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과 헛소리의 종교
망상과 헛소리의 종교
  • 지성수
  • 승인 2015.09.25 0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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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수 목사 ⓒ <뉴스 M>

서울 거리에 서서 오고 가는 무심한 대중들을 바라보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대중들을 속여 먹기가 얼마나 쉬운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는 이런 대중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서구에서 대중이 기독교에 관심을 잃어버린 것과는 다른 이유로. 

왜 그럴까? 수많은 목회자들이 진심을 다해서 설교를 하지만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이 세상의 진짜모습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던지는 것이기에 그것은 헛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 그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었다. 그러니까 관명사칭이고 반란 수괴라는 뜻이다. 물론 이 죄목에는 로마 총독이 유대인들을 조롱하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보면 ’사기꾼‘이라는 의미도 된다. 즉 왕이 아닌 주제에 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악의에 찬 오해이다.하지만 예수의 후예들은 진짜 사기꾼들로 줄을 이어서 그 사기는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대부분은 자기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니고 모르고 사기를 치고 있다. 문제는 안다면 자기가 조절을 해서 치기 때문에 사기를 덜 칠 터이지만 모르고 사기를 치는 것은 조절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확신에 차서 크게 사기를 칠수록 더 대접을 받는다.

원래 종교의 나와바리는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지상에서 영원까지 워낙 넓어서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사기인지 감을 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예수를 가지고 불량품, 모조품, 유사품 등을 만드는 것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으랴? 원래 사기는 당하고 나서야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법인데 다음 세상까지 팔아서 사기를 치니 알 도리가 있겠는가?

사기란, 적어도 자신이 거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에서의 사기의 특징은 착각을 동반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기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행복하게 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한 종교체험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형태는 퀘이커의 집회형태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둘러앉아서 1 시간 동안 명상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가장 이성적인 상태에서 영성을 추구한다.

나는 설교를 하고 허전했던 적이 많았다. 듣는 이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자기만족 외에 무엇을 얻었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이야말로 스스로 속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한국 방문으로 새롭게 흥미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세상에는 ‘자기가 생각하는 나’, ‘남들이 생각하는 나’, ‘실재의 나’의 3 가지 ‘나’가 있다. 이 3 가지 나 사이의 간격이 넓으면 넓을수록 미친놈이나 웃기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가까울수록 예수나 부처의 동기생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아무리 오래 사귀었어도 3 가지 나 사이의 간격이 널찍널찍한 사람을 보면 불안을 느끼게 되고 관계도 편안하지 못하지만 사귄지 얼마 안 되어도 간격이 좁은 사람일수록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3 가지 나'의 불안한 삼각구도에 관념적 신앙까지 더 하면 대책이 없다. 왜냐하면 자기 암시, 자기 확신이 가미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통해서 알게 되어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몽환적 상태에서 벋어난 신앙인들이다. 왜냐하면 온라인을 통하여 읽은 내 글을 통하여 이미 피차 검증 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만나자 마자 동질감을 느끼고 가까워질 수가 있다. 

그런데 온라인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는 ‘알아듣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했다가 헛다리를 집고 휘청거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증장애를 가져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젊은 목사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서 전동 흴체어 상태에서 평생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일을 소개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관심이 없었다. 물론 당연히 그럴 수가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가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장애라는 현실 보다는 비장애인 목사와 똑같이 목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현실 보다는 관념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자기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생각 속에 빠져 사는 것을 ‘관념의 감옥’에 빠져 있다고 한다. ‘관념의 감옥’에 빠지면 현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관념의 감옥’에 빠지도록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금메달은 역시 종교의 역할이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적으로는 ‘종말론’이라는 있고 정치적으로는 ‘북한 붕괴론’이 다.

"김정일이 쓰러졌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유엔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화폐개혁으로 북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전안함 폭침은 내부 불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김정은의 등장으로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연평도 포격 이후 평양의 엘리트도 동요하고 군도 이탈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그들은 냉정하게 북한의 현실을 분석하는 것 보다는 조만간 망할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 잡혀 있다.
컴퓨터 게임은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가상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관념의 감옥에 빠지면 컴퓨터 게임처럼 항상 시뮬레이션을 하게 된다.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나 구원, 중생, 선교, 해탈, 견성 등등 관념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나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미친 놈이나 웃기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어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 그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열등한 것이 많으면서도 열등감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인간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때로는 무모하기도 해서 겪지 않아도 좋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언젠가 삶의 껍질을 벋는 날 아마도 위선과 시행착오가 빚어낸 과오와 실수의 껍데기만 남길 것 같다.

지성수 목사 / 군종, 교목, 원목, 빈민목회, 산업목회, 개척 교회, 이민 목회등을 거쳐서 지금은 현장 목회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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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 2015-09-26 17:55:43
무심코 읽었다가 놀라움을 깨닫는 글입니다.
뉴스엠에서 이 정도 수준의 통찰력있고 솔직한 글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글이 헤드라인에 오르니 않는지 편집진들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말작난에 불과한 어떤 분의 글 보다 훨씬 수준있는 참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