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위해 11년간 사역한 목사, 간첩으로 둔갑
북한 주민 위해 11년간 사역한 목사, 간첩으로 둔갑
  • 이용필
  • 승인 2015.04.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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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기 목사 체포한 북한 당국, "정탐‧모략"…예장합동중앙, "억지 논리, 정치와 무관"

"제 이름은 김국기입니다. 제가 저지른 범죄행위는, 북의 최고 지도부와 관련한 중대 국가 비밀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국정원에 제공함으로써 미국과 남쪽 당국에 북에 대한 국가 정치 테러에 적극 가담한 것입니다. 북 최고지도부의 세대교체와 건강 상태, 지지 세력, 현지 시찰 경로, 지도자 교체, 일정 등 심지어 주요 간부들의 머리칼이나 손톱, 커피 잔, 담배꽁초, DNA 자료까지 수집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3월 26일,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국기 씨(61)가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북한 고위 지도자들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 국정원에 제공했다는 게 골자였다. 기자회견에 나선 최춘길 씨도 국정원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들이 정탐·모략 행위를 벌이다가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김 씨와 최 씨를 미국과 괴뢰 정보기관의 배후 조종을 받은 테러 분자로 규정하고, 징벌을 가할 것이라고 했다.

간첩 활동을 벌였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김국기 씨는 (사)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예장합동중앙·조갑문 총회장) 소속 목사이다. 예장합동중앙은 3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탐·모략 행위를 하다 체포됐다는 북한의 발표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중국 단동에서 쉼터를 운영하면서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을 돌보는 사역을 했을 뿐, 간첩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장합동중앙 측은 "김 목사를 간첩 혐의로 억류한 것은 적반하장이다. 북한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면 누가 북한을 도우려 하겠느냐"면서 조속히 김 목사를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 김국기 목사가 북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는 모습. 김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 소속 목사이다. 북한 당국은 김 목사가 '사이비 선교사'이며 합동중앙 교단은 테러 범죄 만행을 합리화하고 동족을 모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목사에 대해 엄벌할 것을 시사했다. (MBC 뉴스 캡처)

'열성적 복음주의자' 김국기 목사

김국기 목사를 좀 더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4월 6일 예장합동중앙 총회 회관을 찾았다. 교단 관계자들은 김 목사를 '열성적 복음주의자'로 표현하며, 국정원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지난 2004년, 예장합동중앙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전까지 전도사로 지내면서 노숙인을 위한 사역과 노방전도 등을 주로 했다. 30대 초반에 경험한 은사 체험이 김 목사를 목회의 길로 이끌었다. 어렸을 때부터 질병에 시달려 온 그는 몸이 쇠약했다고 한다. 하루는 기도원에서 기도를 하던 중 몸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고, 그 길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자가 됐다.

그는 주로 노방 설교를 했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집창촌을 찾아 '간음하지 말라'고 외쳤고, 용왕제가 열리는 울릉도를 찾아 '우상숭배'를 중단하라고 전했다. 김 목사의 설교를 들은 시민들은 분노했고, 해코지도 서슴지 않았다. 김 목사의 신학교 동기이자 후견인이기도 한 강정식 목사(예장합동중앙 총무)는 "과거 김 목사가 영등포에서 린치를 두 번이나 당했고, 울릉도에서는 세 차례나 바다로 내던져졌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전도 방식이) 다소 과해 보일 수 있지만, 복음 전파를 향한 김 목사의 열정은 대단했다"고 말했다.

전도와 노방 설교에 매진해 온 김 목사는 지난 2003년 북한 선교를 위해 중국 단동으로 떠났다. 아내 김 아무개 씨가 김 목사를 따라나섰다. 단동은 북한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고, 장사하는 북한 주민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현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잖은 한국인 선교사들이 단동 지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모퉁이돌선교회의 한 관계자는 "정치 문제 등으로 인해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신분을 감추고, 다른 사업들을 병행하면서 활동을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주택을 임대한 뒤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했다.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유인몽 목사(예장합동중앙 사무국장)는 "궁핍한 북한 주민들에게 치약과 칫솔, 비누 등을 나눠 주고, 여비까지 챙겨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경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이 문제는 한국에 있는 후원자들이 감당했다. 후원금뿐만 아니라 항생제·진통제·소염제 등 의약품을 비롯해 옷가지 등도 지원했다.

