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자전거 이야기
평화 자전거 이야기
  • 김성환
  • 승인 2015.07.13 1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샌프란 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2)

지난 6월 8일(월)부터 6일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아동 신발돕기 자전거타기’ 행사가 태평양 해안 1번 하이웨이를 따라 펼쳐졌다. 본지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출발하여 산타모니카까지 총 530마일(853Km)를 달리는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를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함께했던 가디나장로교회 김성환 목사의 두번째 여행기를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Monterey에서 아침에 출발하며

"여정의 시작"

2012년 그해 11월 추수감사주간 드디어 장거리 자전거 여행의 꿈을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11월 19일-22일, 2박 3일이었습니다. 몬터레이(Monterery)에서 모로베이까지 3일 동안 1번 하이웨이를 따라 자전거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아침, 아내와 저는 차를 몰고 몬터레이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철부지 같은 남편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을 뒤로 한채 자전거를 타고 몬터레이를 출발했습니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3일 동안 생존하는데 필요한 모든 짐을 자전거에 싣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습니다. 아름다운 몬터레이 Cannery Row를 지나 17 마일에 이르렀을 때 그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며 달렸습니다. 아,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곳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자가 몇일까요? 한폭의 그림 같은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부서지는 파도, 바다내음, 바람, 파도소리… 잠자던 몸의 세포들이 살아 춤추는 듯 했습니다.

   
   
   
   
   
   
   
   
   
   
 

Kinkaid의 유화에 나올듯한 카멜 (Carmel)의 아름답고 작은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도 누리면서, 그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려 첫날 목적지 Pfeiffer Big Sur State Park에 이르렀습니다.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은 더 없이 상쾌했습니다. 준비해간 1인용 텐트를 치고 첫날 밤을 맞이했습니다. 그 날 밤,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첫날 밤, 비가 오다.

비를 맞으며 흠뻑 젖은채 어두운 숲속에서 한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에도 비는 계속되었습니다. 오전에도 정오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 하루 종일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하늘의 수도꼭지가 일제히 열린 듯 했습니다. 밤새 한숨도 못 잔채 아침에 동이 트자마자 흠뻑 젖은 텐트와 침낭을 거두고 소나기를 맞으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Big Sur를 넘는 내내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계속되는 오르막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했으며, 내리막길에서도 비가 오고 있어서 속도를 낼 수 없었습니다. 5미터 앞을 볼 수 없는 두꺼운 안개가 백내장처럼 시야를 가렸습니다. 그 위험한 Big Sur 구간을 소나기를 맞으며 안개를 뚫고 달렸습니다. 아름답다는 Big Sur의 바다와 산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 종일 눈 앞에 느린 속도로 다가오는 회색 아스팔트만 바라보며 달렸습니다.

그렇게 둘째 날 80여마일을 달려 이미 해는 지고 어둑해진 시간에 San Simeon State Park에 도착했습니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캠프그라운드에 비를 맞으며 혼자 젖은 텐트를 치고 누워있자니 축축한 바닥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오리털 침낭은 전날 비로 흠뻑 젖어 무용지물이 되었고, 갈아입을 옷도 모두 젖어 있었습니다. 언제 비가 그칠지 알 수 없어 텐트를 쳐 놓은채로 앉아 있자니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어떤 백인 청년 하나가 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길래 상황을 설명했더니 3마일 정도 떨어진 인근의 Cambria라는 소도시까지 태워주겠답니다. 그곳에 가면 음식도 있고, 몸도 말리고 녹일 수 있을 거라고. 돌아올 때는 자전거를 타고 오기로 하고 자전거를 그 청년의 차에 싣고 그곳까지 갔습니다. 한 피자 집에서 홀로 몸을 녹이며, 피자를 먹었습니다. 피자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 따뜻한 난로가 뱃속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빗 속에 자전거를 타고 캠프그라운드에 돌아와 나무 밑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다행히 어느새 비는 그치고 젖은 텐트 속에서 골아떨어졌습니다. 이튿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화창했습니다. 어젯밤 Cambria까지 태워준 청년이 고마워서 그의 캠프그라운드를 찾았습니다. 영어가 서툰 그는 프랑스 보르듀에서 미국으로 자전거 여행을 온 청년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보르듀는 프랑스 와인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지요. 그곳에서 자전거숍을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보르듀 지방의 유명 와이너리를 자전거를 타고 돌며 관광 안내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젯밤 감사했다고 인사를 건네고 돌아오려는데 자신의 직업이 자전거 정비이니 자전거를 봐 주겠다고 합니다. 보더니 뒷바퀴 타이어가 찢어져 틈 사이로 튜브가 삐져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대로 탔더라면 큰 사고가 났던지 아니면 큰 고장이 나서 오고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번 여행에 새로 구입한 타이어였기에 타이어가 찢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여분의 타이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그 프랑스 청년이 자신의 차 안에서 여분의 타이어를 건네주었습니다. 타이어 교체까지 손수 직접 해주고 조심히 타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프랑스 연락처를 주며 보르듀에 꼭 한번 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자신의 집에 묶게 해 주겠다고. 그 청년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지난 밤, 배고프고 비 맞아 떨고 있는 나를 차에 태워 인근 도시에 데려다주고, 아침에는 타이어가 찢어진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타이어로 손수 교체까지 해 주었습니다. 타이어 값을 지불해야겠어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30불 주고 산 건데 25불만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주머니에 현금이 23불 밖에 없어서 그것밖에 주지 못했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대책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청년의 친절함으로 인해 저는 지금도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김성환 목사 / 가디나장로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