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집을 묵묵히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아비 집을 묵묵히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 강희정
  • 승인 2007.02.08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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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은 이 시대에 '제국'이라 불릴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미국은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어 주변국의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미국 이민 신청자들, 불법체류자들 또는 밀입국자들의 수가 매년 줄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데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희망의 나라’로 바라보는 듯합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그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란 땅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땅으로 떠났던 아브라함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가나안 지역의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삶의 근거지를 옮겼습니다. 아마도 야곱의 아들들은 이집트로의 이주를 자신들의 삶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기회로 생각하고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차서 건너갔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올 때는 어떠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미래가 기다리는 곳으로 생존의 위험과 불안 속에 자신을 던졌던 아브라함의 행보를 따랐던 것일까요? 아니면 야곱의 아들들처럼 풍요롭고 기회가 넘치는 세계로 가는 것을 기뻐하며 희망과 기대에 차서 왔던 것일까요? 돌아다보면, 우리를 강하게 이끌었던 동기는 야곱의 아들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건너온 뒤로 우리 가족의 삶은 그 이전과는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우리의 삶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하고 가졌던 허망한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고센 땅으로 내몰리고 끝내는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노예살이를 하게 된 역사를 이제 예사로 보아 넘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건너온 지 오래 되지 않아서 이 땅에서 우리는 철저히 주변인의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와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이 기존 체제에 편입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종과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나 문화에 능통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 미국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신분상으로도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어서 시민권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경험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가졌던 여러 가지 것들이 이곳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쌓았던 지식, 경험, 학벌, 경력, 인맥 등을 이곳에서는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자신이 이전에 의지해왔던 것들을 다 떠났던 것처럼 우리 가족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묵묵히 향했던 아브라함을 기억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미국 땅에 건너온 지 삼사 년이 지났습니다. 미국에 살게 된 지 일 년 만에 막내딸이 태어났습니다. 이민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에 비하면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많은 것들을 탐색하며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이방인으로서 미국 문화와 한인 사회에서 배우고 경험한 내용들을 기사로 쓰겠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은 결코 코끼리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진 다리라든가 코라든가, 이런 것들이 코끼리가 아니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코끼리에 대해 말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고 해도 모두 다 맞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다를지라도, 그들이 경험한 것이 결코 코끼리가 아닌 것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쓴 내용들이 여러분들이 경험한 것과 혹시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때 틀렸다고 하지 마시고, 다르다고 말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경험과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제 이야기와 더불어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합쳐지면 우리의 경험이 더 풍부해지고 안목이 더 깊어질 테니까요.

* 한 남자의 아내이며 세 아이의 엄마인 강희정 씨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습니다. Ohio에 거주하면서, 미국 문화 특히 교육 분야에서 좋은 글을 써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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