에 성직을 빙자하여 '종교'에 빌붙어 밥먹고 살려는 군상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밥먹는 정도가 아니라, 어수룩한 종교판을 이용해 터무니 없는 신분 상승과 출세를 꿈꾸는 자들도 많습니다.

이는 비단 기독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과거 동양의 어떤 나라에서는 한때 성인 남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승려인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종교가 정말 무서운 이유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신도들이 주로 경전만 외우고 사는 성직자들을 평생 먹일려니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목사와 장로도 평신도이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 개신교는 자기 개혁을 결단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무당처럼 신의 대리인이 나서서 춤추고 작두 타는 그런 무속 종교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직분자란 오로지 '섬기는 자리'일 뿐입니다. 예수님도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만일 어느 교회에서든 감히 종이란 자가 교권을 남용하며 성도들보다 높은 자리를 요구하고 마치 제사장처럼 위세를 부린다면 그는 틀림없이 사이비입니다.

본래 개신교에 별도로 '성직자'가 되는 직분이란 없습니다.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직분도 단연코 없습니다. 목사, 장로, 집사 등 교회 내의 모든 직분은 오직 '종의 직분'일 뿐입니다. 개신교의 목사직은 제사장, 선지자, 사도, 또는 사제의 직분이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대리자는 더욱 아닙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오히려 '교사'의 직분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목사님들의 성공적 목회를 펼치기 위해 존재하는 사설 공연장이 아닙니다. 직분자들에게 직장을 제공하고 생활비를 지급하기 위해 거룩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교회가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간혹 이를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교회에게 자신의 알량한 '목회 비전'을 따르라고 허튼 소리를 합니다.

"신약에는 목회자나 평신도라는 신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모두 섬기는 자(minister)들이며 모두 섬김(ministry)을 받는 자들이다." 이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 '알렉 모티어'가 한 말입니다.

그러니 한국교회는 더 이상 중세 교회처럼 특정 직분자들이 성직자 행세를 하며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이교적 공동체'가 되기를 거부하고,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따라 섬김의 주체가 되는 '십자가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소위 '자칭 성직자'란 자들이 득세하는 공동체는 반드시 썩어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지난 이천 년 교회 역사가 증거하는 생생한 교훈입니다.

평신도 혁명과 교권 회복

성도들은 우선 개교회 당회의 교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당회가 담임목사 한 사람에 의해 주도되거나 종속되는 일을 기필코 시정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가 당회장이 될 성경적 근거는 전무합니다. 과연 신약 사도들의 교회에 당회장이란 제도가 있기나 했었던가요.

사실 개신교에 왜 영구직 당회장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만일 그래도 필요하다면 그 자리는 차라리 '다스리는 장로'들의 직책이며, 그것도 임기직으로 해야 옳을 것입니다. '담임목사'란 명칭 또한 구시대의 매우 고루하고 권위적인 용어입니다. 교인들이 무슨 초등생이나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체 누구를 담임하겠다는 말인지요. 차라리 '전임 설교자'나 '시무 목사' 등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요. 과연 오늘날 교단법을 꾸준히 손질하여 교회 구조를 자기들 입맛대로 조작하는 위인들은 정녕 누구입니까.

루터와 칼뱅이 그랬듯이 지금은 혁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진리를 종교화하고 성직을 내세워 교회 속에 기생충처럼 서식하며 특권을 주장하는 '철밥통 성직주의자'들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부 목사들은 노골적으로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벌써 3대 세습에 들어간 발빠른 교회들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조만간 대형 교회마다 김씨 왕조, 이씨 왕조, 그리고 홍씨 왕조 등 족벌 세습 왕조가 하나씩 들어설 판국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한국교회는 이교적인 '성직자 우월 사상'을 근절시켜야 합니다. 다 똑같이 부질없고 허탄한 인생들이 무슨 안수를 한번 받았다고 갑자기 특별히 성스러운 존재로 둔갑할 리가 있겠습니까. 장로나 안수집사도 안수를 받습니다. 그러니 오직 목사만 안수를 받는 것처럼 '성직권' 운운하며 호들갑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동네 강아지들도 비웃을 일입니다.

구태여 정의를 하자면,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 등은 서로 대등한 '평신도 사역자'들입니다. 그리고 목회란 목사 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는 공동 사역입니다. 따라서 목사를 포함한 모든 동역자들은 허구적 권위 의식과 계급적 망상을 철저히 내려놓고 서로 합심하여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종의 자리'로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런 겸허한 백의종군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평신도 혁명'입니다.  

종이 임금이 되거나 주인의 자리를 탐하는 종교는 그저 사교 집단일 뿐입니다.

"땅을 뒤흔들 일이 세 가지, 땅이 꺼질 일이 네 가지 있으니, 곧 종이 임금이 되고 바보가 부자 되고 꺼림칙한 여자가 시집가고 계집종이 안주인 자리를 빼앗는 것이다(잠30:21-23)."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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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mkhs 2015-03-27 06:41:01
교회에 헌금 한 푼도 안하는 사람이 신성남 집사님의 주장을 인용하며 헌금 안 낸다 하면 그 사람이 과연 바람직한 성도일까요. 100주년기념교회처럼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교회에 다니면서 말이지요. 물론 정말 소득이 없어 못 내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흠...

gg 2015-03-24 04:22:00
이 글을 쓰는 신성남 집사, 뉴조 역시 기독교로 먹고 사는 기생충일 따름입니다.

해운대 2015-03-24 04:01:51
신성남 집사님은 옳은 말도 많이 하시고 예리하신데, 집사의 한계 너머 세계를 절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대충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자신이 가 보지 않은 영역은 추론 뿐이지 실제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목회자는 뼈 저리게 회개하고 자숙해야 마땅하다고 동의합니다. 좋은 방부제 역할에 감사 드립니다.

gibyul 2015-03-24 01:30:59
종교를 갖는데 정말 종교 지도자가 필요할까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 예수님으로 만족합니다.

iphone 2015-03-23 07:03:27
평신도라는 말자체가 이미 교회 전문 사역자와 교인들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그냥 성도라는 말이 더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사역자와 교인들의 차이는 무엇이 되는가요? 단지 성경교사 수준으로만 교회 사역자를 제한하게 되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가 없지는 않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