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이 새롭다
옛 것이 새롭다
  • 김기대
  • 승인 2015.06.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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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 컨퍼런스 강사 소개] 풀러 신학교 김세윤 교수

오래 전 이화여대 총장인 장상 박사가 미국 방문 중에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그날 김세윤 박사 내외가 예배에 참석했다. 나는 '김세윤' 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날 강단위에서 예배를 인도하며 처음 봤을 때는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라며 누군지 유추를 해야 했다. 다행히 유추는 1~2초 만에 끝났다. 설교 후 마지막 찬송을 부르기 전 김박사에게 축도를 부탁했다. 일면식도 없는 젊은 목사(당시 기준)가 광고 시간에 대학자의 방문을 교인들에게 자랑하며 그를 소개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예배 전 사전 조율도 없이 강단 위에서 일방적으로 축도를 부탁하는 일은 결례일 수 있었지만 김세윤 박사는 기쁜 마음(나는 그의 얼굴에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는 겸손함을 읽을 수 있었다)으로 내 결례를 덮어 주었다. 그날 이후 (합동출신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합동에 대한 내 편견도 없어졌다. 그는 나에게 이런 사람이다.

오는 7월 27일부터 열리는 <뉴스 M> 멘토링 컨퍼런스의 강사 중 주제 강의를 맡은 김세윤 교수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바울 연구의 대가다. 서울대 문리대를 거쳐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브루스(F F Bruce)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바울복음의 기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칼빈 신학교, 풀러 신학교, 고든 콘웰 신학교,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 총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풀러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로 있으며, 한인 목회자들을 위한 목회학 박사과정(D. Min)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경력보다 김박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쉬지 않는 학문적 열정과 한국 교회에 대한 애정이다. 

김세윤 박사는 바울 신학 연구에서 '옛 관점 학파'에 속한다. 옛 관점 학파란 새 관점 학파와 달리 전통적인 바울 이해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올드'한 학설이라는 뜻은 아니다.  새관점 학파에는 E. P. 샌더스,  제임스 던, N. T. 라이트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바울 시대의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율법주의 종교가 아니라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로 정의내린다. 이는 샌더스가 만든 용어로 유대교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을 중시한 은혜의 종교라는 주장이다. 바울이 유대교를 비판한 것은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일 뿐이다. 따라서 1세기 유대교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서 바울과 칭의 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새관점 학파의 기본 전제다. 

즉 바울이 회심 이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지 않고 유대교의 은혜 언약 개념으로부터 자기 신학을 전개했다는 주장인데 1977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통해 촉발된 이 논쟁은 1980년대 후반 유대교 학자인 야곱타우베스의 <바울의 정치신학>을 계기로 정치 철학계로 확대된다.  이후 좌파 계열의 포스트 모던 철학자들인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조르조 아감벤 등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

새관점 학파 또는 정치 철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전통적인 바울 이해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그들이 풀어내는 사회 정치적 담론에서 보면 옛 관점 학파는 사회와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오해를 충분히 받을만한 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김박사는 옛관점 학파의 주장을 발전시키면서 바울의 복음에 천착한다. 바울의 복음이란 바울이 예수의 복음을 재해석한 사람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즉 바울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아니라 예수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박사는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주로 연구한다. 나아가서 바울의 사상이 현대 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정치 철학으로 재해석되지 않아도 바울의 복음 그 자체 만으로도 시대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박사는 2009년 복음과 상황 5월호에 실린 양희송씨와의 인터뷰에서 바울의 복음도 충분히 혁명성을 가진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의 복음과 바울의 칭의론의 복음이 사회 혁명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모두 인정하고 있어요. 예수의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모든 가치를 뒤집어엎는 혁명의 복음이었지요. 바울이 예수의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여러 카테고리로 다시 표현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칭의론입니다. 칭의론의 복음은 출생, 계급, 지식 등 인간적인 메리트를 무가치하게 봅니다. 유대인으로 출생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자유인이라고 해서 높은 것도 아니고, 종교적 선행이나 헬라 철학의 깊은 지혜를 쌓았다고 해서 인정을 받는 게 아니예요.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은혜의 사건을 믿고 은총을 덧입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한다, 그게 칭의론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옛 관점 학파의 주장은 바울을 교리 안에 가두지 않는다. 새관점 학파의 주장이 바울의 정치적 해석을 가능케 한 것이라면 김세윤 박사에게 바울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존재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로 오늘날 신음하는 사회에 충분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옛관점 학파의 주장은 '올드'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새롭다. 이번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우리는 전통적이면서도 새로운 신학과 목회에 대한 그의 강의를 들 수 있다.

김세윤 박사의 이러한 학문적 입장은 결코 연구실 안에 머물지 않는다. 명망 있는 학자들 대부분이 정치 사회적 입장을 표명하는 데 주저하는 반면 김박사는 사회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거침없이 밝힘으로써 학자로서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에서도 비켜가지 않는다. '제자들이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며 수줍게 웃는 김박사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7월 27일 시작하는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김박사는 '바울의 복음'과 ;'바울의 목회'에 대해서 강의할 예정이다. 이번 강의가 참석자들에게 학문적으로나 목회적으로나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리라 믿는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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