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린 떠나보낸 후 그리워할까?
왜 우린 떠나보낸 후 그리워할까?
  • 양재영
  • 승인 2015.05.23 0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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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 시대의 바보들을 생각하며

평소 그의 사역을 좋아했던 K 목사의 푸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이 한 세미나 후에 가진 목회자 모임에서 느꼈던 자괴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비량 목회를 꿈꾸며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하며 사는 그가 마음 먹고 참석한 자리에서 ‘신학박사, 철학박사’들의 언변과 논리에 기만 죽고 나온 모양이었다. ‘다시는 나가지 않겠다’며 툴툴거리며 웃는 그를 보면서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16세기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3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쓴 ‘우신예찬’ (愚神禮讚)이란 재미있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사리분별을 따질 능력이 없는 ‘자연적인 바보’와 능력이 있음에도 드러내지 않는 ‘의도적인 바보’를 구분하면서, 중세의 박학과 달변에 감춰진 종교적 허위를 유쾌하게 폭로한다.

송나라 때 소식(소동파)은 벼슬길에 오르는 사람을 축하하는 글에서 ‘큰 지혜는 바보와 같다(大智若愚)’는 노자(老子)의 말을 인용한다. 노자는 ‘위대한 기교는 마치 졸렬한 것 같고, 뛰어난 언변은 마치 말더듬이 같다’(도덕경 45장)는 역설을 통해 ‘바보스러움’의 진의를 잘 보여줬다.

K 목사의 ‘바보스러움’은 그의 순박한 외모와 어눌한 언변으로 대변되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외모와 언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깊이와 포용력을 말한다.

   
▲ 바보 노무현과 바보 예수

“바보 예수”

동양화가인 김병종 교수는 1980년대 ‘바보예수’를 연작함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오똑한 콧날과 금발, 그윽한 파란눈으로 그려지던 서구식 예수의 모습을 비웃듯 김 교수가 그린 ‘바보예수’는 멍하니 벌린 입과 퀭한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의 그림이 ‘예수’의 존엄을 비웃었다는 수많은 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의 아들이자 그 자신 신이었던 그 분을 '바보'라고 칭하면서 적지 않은 시비도 뒤따르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는 어린 아이가 '울 엄마 바보야' 하고 울먹이며 말할 때와 같은 한없는 존경과 사랑을 담는 반어적 표현이었지만 말이다.

큰 사랑 때문에 스스로 고통의 불길 속으로 걸어갔던 그 분. '바보정신'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알려주셨던 분. 오늘, 사랑 없는 이 도시의 사막 속에 서 있는 나도 바보예수의 그 위대한 사랑의 불길 속에 활활 타오르고 싶다.”

한완상 교수는 그의 저서 <바보예수>를 통해 “바보란 ‘바로 보고, 바로 보살펴주는 사람’이다. 즉, 일상성의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들이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을 바로 보기에 바보이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척하지 않고 바로 보살폈기에 바보인 것이다. 기득권을 즐기는 힘 있는 사람들은 바보들을 왕따 시키고, 핍박하고, 착취하고 차별한다. 바로 그러했기에 예수도 처음부터 그의 고향이라는, 일상성의 세계에서 환영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슬피 우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바보들의 선택’을 했으며,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 하지 말라’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바보 메시지’를 전했으며,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는 ‘바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바보 같은 행보’가 부활의 기적으로 이어져 초대교회의 숭고한 정신이 되었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바보 노무현”

1988년 5공화국 청문회를 통해 일약 스타가 된 노무현은 부산 남구 제의를 뿌리치고, 신군부 출신 허삼수와 붙겠다며 부산 동구에 출마해 13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이후 네 번의 낙선으로 이어지는 바보의 길을 걷는다. 3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아 낙선하는 등 그는 당선 불가능한 지역만 골라 출마를 선언하는 ‘돌아이’ 행보를 고집했다.

2000년. 안정적인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에 출마한 사건은 노무현 최대의 ‘바보’ 짓이었다. ‘지역분열을 막겠다’며 출마를 고집해 패배한 노무현에게 돌아온 것은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붙여진 ‘바보’라는 별명 속엔 그의 진심을 이해했다는 시민들의 공감이 어려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6주기를 맞아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것도, 그가 일생을 통해 보여준 ‘바보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시인 박노해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다음과 같은 시로 그를 기렸다.

오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기댈 곳도 없이 바라볼 곳도 없이
슬픔에 무너지는 가슴으로 웁니다
당신은 시작부터 바보였습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도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고
웅크린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심어주던 사람
당신은 대통령 때도 바보였습니다

멸시받고 공격받고 또 당하면서도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군림하던 권력을 제자리로 돌려준 사람
당신은 마지막도 바보였습니다

백배 천배 죄 많은 자들은 웃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저를 버려달라고,
깨끗하게 몸을 던져버린 바보 같은 사람

(중략)

우리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처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향해
서로 손 잡고 서로 기대며
정직한 절망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가
슬픔으로 무너지는 가슴 가슴에
피묻은 씨알 하나로 떨어집니다

아 나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속 깊은 슬픔과 분노로 되살아나는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무학력으로 추정되는 예수나 ‘상고’ 출신 노무현의 뛰어난 식견과 통찰력은 시대의 덫에 걸려 빛을 발할 수 없었다. 그들은 향한 대중의 논리는 ‘상고 출신이 뭘..’이나,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라는 비아냥 뿐이었다.

지금, 그때의 비아냥은 절대 다수의 찬양과 추모로 변했다. 왜 우린 이들을 떠나보낸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고 그리워하는 걸까?

취재를 하며 만난 몇몇 ‘바보 목회자’들이 떠오른다. 대형목회(?)를 하면서도 전도사를 고집하는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진 C 전도사, 탁월한 신학적 성취에도 고집스럽게 음지만을 찾아가는 K 목사, 훌륭한 학벌을 내던지고 필라델피아 빈민사역에 몰두하는 L 목사, 대의를 위해 밥상을 뒤엎고도 통 크게 웃을 줄 아는 K 목사. 이들은 모두 이 시대의 ‘바보 목사’들이다.

이젠 이들을 떠나보낸 후 그리워하는 어리석은 짓을 더 이상 하지 말자.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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