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돈'과 '눈먼 돈'
'교회 돈'과 '눈먼 돈'
  • 신성남
  • 승인 2015.10.12 12:0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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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의 성전은 '강도의 소굴'
   
▲ 신성남 집사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근자에 어느 성도의 안타까운 탄식을 들었다. "모교회의 담임목사는 아들과 딸 모두 유학을 보냈다. 자식 잘 되기 바라서 최대한 뒷바라지하고 싶어하는 부모 마음이야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가난한 교우들이 바친 헌금으로 생활하는 목사가 유학간 자식들 자랑하는 건 정말 봐주기 힘들었다. 설교 시간에 자기가 하나님 잘 섬겨서 자식들이 잘 되고 가정이 흥왕한다며 교우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뻐긴 적이 있다. 재수 삼수하는 자식들 학원비 한번 선뜻 내주지 못해 가슴을 치는 가난한 부모들 앞에서 할 소리가 아니었다. 말은 청산유수인데 인성이 바닥인 자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종교 귀족들의 극히 일반적인 인생관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이런 부류의 목회자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긴 결과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용감무지한 사고방식이다. 만일 그런 천박한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면, 이스람교도인 두바이 사람들이나 온갖 잡신을 숭배하는 일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매우 잘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귀족 교회들은 목사 대신에 차라리 재벌 회장을 모셔다가 당회장을 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아니 이미 일부 대형 교회 담임목사들의 사치는 충분히 재벌급이다.

아무튼 이 종교 귀족들은 입으로는 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른다고 하지만, 막상 예수님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만은 결코 못 참는 인생들이다. 오히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부자로 살려고 한다. 

인성이 바닥인 자들 

요즘 웬만한 중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들은 연봉 외에도 각종 지원비나 수당으로 받아가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너무 째째해서 창피할 정도로 소소한 것까지 모두 교회에서 돈을 청구해 추가로 챙겨가고 있다.

많은 경우 교회 돈은 거의 눈먼 돈이다. 먼저 먹는 목사가 임자다. 대부분 목회자들이 기본 연봉 외에도 사택유지비, 차량유지비, 목회활동비, 판공비, 강사비, 심방비, 교육비, 장학비, 통신비, 보험료, 도서비, 사무비, 절기수당, 안식년비, 휴가비, 여행비, 의료비, 그리고 상여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만큼 이런저런 잡다한 명목으로 교회 돈을 열심히 가져간다. 그래서 어떤 목사의 배꼽은 배보다 더 크다.

과연 세상의 어느 직업이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알토란처럼 돈을 챙겨갈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모두 본봉 하나로 해결하며 힘들게 먹고 산다. 많지 않은 연봉으로 생활비,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대출금, 연료비, 그리고 교통비 등 모든 것을 다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교회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 집단이 우리 사회 어디에 또 있을까.

돈을 안 밝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얼마나 보았는가. 갖은 치졸한 수단을 동원하며 교회들이 얼마나 돈독이 올랐는지, 양식이 있는 성도라면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 없을 지경이다.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지만, 종교적 재능이 뛰어난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잘 섬기고 있다.

경기도의 P교회는 1년간 헌금 총액이 15억 원인데, 그 중에 무려 6억 원을 담임목사가 가져 갔다. 외형상 사례비는 6천만 원이지만 실제는 교회 장부를 분산처리해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챙겼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추가로 교회 돈을 13억 원이나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스런 당회와 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여전히 담임목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패한 목사보다 더욱 더 부끄러운 것은 그런 목사를 거룩한 교회의 공의로 제대로 치리하지 못 하고 있는 우리의 부패한 양심이다. 지도자도 소경이고 신도도 소경이니 백약이 무효다.

아무튼 미국에도 아주 통크게 돈을 잘 걷는 목사들이 있다. 월드체인저스교회의 '크레플로 달러' 목사는 세계 선교 명목으로 무려 6,500만불(약 700억 원)짜리 초호화 전용기를 마련하기 위해 20만 명의 신도들에게 각각 300달러씩의 헌금을 요구하여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호화 생활을 한 '베니 힌' 목사 또한 이 방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목사였다.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중세 시대의 성당 역시 '강도의 굴혈'이었다. 그리고 오늘날도 어떤 교회들은 십자가를 내걸고 '예수교'라는 간판을 번듯하게 달고 있지만 그건 그저 인조로 성형한 미끈한 외모일 뿐이고 실상은 그냥 돈 바치고 돈 뺏는 강도의 소굴이다. 물론 신앙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범죄적인 강도질을 종교적인 무당질로 위장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애용하는 상투적 수법이다.

그러니 이런 사교집단들이 더 번창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어쩌면 차라리 '헤롯성전'처럼 조속히 망해주는 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며 크게 돕는 일이다.

