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예수는 없다
‘그런’ 예수는 없다
  • 양재영
  • 승인 2015.07.13 00:49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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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이나대 오강남 명예교수 인터뷰
지난 9일(목)부터 3일간 “바른 예수! 바른 믿음!”이란 주제로 <예수는 없다> 저자인 오강남 교수의 강의가 LA 평화의 교회에서 열렸다. 미주 감리교 신학대학과 평화의 교회 주최로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후원으로 열린 오강남 교수 강연엔 3일간 매회 100여명 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본지는 첫날 강의 후 오강남 교수를 만나 ‘기독교와 심층종교’ 에 대한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편집자 주

- 우선 최근 근황 좀 소개해 달라.

   
▲ 오강남 교수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를 은퇴하고, 밴쿠버에 있는 VST(Vancouver School of Theology)와 한국에서 강의한 후, 지금은 한국의 ‘서로학습협동조합 경계넘어 아하’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일반인들에게 불교, 장자, 도마복음, 화엄경 등을 강의하면서 폭넓은 이해를 갖도록 하고 있다. 각 종교의 경계를 넘어, 우물 안 개구리 식 인식의 범위를 뛰어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아하!’의 경험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이다.

- 종교학자로서 ‘당신의 종교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하는가?

학생들이 종종 물어본다. 그러면 역으로 ‘내가 무슨 종교를 가진 것 같느냐?’고 묻는다. 그때 학생들은 “불교 가르치면 불교인 같고, 도교를 가르치면 도교인(Taoist) 같고, 기독교를 가르치면 기독교인 같다”고 하더라. 맞는 이야기이다.

제가 자랄 때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는데, 대학교 들어가면서 심정적으로 교회를 떠났고, 학위받고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공식적으로 교회 멤버십을 버렸다. 현재는 캐나다에서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에 출석하고 있으며, 동네 옆에 퀘이커 모임이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에 참석한다. 한국에 가면 ‘지식협동조합’에서 일요일마다 경(經)을 읽고, 명상하고, 의논하고 있다. 다른 곳에 출석하지는 않는다.

- <예수는 없다>가 큰 화제였다. 특히 제목이 화제였는데, 누가 정한 것인가?

처음에 책을 쓰면서 ‘시온을 향하여 울었노라’라는 시편 구절을 제목으로 하려고 했다. 제가 기독교에서 잔뼈가 굵었기에 기독교에 대한 사랑의 충정이랄까? 바벨론에 포로로 가서 시온을 향하여 우는 심정으로 쓴 글이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수필 같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10개 정도 제목을 줬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는 없다’였다. 편집실에서 ‘예수는 없다’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런데, 솔직히 걱정이 되더라. 그래서 ‘그런 예수는 없다’로 하자고 했는데, ‘그런’을 집어넣으면 맥이 빠지니 안된다고해서, 책 소개란에 ‘그런’을 넣는 것으로 만족했다. 영어 제목은 ‘No such Jesus’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통속적 예수, 빌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해주는 ‘그런’ 예수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는 뜻이었다.

- 제목이 파격적이어서 공격도 많았을 것 같다. 

정식으로 이메일을 통해 받은 공격은 거의 없고, 대부분 고맙다는 반응이었다. 제일 큰 반응은 이 책을 보면서 기독교계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었다며, 자기 혼자만 죄인인줄 알았는데 자기가 특별히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시원했다는 반응이었다.

두 번째로는 이해하기 쉬워서 술술 다 읽었고, 기독교에 대한 자기의 안목이 넓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예수는 없다>를 공격하기 위해 나온 책이 몇 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누가 한 권을 보내줬는데, 읽다보니 말도 안되는 주장이어서 무시했다. 목사들의 비평을 보면 책뚜껑도 열어보지 않고, <예수는 없다>라는 제목과 몇몇 문구만 떼어서 공격하더라.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비평하면 달게 받겠다. 하지만 읽지도 않고 제목만 보고 쓴 비평은 곤란하다.

- <예수는 없다>를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00년 즈음에 캐나다 최대 교단인 캐나다연합교회 총회장이 오타와(Ottawa)의 모 신문과 인터뷰에서 ‘예수의 역사적· 물리적 부활’에 대한 질문에 “예수는 부활하셨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신다. 하지만 무덤에서 나와서 땅을 걸어다니신 것을 역사적, 물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 속에 살아계신다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또한 ‘예수의 신성’에 대한 질문에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지만 당신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대답하면서, 예수님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인했다.

