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배우는 아빠
딸에게 배우는 아빠
  • 이용식
  • 승인 2015.05.21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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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복종의 한국교육에 대한 단상
   
▲ 이용식 © <뉴스 M>

나는 우리 딸을 참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아이가 크는 과정에서 나에게 참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지금 그 아이가 뭘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그건 내가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내 딸을 통해 받았던 감동을 하나만 얘기하고자 한다.

딸이 고등학교 때 AP 켈큘러스를 들었는데 B플러스를 받아왔다(AP 등급시험에서는 5점 만점으로 통과했지만). 항상 A만 받던 아이라 물어보았다.

"아니 어떻게 선생이 너 같은 애를 B를 주냐? 니가 제일 잘 한다면서…" 하니까 이 아이가 하는 말이 "아빠 점수는 선생님이 주는게 아니고 내가 한 만큼 얻어 오는거야" 라고 말한다. 난 그날 엄청난 생각이 머리를 오가고, 내가 받은 교육과 딸을 대하는 자세가 뭔가 잘못됐다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이 말이 말장난 같지만 우리 교육의 잘못이, 내가 받은 교육의 잘못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 생각한다. 보자! 우리는 한번이라도 점수를 내가 얻어낸다 생각한적이 있나? 점수는 항상 교수가, 선생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때에는 어느 교수가 학점을 잘 주는가 찾아다니면서 수강신청하고 그런적 없는가?

물론 시험은 내가 보지만 점수는 항상 주는 것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주체가 행한 행동에 대한 객체의 공평한 평가에 의해서 점수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누가? 선생이라는 절대 권력자가. 평가의 객체가 불공정 하다는 말이다. 이것이 항상 한국사회의 문제였다.

그래서 항상 시험이든 뭐든 공부를 스스로 열심히 하는게 아니라 시험문제가 무엇이 나올까를 생각했다. 시험 문제가 무엇이 나오던 그냥 공부하면 되고 능력 대로 노력한 대로 얻을 만큼 얻어오면 돼는데 말이다. 그것을 쪽집개처럼 찾아주는 사람을 찾아서 과외로 공부를 하고 학원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열심히 앉아서 듣고 외우고 했지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했던 적이 별로 없다.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듣고 순종하는 게 전부이다. 점수를 내 노력으로 만들어내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주는 것이니 선생에게 무조건 순종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한국 학원들의 선전들이 SAT 시험 영어 800점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원서를 써주고 학생이 쓸 에세이를 지도하고 해서 일류대학에 입학시킨다고 선전한다. 이런 선전을 들으면 가슴이 터진다. 아니 원서도 못쓰는 놈이 대학을 어떻게 가며, 가서 어떻게 공부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학생이 입학을 하는게 아니고 자기들이 입학을 시킨단다. 점수를 만들고 원서를 써주고해서 입학을 시킨단다. 하기야 자식교육 때문에 이민을 왔다고 하니 어련히 알아서 공부를 시키겠는가. 그러면서 한국의 입시지옥을 피해서 왔다는 말이나 안하면 좋겠다. 여기서도 지옥을 만들고 있으니.

한 한인타운에 있다는 사립학교의 선전은 더 재미있다. 졸업생 전원이 아이비리그를 가고 UC계열 학교를 간단다. 이놈의 학교 졸업생들은 무슨 기계인지 모두 아이비리그와 UC계열 만 간단다. 이런 기계적인 학교를 무슨 재미로 다니는가? 선전이라는 것이 듣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골라서 하는 것이니 한인부모들이 모두 아이비리그 학교 적어도 UC는 가야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고 그게 또 사실이다. 그래서 하바드 나와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또 한번은 딸이 대학을 다니다 갑자기 학교가 재미가 없단다. 딸이 하는 말이 "학교라는게 좋은 아이들 데려다 그냥 그런 아이들 만드는데 같다."라고 한다. 또 한 번 놀랐다. 그래서 졸업 안 할 거냐니까 "그건 그래도 아빠를 봐서 졸업까지는 하겠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학교교육이라는게 원래 체제 순응적인 인간을 만들고 사회라는 체제 안에 복종하고 체제를 유지시키는 사람을 만드는게 목적이다. 그럴려면 튀어나는 사람보다는 복종적인 사람이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 때 너 생각 잘 했다 “ 때려쳐라” 이 말을 못 했으니 나도 딸이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니 사회가 불평등해도 그냥저냥 굴러가는 것이다.

비약적인 얘기지만 세월호 때 영사관 앞에서 아이들의 귀환을 기원한다는 기원소를 지키고 있을 때 한 미국인이 지나가면서 했던 얘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애들이 왜 죽었는지 아느냐? 너희들은 평생 순종하는 것만 배워서 그 죽음의 순간에도 가만히 있으라니까 가만히 있어서 죽은 것이다.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느냐?"

복종의 교육이 애들을 죽였다고 말을 해서 내가 할 말을 잃고 고개만 끄덕이던 생각이 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해서 사는 방법과 자기 주체대로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버리고 그냥 빌붙어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잘 생각 했다 때려쳐라"라는 소리를 할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가끔난다. 또 그 순간이 와도 아마 못할 것이지만.

이용식 / LA 시국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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