   
▲ 크레플로 달러 목사와 그가 구입하려던 제트비행기(걸프스트림 페이스북 갈무리)
   
▲ 걸프스트림 G650 비행기 내부 (걸프스트림 갈무리)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 '무당 목사'들 

한국 개신교가 회개하고 변화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교회가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보다도 더욱 큰 기적이 필요한 상태다. 그래서 실질적인 '교회 회복'이란 거의 불가능하고, 도리어 교회가 새롭게 소생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서 속히 망하는 길' 뿐이라는 '역설적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 일각에서 "사찰이 망해야 불교가 살고, 교회가 망해야 기독교가 산다"는 한탄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직업종교인들의 끝없는 탐심이 자기 신앙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밑뿌리부터 통채로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30년간 여러 교회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가장 확실한 결론 중에 하나는 이단이나 사이비보다 더욱 위험하고 간악한 세력들이 정통으로 치장한 평범한 교회들 속에 긴옷을 입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뿌리 깊히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교역자들은 입만 열면 '성전'과 '성직'을 노래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기만이다. 벽돌 덩어리 건물은 결코 거룩한 성전이 아니고, '가르치는 장로'의 직분인 목사는 사제나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직전 제자인 12사도들조차 제사장직이 아니었는데, 현행 목사직이 어떻게 사도의 전승을 이은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그 무식의 심오한 깊이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최근 강남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는 한 대형 교회의 목사는 순장들을 모아 놓고 노골적으로 '목사님들은 레위 지파요, 성도는 나머지 지파이니 레위 지파를 옹위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교단 소속 목사의 이런 무지한 망말을 들을 때면, 도대체 저들의 신학교에서는 뭘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지 지극히 의심이 갈 정도다.

성전주의자들은 어찌하든 교회당을 신성시하여 신도들의 삶을 교회에 가두고 종교적 야심을 채우려 한다. 그리고 성직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대리자로 격상시켜 군림하려 한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제 맘대로 교단법에 장난을 쳐서 단지 종의 직분 중에 하나일 뿐인 일개 목사를 사실상 개신교의 교주로 둔갑시키고 있는지 정말 통탄할 일이다.

1500년 전 중세 교회가 사도들이 원하거나 명하지도 않은 엉뚱한 '교황 제도'와 '사제 제도'를 만들어 교회의 직분을 수직적으로 계급화한 것은 아주 큰 잘못이었다. 마찬가지로 불과 500년 전 개혁자 칼뱅이 최초로 만든 개신교의 '목사 제도' 역시 무조건 절대적인 제도는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성경의 원리에 따라 필요시 얼마든지 미흡한 제도를 보완하거나 바꿀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널뛰고 있는 일부 종교 귀족들을 보자. 이들은 늘 교회성장과 선교를 외치지만, 그 속내가 정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일까. 그건 아니다. 어떤 무리들은 그저 자기들 밥상을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을 뿐이다. 목회로 인한 거룩한 고난은 늘 작은 교회의 가난한 목사들 어깨에 지우고, 목회의 달콤한 열매는 대부분 중대형 교회의 귀족 목사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강도의 무덤'으로 진화 중

여하튼 교회 비리를 비판할 때마다 일부에선 또 "진부하다! 지겹다!" 하며 다시 난리이겠지만, 그런 상투적 반박 논리는 아직도 한국교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덮거나 왜곡하려는 간교한 잔수일 뿐이다. 그러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같은 논리의 비판을 평생 반복한 것도 그냥 진부하고 지겨운 것인가.

아니 자신들은 허구한 날 똑같은 '기복적 무당설교'와 똑같은 '헌금 도적질'을 매주 반복하면서, 같은 논리의 비판은 이제 그만 삼가하라니 이는 얼마나 후안무치하고 적반하장인가.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스스로 비리를 멈추면 당연히 비판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 아직도 염치없이 목회 비리는 계속 확대하고 재생산하면서 반복적 비판은 멈추라는 건 도대체 어느 교단식 '목회신학'인지 모르겠다.

물론 단순히 외형적인 교회 부패를 척결하는 것이 교회 개혁의 본질은 아니다. 그럼에도 목회 독재, 헌금 횡령, 뇌물 수수, 표절, 성추행, 성직 매매, 그리고 교회 세습 등 고질적인 '목회 비리'를 '우선적으로' 해소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교권주의자들의 화려한 밥상이 되고 있고, 또한 그런 사심을 가진 잡배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그 어떤 개혁 논의도 현실적으로 별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즉 부패한 직분자들을 먼저 뿌리 뽑아야 비로소 바른 교회론을 사역 현장에 적용하여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애초에 교회에 먹을 것이 없었다면, 벌레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성경적 교회를 바르게 정립하기 위한 신학적 논의와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상식의 회복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다. 좋은 모종을 밭에 심기 전에 우선 지속적으로 유기농 살충제를 뿌려 거기에 기생하고 있는 해충들을 철저히 제거하는 것이 바른 순서이기 때문이다.

