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
황교안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
  • 김기대
  • 승인 2015.05.27 13:15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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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련복, 성대 77학번, 전도사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총리 후보로 추천되면서 청문회를 앞두고 야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인데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 시절보다 더욱 심한 공안정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 기독교 편향성, 삼성 관련 재판이다. 2009년 저술한 <집회시위법 해설서>에서 4•19 혁명을 '혼란'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하고, 용산 참사의 원인은 농성자들의 불법 행위와 폭력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삼성 X 파일 사건과 관련해 법원은 이를 보도한 기자들은 기소한 반면, X 파일에서 거론된 떡값 검사들과 삼성 경영진에게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데, 2005년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황교안 검사는 박근혜 정부 첫 법무 장관이 되었다. 그는 지난 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 낸 뒤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조국 서울법대 교수는 그의 트위터를 통해 "황교안,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을 부정한다. 그의 책 <집회시위법 해설서>는 4·19 혁명을 '혼란',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헌법 모독 그 자체다"라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 공안통인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를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키워드가 필요하다. 황 후보자의 경기고등학교 72회 동문이면서, 삼성 사건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의원(정의당)은 그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황 후보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똑같다. 달라진 것이 없다”며, “특히 나랑은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 달랐다.”

역시 동문인 이종걸 새정치 민주연합 원내 대표는 황교안 후보는 "학도호국단 단장으로서 항상 교련복을 입고 절도 있는 생활을 하던 모범생"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다른 동문의 회고에 따르면 황교안 후보자는 농담도 잘 하지 않고 실수도 없어 동기들에게 '영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 '교련복'은 황교안 후보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다.

당시 경기고등학교의 하늘색 교복(하복)과 경기라고 한자로 쓰인 다이아몬드 형 교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사회 수재의 표식이었다. '경기'가 주는 위압감은 상당한 것이어서 불량 학생들도 경기생들에게는 감히 시비를 못 걸 정도였다. 황교안 학생은 그 중에서도 고교 3년 내내 반장을 맡았고 학도호국단장을 지낸, 그래서 교복보다 교련복을 즐겨 입던 학생이었다. 학교가 주는 명예보다 그는 독재 국가의 권위를 더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놓은 호국단 제도의 상징인 교련복으로 기억되는 모범생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어릴 때부터 보수적인 침례교회에 다니던 성실한 '기독학생'이었는데 이런 류의 사람들은 틀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경험의 폭이 넓지 못해 외곬수가 되기 쉽다는 뜻이다.

그는 '명문' 경기고등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이다. 1974년도부터 평준화가 시작되어서 그의 바로 아래 기수들은 '배정운'이 좋은 그저 그런 학생들일이었다. 선배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후배들을 보면서 더욱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시절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고등학교는 황후보자가 졸업하던 1976년 2월 종로구 화동에서 강남지역으로 교사(校舍)를 이전하는데 이때 황교안 후보자는 이삿짐 트럭 행렬 중 맨 앞 차량에 타서 교기를 들고 서 있었다고 동기들은 회고했다.

지난 2008년 '삼경 151'이라는 모임이 구성되었다. 삼경(三京)은  당시 명문고교인 경기 서울 경복의 비평준화 마지막 졸업생들이 만든 모임이다. 151은 각 학교의 졸업기수를 합친 숫자다(경기고 72회, 서울고 28회, 경복고 51회). 이처럼 그들은 마지막 졸업생임을 강조한다. 후배들을 동문으로 인정하기 싫은 이들이 마지막 엘리트임을 표방하며 모임을 만든 것이다.    

황교안은 이런 문화에 속한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교련복을 입고 동기생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경기 학생들 중에는 노회찬 전의원처럼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신 반대 유인물을 돌리던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황교안의 '권위'는 뒷담화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성균관대 77학번이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명문 법과대학이지만 그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나 그렇지 경기고등학교 출신들에게는 실패를 의미한다. 당시 입시제도는 전후기로 나뉘어져 있어서 전기에 실패한 학생들은 재수를 택하거나 후기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전기에 실패한 우수 학생들이 주로 지망하던 특정학과가 있었는데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외국어 대학교 영어과,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 등이었다. 황교안은 고등학교 시절 학도호국단장까지 지냈지만 서울대학교에 입학을 못했다. 황교안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경기고등학교 졸업생 통계를 보면 서울대학교에는 808명이 응시를 해서 498명이 합격을 했다(재수생 포함). 참고로 고려대학교에는 33명이 응시를 해서 18명이 합격을 했다. 명문 고려대학교도 경기 출신들에게는 별로 관심 있는 학교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황교안이 집안이 가난해서 장학금을 바라고 성균관대학교를 진학한 경우를 제외하면 경기 출신이면 60%이상이 진학하는 서울대학교 입학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경기 고등학교에 서울법대생이면 과외시장에서 고액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스폰서들이 대기하던 시절이었기에 장학금을 바라고 성균관대학교를 진학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나아가 황교안은 나이에 맞는 76학번이 아니라 재수한 77학번이다. 군대 면제 사유가 '두드러기'인 것을 보면 고교시절 1년 이상 휴학을 할만한 두드러기 이상의 질병을 앓았다고 볼 수 없다.