지난 2013년 김국기 목사는 한국에 와서 두 달 정도 휴식을 취했다. 마땅히 지낼 곳이 없었던 김 목사는 강정식 목사 집에서 기거했다. 강 목사는 "(김 목사의) 몸은 한국에 있었지만 항상 북한 주민을 그리워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북한 주민들이) 이 음식을 보면 환장할 텐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지난해 9월 여권 문제로 잠시 한국에 머물며 후원자들을 만난 뒤 다시 단동으로 돌아갔다. 김 목사를 내조해 온 아내는 친정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3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정원 간첩? 말도 안 되는 소리"

선교에 매진해 온 김 목사가 북한의 주장처럼 간첩 활동을 벌였을까. 강정식 목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평소 카카오톡과 전화로 안부를 자주 주고받았지만, 정치 이야기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게 강 목사의 설명이다. 영상에 나온 김 목사가 평소와 달리 상당히 야윈 모습이라면서 고문이나 협박 등을 당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단동에서 선교를 하던 김 목사가 어떤 경위로 북한에 체포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CBS 보도에 따르면 김 목사는 지난해 연말 북측의 초청을 받았고, 신의주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강 목사는 김국기 목사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라고 소개하면서 김 목사가 무사히 소환되길 바랐다. 예장합동중앙 총회는 김 목사의 무사 귀환을 위한 특별 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북한에 억류된 또 다른 목회자들

현재 북한에 억류된 목회자들은 김국기 목사 말고도 두 명 더 있다. 김 목사처럼 단동에서 선교를 하던 중 북한 당국에 체포된 선교사도 있다. 기독교한국침례회(곽도희 총회장) 소속 김정욱 선교사(53)는 2007년부터 단동 지역에서 탈북자와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을 위한 쉼터와 소규모 국수 공장 등을 운영해 왔다.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성경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2013년 11월, 북한에 있는 지하 교인들을 만나겠다며 입북했다가 사흘 만에 적발됐다. 입북에 앞서 지인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 선교사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김 선교사의 아내 이 아무개 씨는 지난해 2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압록강을 보며 '헤엄을 쳐서라도 건너가겠다', '북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에 적발된 김 선교사는 지난해 2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반국가 범죄 혐의로 북한에 억류돼 있으며 입북할 때 국정원의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종교 국가로 바꾸고 현 북한 정부와 정치체제를 파괴할 생각이었고,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북한 주민의 스파이 활동을 주선했다고 주장했다. 석 달 뒤, 김 선교사는 무기노동교화형 선고를 받았고, 지금까지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억류 중인 김 선교사와 관련해 해당 교단과 교회는 말을 아꼈다. 교단 해외선교부 관계자는, 해외 선교를 나가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김 선교사는 이런 과정을 밟지 않았다고 했다. 김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 담임목사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선교사의 신변 안전을 위해 언론사와의 접촉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평소 김 선교사가 북한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후원해 준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또 "생사 유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더 이상 설명해 줄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북한을 상대로 20년 가까이 인도적 활동을 펼쳐 온 목사도 억류되어 있다. 지난 1월, 캐나다 토론토큰빛교회 임현수 목사(60)는 북한의 초대를 받고 방문했다가 연락이 끊긴 상태다. 임 목사는 1월 30일 나진에 도착한 뒤 다음 날 평양으로 이동했으며, 지금까지 두 달 넘게 소식이 끊어졌다.

그동안 10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한 임 목사는 나진에 사설 보육원과 고아원 등을 지어 운영하며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 활동을 해 왔다. 임 목사가 북한에 억류된 것과 관련해 여러 추측만 제기되는 상황이다. 북한 당국이 에볼라 방역 문제로 임 목사를 격리 조치했을 수 있다는 의견부터, 최근 2~3년간 임 목사가 캐나다, 미국 교회에서 북한 붕괴설을 거론하고,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북한 체제를 비판했는데, 이로 인해 억류됐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큰빛교회는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대응 마련에 들어갔다. 지난 3월 9일에는 지역 목회자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고 임현수 목사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낭독했다.

이용필 기자 / <한국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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