다음날 신문에 ‘캐나다에서 제일 큰 교단 총회장이 예수의 신성과 부활을 부인했다’고 보도됐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이런 사람이 어떻게 총회장이 될 수 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캐나다연합교회는 세 교단이 합할 때 ‘우리는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이 사회에 함께 봉사한다는 것뿐이지, 교리는 따지지 않는다. 예수의 정신으로 이 사회를 위해 일하자’는 합의가 있었다. 그래서 캐나다연합교회 실무진들은 “우리 총회장이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결의했다.

 

   
▲ “바른 예수! 바른 믿음!”이란 주제로 열린 오강남 교수의 강의에 매회 100여명 씩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평화의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나누어 그린 예수상이 눈길을 끈다.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 오강남 교수의 글은 쉽고, 깊은 통찰력이 있다는 평이 많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터득한 티칭노하우일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예문과 예화를 많이 사용했다. ‘경상도 시리즈’, ‘산타크로스’, ‘허스키 예화’ 등이 그런 것이다. 나도 그런 예화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저희 어머니에게서 온 것 같다.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는데, 평소 말씀하실 때도 속담이나 예화를 많이 쓰셨다. 대한기독교서회 민영진 박사가 이종사촌 형인데 그 형도 유머를 아주 많이 쓰셨다. 우리 어머니들이 유머를 좋아하셨다.

- 가벼운 질문이다. 책을 많이 저술했는데, <예수는 없다> 등의 책은 얼마나 팔렸나?

정확히 물어보지는 못했다. <예수는 없다>가 최근에 나온 것을 보니 39쇄라고 하더라. 한 쇄에 3천에서 5천부 씩 찍으니 약 10만부 이상은 팔린 것 같다. 사실 판매부수로 보면 <노자>, <장자>가 더 오래 되었고, 교과서로도 계속 나오니까 더 많이 팔렸을 것이다.

제일 먼저 쓴 책이 <길벗들의 대화>라는 책인데, 그게 현암사에서 <예수가 외면한 그 한 가지 질문>으로 출판되었다. 저술한 책 중 책을 쓰겠다고 달려들어 쓴 건 <장자>가 유일하다. <장자>는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잠도 안자고 썼다. 나머지는 주로 신문에 연재한 것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 좀 심각한 질문으로 들어가겠다. <예수는 없다>에서 부활의 문제를 다르게 해석한 것이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인위적 해석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다.

부활에 대한 해석은 기독교 내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영체’(spiritual body)가 무엇인가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자기의 신앙적 확신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옛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성구 갈라디아서 6장 15절은 ‘할례냐 무할례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 지음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New Being’ 인데,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그 구절을 책 제목으로 쓰기도 했다.

- 교계에선 인정하지 않는 <도마복음>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는가?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아타나시우스를 통해 기독교 경전으로 좋다고 생각한 27권을 정리했다. 그때 도마복음 등은 콘스탄티누스의 의도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돼 전부 폐기 처분되었다. 하지만, 이집트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 있는 수도사들은 이것들을 단지에 넣어서 묻었는데, 1945년 12월에 발견되었다.

22살에 옥스퍼드대 교수가 되어 신비주의에 대한 방대한 저술을 낸 앤드류 하비(Andrew Harvey)는 ‘같은 해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문헌’이라고 꼽을 만큼 폭발력을 지닌 것으로 전해졌다.

공관복음에는 ‘나를 따르라’, ‘나의 제자가 되라’고 하고, 요한복음에는 ‘나를 믿으라’고 말하는데, 도마복음은 믿으라는 말은 없고 ‘깨치라’고 말한다. ‘그노시스’(Gnosis)를 일본식으로 ‘영지’라고 하는데, ‘깨달음’이라고 하는 게 옳다. 제가 <또다른 예수(도마복음)>을 통해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노시스를 ‘영지’라고 하지 않고 ‘깨달음’이라고 한 것이다.

- ‘종교 다원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에선 ‘종교다원주의자’라는 말이 마치 ‘종북주의자’처럼 사용된다.  다원주의는 특별한 시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보는 데, 보는 관점에 따라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싸울 이유가 없다. 어떻게 내가 본 것만 절대적일 수가 있는가? 그런 옹고집을 버리고, 여러 사람이 본 것을 모아서 코끼리에 가까운 상을 그려보자 하는 것이 다원주의인데, 그것이 왜 나쁜지 모르겠다.

