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나그네에게"
"나그네가 나그네에게"
  • 양재영
  • 승인 2015.11.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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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에 대한 편견을 벗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산하 ‘세계 선교와 복음주의 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CWME)에서 주최한 ‘다문화와 이민사역 세미나’(the Seminar on Multicultural and Migrant Ministries)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9일(월)부터 5일간 열렸다.

CWME주최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개신교와 정교회, 가톨릭을 망라해 선발된 25개 교회의 리더들이 참가한 에큐메니컬 세미나로 ‘다문화와 이민사역’의 세계적 변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개최됐다.

한인교회를 대표해 참가한 LA 한인타운 소재 갈보리믿음교회의 강진웅 목사와 나눈 세미나 소식을 소개한다.

   
▲ WCC 산하 CWME에서 주최한 ‘다문화와 이민사역 세미나’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9일(월)부터 5일간 열렸다. (사진:강진웅 목사 페이스북)

이번에 WCC 세미나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다.

WCC안에 CWME라는 위원회가 있다. WCC에서 세계선교를 위한 선교선언문을 발표했는데,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가 ‘다문화선교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사역의 현장에 있는 분들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에서 열렸다.

같은 교회 건물을 사용하는 미국교회 임마누엘장로교회의 임시담임이신 라파트 기리기스(Raafat Girgis) 목사께서 이번 세미나에 발제를 하게 됐는데, 준비위원으로 저를 초대하셨다.

WCC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신 분이 많은데....

WCC라는 틀 안에서 건전한 신앙과 신학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그렇지 못한 교회와 교단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제가 이번 초대에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신학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문화 상황에서 복음전도와 선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진행할 것인가?’라는 저의 관심사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서구사회에서 크게 대두되는 ‘이민, 난민, 다문화상황에서 선교와 복음주의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라는 실질적 과제를 함께 나눈 유익한 세미나였다.

이번이 첫 번째 세미나라고 들었다.

그렇다. CWME가 생긴 것은 오래됐지만, 세미나는 처음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WCC 본부에서 열렸는데, 참석한 나라가 캐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오셨다. 재미있는 건 이분들이 모두 이민자라는 것이다. 제가 미국에서 갔지만 미국사람이 아닌 것처럼, 이분들도 세계 각국에서 오신 다문화 출신들이었다.

저랑 같이 간 미국교회목사 역시 이집트 사람이었고, 캐나다에서 오신 분들도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이셨다. 진짜 본토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영국여성 한 명밖에 없었다. 모두 외국에서 사는 다문화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라 토론을 하면서 많은 신선한 도전을 받았다.

세미나가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한 시점과 비슷한 시기였다.

우리가 세미나 마치고 난 다음날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터졌다. 파리에서 비행기타고 올 때 경비가 삼엄했고, 분위기가 살벌했다.

어떻게 보면 WCC에서 가장 시급하게 보는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시리아에서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이런 다문화 상황의 갈등이 테러까지 이어지는 부정적 측면으로 표출됐다.

일부에선 이민자들이나 난민을 받지 말아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CWME는 이민자들과 타종교·타문화 사람들을 포용하고, 환대했다면, 그들을 나그네라 대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품어줬다면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타종교 선교에 대한 토론도 있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발제자들과 그룹토의가 있었다. 선교할 때 ‘개종’(conversion)보단 ‘대화’(conversation)와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면서 나아가자는 것이 주류였다. 개종만을 목적으로 접근하면 결국은 갈등구조로 가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손님이 우리집에 왔을 때 나그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보살펴주는 차원에서 공존과 교류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그네를 대접하고 대화하는 지점에서 끝나는 것은 제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기독교 선교의 정체성은 궁극적으로 ‘개종’이 이뤄지는 곳에서 완성된다. 열린 마음으로 타민족과 다문화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순서적으로 맞지만, ‘개종’을 제쳐놓자는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각자의 신이 있으므로 건드리지 말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적으로 접근하자는 건 전형적인 ‘다원주의’인데, 여기 오신 분 중에도 다원주의적 신학을 가진 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WCC 내의 종교다원주의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WCC 내에 다원주의가 절반 또는 그 이하라고 본다.

저도 풀러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 선교와 복음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개종’에 있다. ‘이슬람을 믿는다고? 그럼 접근하지 않겠다’는 관점은 선교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저는 이번 WCC 내에 반 이상이 ‘개종’까지 고려하는 선교를 목적으로 다문화 사역을 진행해야 된다고 본다.

   
▲ WCC 산하 WCME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가한 강진웅 목사(우측)와 라파트 기르기스 목사(사진:강진웅 목사 페이스북)

지금 사역하는 갈보리믿음교회도 미국교회 등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지 않나?

갈보리믿음교회는 미국교회와 이디오피아 교회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건물주인 임마누엘장로교회에 새로 오신 라파트 기리기스 목사는 미국장로교(PCUSA) 교단본부에서 14년 동안 다문화 사역을 하셨던 분으로, 이번에 지역교회를 살리기 위해 파송 받으셨다.

이분은 이전 목회자와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같이 기도하고, 대화하고, 협력하는 신앙적 차원에서의 협력관계를 제안하셨다. 연합예배, 청년친교, 지역사회 연합 봉사활동 등을 함께하는 구체안이 나눠지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 느낀 점을 한인교회에 적용한다면?

한인교회도 다문화 상황이다. 1세와 2세의 차이점에 대해 대화와 협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많은 교회들이 선교에 열심이다. 비행기 타고 외국에 가서 나라와 민족들에게 선교사를 파송하고, 물질들을 후원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서 문만 열면 만날 수 있는 타문화·다민족 속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사명을 감당할 필요도 있다. 선교사 보내놓고, 돈 보내주고, 기도하고, 가끔 한번씩 가서 보는 선교는 통전적이지 못하다.

다른 민족의 사람들과 잘 어울려 복음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것이 교회 사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에 있어 한인교회가 고쳐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가 우리들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지극 정성으로 대접했는데, 그런 태도는 ‘나도 나그네다’라는 의식과 영성에서 나온 것이다. ‘나도 집 떠나 서럽게 남의 땅에 와서 의지할 데 없는 신세로서 살고 있는데, 지금 새롭게 나그네로서 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라는 마음으로 초대해서 대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린 때때로 이민교회가 형성되고 고착화되면서 내 자신이 나그네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교회가 조직화되고 대형화하면서 마치 우리는 토착민으로서 왕국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자만심에 빠진다. 새로 이민 온 사람들, 젊은이들, 나그네와 난민들에 대한 동질감(compassion)이 사라졌다. ‘동질감’이 사라지면 ‘선교’도 사라진다.

배고픈 사람에게 떡과 돈을 던져주는 것은 선교가 아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결국은 동질감이다. 이민교회와 복음의 가장 생생한 활력은 이 동질감에 있다. 이를 위해서 내가 나그네라는 의식을 절대로 버려서는 안된다.

나는 여전히 나그네이고, 나그네로서 나그네에게 접근한다는 ‘성육신’과 ‘동질감’을 통해서 복음을 소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선교’이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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