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월가 애널리스트의 인생 지혜
시각장애인 월가 애널리스트의 인생 지혜
  • 뉴스 M
  • 승인 2015.10.2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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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장애물 앞에서 재탐색할 수 있는 용기 필요"
   
▲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인생의 갈림길과 장애물 앞에서 돌아가는 길 대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던 신순규 씨가 책을 냈다. 도전과 재탐색의 인생길을 신앙과 의지로 살아온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는 삶을 살고 있다.

'보고도 보지 못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보고 있지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무수한 정보 속에서 살아가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가려낼 힘이 없는 많은 현대인을 가리키는 느낌이 든다.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지혜를 나눠줄 이야기가 필요한 시기라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21년째 미국 월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 재무분석사(CFA) 신순규 씨의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의 출간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없는 많은 경제 뉴스와 차트에 휘둘리지 않는 뛰어난 분석가로 알려진 그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의 80%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니 더욱 귀가 쏠린다.

"인생을 내비게이션에 비교하곤 한다. 내비게이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길을 잘못 들었으니 돌아가고 하고, 다른 하나는 재탐색해서 새로운 길을 알려준다. 제 인생은 재탐색하는 과정을 계속 밟아 온 것 같다."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신순규 지음 / 판미동 펴냄 / 228쪽 / 1만 2,800원

지난 10월 27일 서울 종로구 한 한식당에서 열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신순규 씨가 밝힌 인생관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인생의 갈림길과 장애물 앞에서 돌아가는 길 대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던 그가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로 책을 쓰는 일이었다.

점자 컴퓨터를 사용해 익숙한 영어 대신 우리말로 책을 써야 해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자서전으로 내용을 채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힘든 환경을 딛고 일어나 노력과 인내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다른 환경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생각과 가치관을 에세이처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역시 글을 쓰면서 느낀 재탐색의 결과다.

실제로 그가 이룬 성공이야말로 재탐색하고 굽히지 않는 마음으로 도전해 이룬 결과였다. 어려서부터 녹내장으로 시력이 약했기에 22번 이상의 수술을 감행했다. 하지만 결국 9살에 완전히 시력을 잃는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신순규 씨는 "예민하지 않았던 시기에 시력을 잃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마사가 되도록 두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의지였다.

15살 때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비장애인도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떠난 유학길이었다. 하지만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장애인 유학생이 겪은 현실의 높은 벽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신순규 씨의 인생 선택은 재탐색과 도전으로 가득 찬다.

"미국에 있는 시각장애인 음악학교에서 음악적 재능이 부족함을 절감한 뒤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겠다며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을 익히고, 11살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과 겨루려니 힘겨웠다. 그래서 다시 심리학 의사를 꿈꾸었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대학교수가 되고자 대학원에서 경영학 등을 공부했다. 지금은 투자은행에서 애널리스트 일을 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말이 쉬운 법, 그의 노력은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정도다. 하버드, 프린스턴, MIT, 펜실베니아 대학 등 아이비리그 장학생으로 입학 자격이 주어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중 하버드와 펜실베이아 대학에서는 합격생 중 최고에게 주어지는 '전국 장학생'(National Scholar)과 '벤저민 프랭클린 장학생'으로 뽑혔다.

이러한 도전과 재탐색은 안정적인 길에 들어선 중년이 넘어서도 계속된다. 자신이 세상에서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현재 시각장애와 난독증 학생들에게 녹음 교과서를 제작해 제공하는 러닝 앨라이(Learning Ally) 이사, 미국 유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한국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을 돕는 YANA(You Are Not Alone) 선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신순규 씨는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CFA 자격 취득자다. 장애인이기에 받아야 했던 많은 선입견을 이겨내고, 미국 월가에서 21년째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금융 기관들과 미국 재력가들이 투자고객으로 찾는다는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증권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YANA 선교회는 한국에도 재단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굳이 미국에 오지 않아도 한국에서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돕고 싶다. 미국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귀국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펀딩을 마쳤고,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과 함께하시는 마음을 잘 전달하는 단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신순규 씨가 인생길을 재탐색하면서 도전했던 일들은 어쩌면 불공평한 세상과 맞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불공평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불공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노벨상을 탄 분도 불공평을 주제로 연구해 상을 받았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나눔을 통해 불공평을 줄여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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