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약자에게 눈돌리는 한국기독교인 되어야
사회적약자에게 눈돌리는 한국기독교인 되어야
  • 정미진
  • 승인 2015.08.19 21: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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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교수 광복 70주년 행사 강연
광복 70주년, 뉴저지 필그림교회(담임 양춘길 목사)에서 손봉호 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손교수는 14일(금), 15일(토) 양일간 '크리스찬의 역사의식'과 '크리스찬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전했다. 근대화 과정과 현대에서 보여준  '크리스찬의 역사의식'에 대한 손 교수의 강의를 소개한다. - <편집자 주>

한국 기독교인이 이룬 문화적 업적’

어떻게 우리가 한국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떤것에 가슴 뭉클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피가 한국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 속에 태극기가 조그맣게 보일까요? 미국사람이나 다른 나라 사람이나 가진 피는 다 똑같아요. 모든 피는 빨갛습니다. 피가 한국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면 그럼 무엇이 한국사람을 만들까요?

문화입니다. 역사입니다. 동물은 역사를 만들지 않습니다. 한국 문화가 한국사람을 만들고 이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을 역사라 합니다. 자기가 의식하는 것을 바깥으로 내놓아 시를 짓고 건물을 짓고 의자를 만들고 온갖 문화물을 만들어 그 바탕위에 다른 사람들이 이것들을 보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문화를 만듭니다.

문화는 공동체적입니다. 개인의 문화는 없습니다. '이순신의 문화' 이런 것은 없습니다. 공동체가 서로서로 의사를 교환하고 행동의 모범을 만들어 관습이 되면 문화가 됩니다. 문화가 한국사람을 만듭니다. 한국사람이 문화를 창조하고 또 그 문화가 한국사람을 만듭니다. 그것은 피때문이 아니라 한국 문화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화를 생각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아주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광복 70주년을 보낸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기독교적 국가 심지어 반기독교 국가인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시작되자마다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인구가 2 % 뿐이었을 때 삼일운동의 지도자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만세운동을주도한 지도자들의 절반이 기독교인으로 기독교인들이 나라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눈부신 발전 이제는 세계로 돌려야’

 2015년 HDI(Human Development Index)라고 경제,수명 등 사회 여러가지 자원 이용가치에 대해 발표하는 조사에서 우리나라가15번째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영국,프랑스보다 앞선 것으로 이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2009년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는데, 이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 최초로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됨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는 평균치를 밑돌 정도로 원조를 썩 잘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민간인 단체들이 원조를 많이합니다. 특히 선명회, 굿네이버스,국제기아대책 이라든지 기독교단체들이 앞장서서 많이합니다. 미군들이 준 옷을 입고 음식을 얻어먹었던 어린 시절를 보낸 저에게는 아주 감격스런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영국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민주화 수준은 일본을 앞선 20위 정도입니다. 그 요소로는 '사람을 신처럼 섬기는 일'이 없고, '시민운동의 활성화'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법적인 힘도 없는 시민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민주화 정도가 상당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감사하고 누려야하는 권리도 있습니다만 이것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역사를 주셨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성숙한 국민이 가져야 할 생각입니다. 성경안에서 지금의 세계의 상황을 보면서 한국이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개화하는데 의료, 교육, 복지, 예술 이 모든 것이 기독교를 통해 도입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후진국이 되었을 것이고 독립도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 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공헌한 한국 기독교가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위대한 유산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 유산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성경에서 나온것이지 않습니까? 성경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전체에서 말하는 것은 사랑’

오늘날 세계에서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을까요? '경제'가 모든것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말씀처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가 현대인의 삶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산상수훈의 결론인 동시에 역사 혹은 미래를 생각하는 우리를 향해 내리신 결론입니다. 우리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만 생각한다면 이방인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돈' 중심의 잘못된 문화를 고쳐 그의 주도권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코스모스를 드러내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실행하는 동기를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행위로,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이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이 감정뿐이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능동적인, 의지의 문제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감정이 일어날 떄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결단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겁니다.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을때 두가지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넓은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너무 사적인 기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축복, 하나님과의 대화, 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너무 사적인 것이되고 개인적인 것이되어 하나님을 너무 작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십니다. 더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집착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세상의 정의와 다른 것이 아니지만 좀 독특한 부분은 ‘고아와 과부’를 위한 정의입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정의가 깨어질때 누가 가장 피해를 보느냐에 대해 말합니다.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약자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 세계의 약자를 도울까? 인권유리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까? 이런것에 관심을 좀 쓰자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고 그렇게 해서 샬롬이 이루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난이 오히려 유익이라’

한국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육이 너무 과열되어 너무 많은 고급인력을 배출했습니다.

또한 한국은 가장 진취적인 나라입니다. 우리 외무부가 2014년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한 민족은181개국에 퍼져있고 174개국에 한인교회가 있습니다. 남아도는 고급인력이 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합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가나안농군학교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다'고 하자 '돈은 필요없다'며 우리의 정신과 노하우만 알려달라고 부통령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12개의 나라에 나가 있습니다. 대부분 그쪽에서 요청해서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정신으로 시작된 학교입니다.

우리는 아주 특이한 고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난이 많은 나라이고 민감한 정서를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천대를 받고 지독한 가난속에서 온갖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은 엄청난 자원입니다.

한철호 박사라고 한국이 배출한 뛰어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장성한 아들이 바다에 뛰어들어다가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하였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 선교사가 위로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도 장성한 아들을 잃어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고통받는 분들, 어려움 겪고 있는 분들, 그것을 낭비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귀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정의는 나에게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앞장서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민족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이방인이 구하는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자존심 없는 것을 구하지 맙시다. 저는 있으면 아프리카에 다 보냅니다. 아프리카에 보내면 한국보다 100배의 가치를 발휘합니다. 득을 보기 위해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돕기위해 하는 것이고 이 교제는 고상한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민여러분이 고상한 사람이 되십시다. 세상사람들도 존경할 것입니다.

고통받는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정미진 기자 / <뉴스  M /  미주 뉴스앤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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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반항 2015-09-17 10:28:09
손봉호 교수님 .. 정말 이 시대가 필요한 리더입니다. 감사하고요.
왜 지역교회 목회자들은, 아니 소위 '담임목사'들은 손교수님 같지 않을까요?
책임감을 통감하지 못하는 걸까요? 손교수님 말씀에 답이 들어있지만
자기는 아니라고 하겠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