   
▲ 지난 9일(목)부터 3일간 “바른 예수! 바른 믿음!”이란 주제로 <예수는 없다> 저자인 오강남 교수의 강의가 LA 평화의 교회에서 열렸다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 성경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다원주의’를 거부하는데....

그것은 성경에 대한 오해이다. ‘나’라는 게 뭔가? ‘나’라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 모든 사람 속에 들어있는 ‘가장 궁극적인 진정한 나’, ‘참 나’로 볼 수 있다. 예수님 스스로가 “나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셨다. 이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인 나’이다. 예수를 시간적인, 역사적인 존재로서의 ‘나’가 아닌, 예수를 이루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 이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젠 ‘다원주의’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전에는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로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로 나눴다. 하지만, 최근엔 약간 수정해서 폴 리터(Paul F. Knitter)는 'Acceptance 모델'을 주장하는데, 그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좋고, 아름답다는 태도이다.

한스 큉(Hans Kung) 같은 사람은 ‘종교 간의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의 평화가 없고, 종교 간의 평화가 없으면, 세계평화가 없다’했는데, 최근 쓴 글을 보면 ‘다른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가 없으면 종교 간의 대화도 없다’는 것을 덧붙였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배우고 인정하고 평화스럽게 살고,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것이 다원주의의 진정한 의미다. .

- 오늘날 미국 사회를 평가해 달라.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힘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인데, 범죄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범죄율, 문맹, 교육수준 등이 유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예수를 잘 믿는다고 강조하는 미국보다, 유럽이 예수는 말하지 않지만 예수의 정신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북미만 보더라도 바이블벨트(Bible Belt) 지역의 범죄율이 가장 높다. 아칸소 같은 곳은 교회 출석률이 최고인데 감옥 수감자 역시 최고이다. 오레곤 주는 교회수가 적으면서도 범죄율이 적은 것이다. 즉, 종교가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이 더 많을 수가 있다. 표층종교에 머물러 있는 이상 종교가 우리에게 역작용을 할 수 있다.

- 과연 한국교회는 심층종교로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려 한다면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일단 표층종교는 망할 것이다. 교인수가 줄어드는데, 교인수보다 중요한 것은 헌금액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교회건물을 팔겠다고 내놓는 교회가 늘고 있지 않나? 이렇게 표층종교가 망하면서 교회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자각이 생길 것이다.

심층종교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예수의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보다 중요하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잘 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를 믿는 것인데, ‘예수의 믿음’은 예수의 가치관, 예수의 인류에 대한 사랑, 희생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의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한국교회가 해야 할 것이지, 소위 ‘십자가를 타고 날아가는’ 식의 종교를 가지는 것은 종교의 본연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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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술 2015-07-17 14:25:20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타종교를 배워야 한다는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는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기존교회의 잘못을 지적하여 ‘표층종교’라 비하하면서 자기의 주장은 ‘심층종교’라고 미화하는군요. 차원 높은 신앙을 말하는 듯하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의 믿음을 부정하고, 예수님을 모델로 따르자고 하는군요.
힌두교의 수도법이 왜 수도 없이 많을까요? 누가 구주인지 모르기 때문에 저마다 구원을 찾기 때문입니다.

love134 2015-07-16 11:37:49
오 교수의 분석과 결론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아칸소 같은 곳은 교회 출석률이 최고인데 감옥 수감자 역시 최고이다. 오레곤 주는 교회수가 적으면서도 범죄율이 적은 것이다.”라고 말히는데, 아칸소는 African-American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곳의 범죄율에 대하여 역사적, 사회학적 접근을 하고 있지 못하고 단순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론 논리가 오 교수가 말하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에서 예외 없이 발견된다. 결국 오교수의 말은 신뢰할만하지 못하다. 믿을 내용이 별로 없다.

johnsarang 2015-07-15 06:35:43
언론의자유는 보장하되 보여주기위한 댓글은 삼가해야 할것이다 왜 이시대에 예수와 믿음앞에 "바른"이라는 접두사가 붙어야할까 ?

현대신앙 2015-07-14 03:34:05
자유주의, 복음주의 이런 것 모르지만 오 강남 교수로부터 '맹목적 신앙이 아닌 생각하는 신앙을 가지는 참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느껴진다. 현 기독교계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앙을 찾지 않으면 도태되어 사멸할 것이다.

Julia Kim 2015-07-14 02:14:46
다시 한번 크리스찬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좋은 강연과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