성전을 열심히 건축했다고 해서 모두가 참 신앙인은 아니다. 도리어 유대의 마지막 성전을 지은 헤롯이란 자는 신앙은 커녕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개차반인 사악한 왕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백성의 환심을 얻어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이루기 위해 성전을 지었다. 따라서 한국의 '성전주의자'들과는 아주 완벽하게 닮은꼴이다.

더구나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껍데기 성전신앙을 악용하던 종교 지도자들이 도리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박해한 것이다. 그런데 그 때처럼 또 다시 종교의 탈을 쓴 도적들이 지배자가 되어 주인의 성전을 차지한 교회, 이것이 현재 우리의 참담한 모습은 아닐까.

사실 신실한 목회자들을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참 성도들은 오히려 그들을 존경한다. 그러니 열심히 잔머리 돌리며 정당한 비판에 대해 불평분자로 매도하거나 비틀지 말라. 지금 성도들이 정녕 비판하고 있는 것은 감히 거룩한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행세하며 무당질하고 있는 거짓 목사, 유사 목사, 귀족 목사, 그리고 사이비 목사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야말로 매주 백주에 양들을 약탈하고 있는 노상 강도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를 제사장으로 우상화하고 한낱 벽돌 덩어리를 성전이라고 기만하며 대형 건물에 명운을 걸던 많은 교회들은 마치 폐허가 된 로마의 카타콤 유적처럼 또 하나의 역사적 매장지가 되어 오히려 '강도의 무덤'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눅19:46)."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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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의견 2015-10-14 20:18:56
좋은의견입니다.
우물안에 있을땐 고것밖에 못보는법이죠.. 벗어나야 합니다.

과하다! 2015-10-13 11:45:17
시대가 악하고 지저분하여 이런 글이 좀 통하니 계속 나가네 ... 과유불급이라고 했소! 앞으로 더는 안되요! 새로운 것을 발굴하던지, 그냥 나타나지 마시든지 ... 과하네요!

신성남 2015-10-13 05:56:55
'짜증나서'님, 이글은 일부를 전부로 매도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저는 어떤 경우든 감히 '전부'라는 말을 한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성도와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크게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나 좋은 정치인이 많으니, 일부 나쁜 정치인들이 마구 날뛰어도 그냥 두자는 논리이십니까?

그리고 "극소수"라는 말은 쉽게 동의하기 힘들군요. 교회들이 이 지경이 되어서 한국교회가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회'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아직도 정말 극소수라고 그리 믿고 싶으십니까.

마지막으로, 이글은 부패한 직분자들을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실 이런 비판을 들어도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비판이 계속 필요한 이유는 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다수의 성도들을 위해서입니다. 주일마다 강단에서 기복설교와 듣기 좋은 말만 잔뜩 늘어놓는 교회들이 적지 않으니, 일부 성도들은 바른 판단을 위한 정보가 매우 부족한 상태이지요.

근자에 일부 목사님들께서 이젠 말로 해도 안 되고, 논리로 해도 자신들이 너무 잘못한지라, 딱히 반박할 명분조차 없으니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것이 "이젠 지겹다, 지루하다, 다 아는 비판 반복하지 말라" 등의 '물귀신 작전'입니다. 어찌하든 신도들의 입을 막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반복적 논리의 비판이 지겹다는 분들께서는 성경은 어떻게 읽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같은 논리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데요.

아무튼 앞으로 글을 쓰든 책을 쓰든 제가 결정할 일이겠지만, 제 글을 읽든 아니면 읽지 않고 통과하시든 그것 역시 현명하신 독자들의 몫입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부족한 글에 귀한 의견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짜증나서 2015-10-13 01:10:17
신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통쾌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합니다.
극소수 일부 목회자들의 전횡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지금도 낙도에서 무의촌과 다름 없는 지역에서 도시빈민들을 위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부 미꾸라지들의 일탈을 마치 전부인 걱처럼 호도하지는 마세요.
그럴듯한 비판 뒤에 숨겨진 종교엘리트주의와 교만이 엿보입니다.
물론 신선생의 글을 참 좋아합니다만, 이젠 그만 쓰시던지, 책으로 내서 그토록 비판하는 자들에게 보내 주시는 것이 더 나을 듯 합니다만...
그 비용은 모금을 해 보시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모일 것 입니다.
그 돈으로 이상한 행동 하시지 말고...ㅎㅎㅎ <농담이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