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싫어하는 목사
돈을 싫어하는 목사
  • 이계선 목사
  • 승인 2015.09.07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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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선 목사 ⓒ <뉴스 M>

“이목사님은 돈을 싫어하는 목사님이군요. 공짜로 생긴 돈을 안 받으시다니? 저도 교회다니고 있지만 돈 싫어하는 목사님은 처음 봅니다”

한국에 있는 박동선후원회에서 돈을 보내왔다. 1976년 코리아게이트로 워싱턴정가를 뒤흔들어놓았던 박동선씨는 이락로비사건으로 미국의 미움을 받는다. 미국밖에서 살다가 멕시코에서 FBI에 붙잡혀 뉴욕에 수감돼있었다. 한국에서 면회온분이 차편이 없다기에 내차를 끌고 나가보니 묘령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창열 경기도지사와 재혼 이혼으로 정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슈퍼우먼 주혜란이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나는 박동선씨를 알게 됐다. 만나보니 박동선은 박정희의 하수인이 아니었다. 봉이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듯 미국쌀을 한국에 팔아먹고 거액을 챙긴 사기꾼도 아니었다. 애국자요 신사였다. 난(蘭)을 사랑하고 차(茶)를 즐기는 신사였다. 이기택총재 유재건의원처럼 한국에서 찾아오는 면회객들은 야당계열이었다. 나는 칼럼을 써서 그의 무죄를 알렸다. 면회를 갈 때 마다 2시간동안 이야기를 들어줬다. 의아해했다.

“다른 목사님들은 면회 오면 ‘기도합시다. 성경공부합시다’ 하면서 요셉의 감옥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계시록의 천국심판에 이르는 장광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목사님은 부처님처럼 듣기만 하시는군요?”

“박선생님은 안동교회집사님이요 국무총리급의 식견과 안목이 있는 분입니다. 설교가 필요하겠어요? 그 보다 면회상담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밤새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던가요? 한마디 안하시고 묵묵부답 침묵만하십니다. 스님들이 밤새워 목탁을 두드려대도 부처님은 조용히 웃으시기만 하지요. 그 보다도 저야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밖앗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 맨날 입을 열고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감옥속에 혼자계시니 오죽 말하고 싶겠어요. 제가 오는 건 설교하러 오는 게 아니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오는것 이지요”

(???......)

그는 득도한 수도승처럼 갑자기 침묵해졌다. 두 번째 면회때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 목사님을 아우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저야 영광이지요.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박선생님이 감옥에 계실때만 형제의 의를 맺겠습니다. 밖에 나가시면 저보다 훌륭한 친구와 형제들이 수두룩 할테니까요”

(???...)

그래서 우리는 옥중의형제가 됐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갑자기 명문가문의 반열에 오른 느낌이 들었다. 8촌 이내에 박동선형님만한 형이 없기 때문이다. 매주 면회를 갔다. 보스톤으로 이감 했을때도 가봤다. 형님은 3년을 못 채우고 2013년에 풀려났다. 형제관계도 끝나버렸다. 그가 출옥한후 난 연락을 끊었다. 한국 방문시에도 그를 찾지 않았다. 이젠 형님이 아니니까.

그가 옥중에 있을때 4인이 열심히 도왔다. 한국에 있는 박동선후원회에서 돈이 왔다. 수고한다는 사례였다. 나도 4인이기에 1/4 몫이 배당됐다.

‘그 돈을 아내에게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100불만 쥐어줘도 좋아했는데, 결혼주례사례로 받은 5백불을 줄때는 얼마나 행복해했던가?‘

그러나 그럴수는 없다. 형님은 감옥에 있는데 감옥밖에 있는 동생이 받는다는건 말이 안 된다. 사양하자 내가 돈을 싫어하는 목사라고 놀란 것이다.

“천만에! 나는 돈을 좋아하는 목삽니다. 단지 액수가 너무 적어서 거절하는것 뿐입니다. 10만 달러라면, 아니 1만 달러만 되도 받겠는데....”

(???...)

   
▲ 돈을 뿌리고 다니는 남자

세상천지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목사들도 돈을 좋아한다. 싫어하는 척 하면서 좋아한다. 70년대에 월남이 망하자 청와대는 안보를 핑계로 공포정치를 몰고 다녔다. 오산리기도원에서 “미스바 구국대부흥성회”를 하고 있었다.

“공산적화 도미노가 월남 다음에는 한국입니다. 지금은 주님재림이 문밖에 와있는 말세지말 입니다. 알곡신자는 말세심판 직전에 휴거받아 천국에 올라갑니다. 우리들이 올라가 주님과 함께 살게될 집은 삼성재벌회장사택의 천배 아니 억만배 호화판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계시록에 기록돼있어요. 집 울타리가 황금도성이랍니다. 12문이 있는데 문마다 진주로 만들었습니다. 멸망해가는 세상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읍시다.”

63빌딩만큼 높아 보이는 대형현수막이 천정에서 아래로 걸려있는데 문구가 섬찍 했다.

“예수님 곧 오십니다!”

달려들어 헌금했다. 금반지 목거리도 빼어 바쳤다. 금이빨까지 뺄 기세였다. 예수님 곧 오시고, 천국에 올라가 황금도성에서 살 텐데 저 돈은 걷어서 어디에 쓰려나?

며칠후 TV와 신문에는 여의도교회에서 노인복지아파트를 짓는다는 선행기사가 나팔을 불고 있었다. 천국팔고 말세를 팔면서까지 헌금을 거둬들여 아파트를 짓다니? 대형교회도 교회세습도 다 돈 때문이다. 목회를 은퇴하고 나니 돈 걱정 안 해서 좋다. 수입도 없지만 돈 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일부러 자연이 있는 변방 돌섬으로 내려 와 산다. 한인들이 없으니 돈 쓸 일이 없다. 매일 바다 숲 비치 새와 꽃을 만나지만 자연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자가용이 있어도 대개 걸어 다니니 휘발유 값도 절약이다.

가족처럼 지내는 지인이 미국생활 20년만에 한국을 방문한단다. 여비라도 보태줘야 하는데 가슴이 아프다. 박동선씨 후원회에서 보내줬던 후원금이 생각난다. 그거라도 받아뒀다 이럴 때 쓰는 건데.

“아빠 걱정 말아요. 저희가 조금 마련 했어요”

우울증으로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둘째딸의 전화목소리가 맑게 들려왔다.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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