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뿌린 씨
20년 전에 뿌린 씨
  • 김은정
  • 승인 2009.10.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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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연재] 초짜 기독인의 유쾌한 신앙 일기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은사와 연결이 되었다. 중 3 담임선생님이다. 16살 사춘기였던 시절, 당시 선생님은 29살이었다. 술잔을 기울여가며 예수님을 논하셨던 때라고 생각되어진다. 내가 알기로 당시 선생님은 아직 크리스천이 아니었고, 동료 교사에 의해 전도 받고 있던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국어 선생님이던 그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선생님이 읽으라는 책은 모조리 읽었고, 내가 엿볼 수 선생님의 허무와 인생의 '쓴뿌리'를 문학에서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 합격을 하고 나서야 선생님은 기다리신 듯 나를 불러 회기역의 어느 허름하기 짝이 없는 성경공부 단체에서 나에게 창세기 1장 1절을 가르치셨다. 지금에야 생각이 났지만, 그때 이유를 알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친구들 사이에서 눈물 없기로 유명했던 나에게 참 당혹스러웠던 순간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 구질구질했던 성경공부방이 싫었고 어쩌다 마주치는 소위 '믿는다는 사람들'의 촌스러운 옷차림과, 허름한 건물이 대변해주는 가난의 모습이 싫었으면서도 창세기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났다는 사실만으로 수치스러워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술맛을 익히게 되자, 취중에 선생님이 대학생들과 성경공부하는 그곳에 가서 주정을 부리곤 했다. "선생님이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가르쳐놓고 이제 와서 선생님만 빠져 나가면 저는 어떻게 해요? 저는 선생님이 믿는다는 예수님이 안 믿겨요. 삶은 그냥 허무할 뿐이죠. 그냥 멋있게 그렇게 놔두지 선생님만 해결을 보면 저는 어떻게 하라고…"

술집 건너편에 있었던 그 성경공부센터로 신발을 질질 끌고 가 이렇게 깽판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다시 선생님을 찾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가끔 선생님 생각이 났지만 나랑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분이라는 생각에 연락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도 나는 그 선생님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리~'라는 찬양을 생각 없이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는데 그때 선생님과 했던 단 한 번의 성경 공부가 내 마음에 들어와 씨를 뿌렸던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어떻게 믿게 되었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한국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서 우리 아들이 놀게 하려고 교회 가다 보니까 믿게 되었어요"라고 대충 말해왔다. 그런데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20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 선생님이 그 허름한 자리에서 뿌린 씨가 자라 내가 오늘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어찌어찌 연락이 되어 최근에 선생님과 통화가 연결 되었을 때 선생님은 내가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서 한몫을 감당하고 이렇게 연락이 된 모든 것을 기뻐하셨지만, 무엇보다 내가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하셨다. “그때 너를 잃었다고 생각 했었는데….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분이시다.” 

이제 나는 내가 뿌려야 할 씨를 생각하게 되었다. 당장은 내말을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는 사람한테도, 나를 고리타분한 예수쟁이로 취급할지라도 나는 내가 뿌려할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격이 이상한 사람을 보면,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할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섣부른 충고를 할 것이 아니라 말없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만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그때 굳이 나를 잡지 않으셨다. 나를 가게 내버려두셨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나의 때에 내게 돌아오리라고 믿으셨을 때도 있었겠지만, 20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잃었나보다고 생각하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 인생에서 역사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를 억지로 부러뜨리지 않고 나의 방법으로 헤매도록 놓아주시고 스스로 제 발로 찾아오도록 나의 감정과 상황을 이용하셨다. 생각해보면 나를 상대로 끈질기게 전도한 사람은 없었다. 내게 성경책을 사주고 밥을 사주신 그 집사님들 권사님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다 아셔서,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붙이지 않으시고 스스로 헤매다 제 발로 찾아오게 하셨다. 선생님처럼 씨를 한 번 뿌린 자가 있었고, 나를 먹인 자가 있었으며, 나를 차에 태워준 자, 우리 애를 봐준 자, 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한통속이 되어  한 영혼을 구원하셨다. 얼마나 공을 들이셨는지 이제 알겠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찮은 나 하나를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이셨다니 다만 눈물이 날 뿐이다.

김은정 씨는 일명  '라면 강사'다. 끓이기 쉽고 맛있는 라면처럼, 배우기도 쉽고 알차게 써먹을 수 있는 생활영어를 <미주뉴스앤조이>와 <코넷> 등에 연재해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예수님을 믿는 재미'를 나눠볼 요량이다. <미주뉴스앤조이>는 김은정 씨가 신앙생활하면서 맛본 은혜와 갈등을 솔직히 '까발리는' 신앙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현재 달라스중앙연합감리교회에 출석하는 김은정 씨는 U.T. Arlington에서 ESL 강사로 있으며 Texas Wesleyan University 심리학과 교수인 남편과 이름이 '아들'인 아들 그리고 딸 조아와 Fort Worth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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