수재들이 모이던 경기 출신 황교안은 1977년 '뺑뺑이' 즉 평준화 세대들과의 경쟁에서도 서울대 입학을 못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당시 명문 고교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반장을 지낸 황교안은 이 시절 굉장한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서울대에 진학한 동기들 중에는 고교 시절 쉬는 시간 화장실 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교련 교육을 우습게 보던 친구들도 있었을 터인데 오히려  모범생 황교안은 서울대에 진학하지 못한다. 황교안은 이 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는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절치부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황후보자의 초임 검사 시절은 전두환 집권기였다. 집권당인 민정당은 육사 출신과 서울 법대 출신들이 주무른다고 해서 '육법당'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들이 국정을 농단하던 시절, 황후보자가 선택할 길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전도사다.

그가 다니는 목동 성일 침례교회 홈페이지에 그는 버젓이 전도사로 소개되어 있다. 그가 장로를 하지 않고 전도사를 택한 것은 의문이다. 혹시라도 고교 시절 '서원'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서원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전도사를  한 것은 아닐까라고 추정해 보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황후보자는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에 '수도 침례 신학대'를 다녔다. 그의 아내도 기독교 계열 대학인 한영신학대를 거쳐 현재 나사렛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황후보자는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1998년),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2012년) 등을 썼다. 현재는 기독교 민영교도소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아가페'의 이사를 맡고 있고, 법조계 기독교모임인 '애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황 장관은 지난 2013년 법무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종교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과거 그가 쓴 글들이 문제가 됐다. 2004년 민영 교도소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아가페 소식지에 "재소자들을 기독교 정신으로 교화해야만 확실한 갱생이 가능하다", "엄청난 재범률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복음뿐이다",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한다"고 써, 이번 청문회에서도 종교편향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도호국단장'과 보수 교단 '전도사'는 일탈을 보아내지 못하는 그의 성격의 배경이다. 최근에는 '가정 폭력이 많은 것은 부산 여자들은 드세기 때문'이라는 2004년 부산에서의 발언이 드러나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말 대답하는 여성'이 매를 부른다는 봉건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의 서울대 입학 실패는 그를 주류지향적인 강한 인물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공안 검사를 거치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 기준에 따른 '법질서'만을 세상의 법칙으로 삼았다. 어느 교회 강연에서 황 후보자는 '김대중 노무현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니까'라는 말로 전직 대통령을 비하한다. 비하의 이유는 자신과 같은 유능한 공안 검사들이 한직으로 밀려 났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공안 검사들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본 수많은 피해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국 교수의 다른 트위터는 황 후보자가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의 정국 상황을 예견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황교안에게 법규범의 우열순서는 '교회법->국보법->헌법'이다. 그리고 법지식을 일관되게 기성체제, 기득권, 강자 옹호 및 반대자와 약자 억압에 사용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민주'와 '공화'의 나라의 총리라니!" (조국 교수 트위터)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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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담두놀 2015-06-01 10:34:13
김기대 기자가 누구인지요?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종교편향이 아닌, 이념 편향으로 보여집니다.

국무총리 2015-05-29 03:40:24
장관 청문회는 걍 설렁설렁 맹탕이었었나?
국무총리 청문회 들어가니까 갑자기 튀어 나오는
문제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청문회 거쳐서 장관 임명되었는데 국무총리 되려니까
또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청문회만 하다가 세월 다 까먹는 대한민국의 국회,
뭐가 낭비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정말 하늘이 내린 직업이 아닌가?
어쨌든 기독교 편향성(?)이 그렇게 문제라면 법무부장관 청문회 때는
왜 봐줬을꼬?
그런 편향성은 오히려 실무 장관시 더 문제 되는 것 아니던가?
그리고 조국교수란 자의 말이 무슨 정치판의 무슨 FM 이라도 되는 것일까?
학생들 가르치는 교수지 누가 정치판의 교수로 삼았던고?
이런 사람을 우리는 속된말로 강단꾼이라 하지 않던가?
그렇게도 시사질이나 정치질 하고 싶으면 어디 한번 직접 나서서
해 보시던지,,,
솔직히 학생들이나 가르쳐야 할 교육자가 툭하면 정치판에 기웃거리면서
균형 잡히지 못한 소리 해대다가 이번에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깐
그때는 아이고 난 몰러유~ 고사해 버리고,,,
그러니까 이것 재고 저것 재고하다가 잘해봐야 욕만 먹을 것 같고
오히려 고난과 곤란을 감수해야 할 것 같으니까 뒤로 빠지는
비겁하고 비열해 보이는 사람이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 임명 절차에
들어간 사람보다 훌륭하다는 근거가 있다면 어디 한번 말해보시라.

소위 기독교 사이트라면 같은 집안 식구 같은 처지 아니던가?
“국무총리 낙마시키면 다음 총선 두고 보자!” 이런 바람은 못 잡을 망정
대놓고 기독인 장관 후보자를 폄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뭐 이를 테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괴변이 2015-05-28 06:48:06
김기대라는 분, 편집장 맞습니까?
그러고도 뉴스 m이 기독교 신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목사라고 하던데 목사라는 직분에 먹을 칠합니다 그려
하나님과 성도 앞에 괴변을 늘어놓지 말고 그냥 좌익성향의 논객이나 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김기대 님은 참으로 눌린게 많은 불쌍한 분 같군요.

파사데나 2015-05-28 03:16:09
유튜브 통진당 해산과 국정원 댓글사건 법정발언 하는것 보니 초등수준의 논리던데 박근혜씨와 가장 잘 맞는 논리구조,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이겁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신 분들이 나라의 최고 권력에 있으니...그것도 이젠 기독교 전도사...양심에 찔리면 북한 핑계대며 위안을 삼겠죠...하나님 앞에서도

홍길동 2015-05-27 22:06:13
이걸 글이라구 씁니까? 맞아요 이건 소설입니다.
참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