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속삭임, "괜찮아"
악마의 속삭임, "괜찮아"
  • 김기대
  • 승인 2015.12.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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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세월호를 말하려다 묻어 버린 영화

2014년 음력 7월 15일, 불교 전설에 따르면 아귀(악령)에게도 하늘에서 선을 베푸는 날이라고 영화는 설명한다. 따라서 악령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이 날, 퇴마사 김범신 신부(김윤석 분)는 여고생 영신(박소담 분)의 몸에 들어온 악령을 잡으려는 퇴마 의식을 최준호 부제(강동원분)와 함께 진행한다. 이날 떴던 보름달은 '슈퍼문'이라고 불리는 달로 서양 점술사들도 슈퍼문과 관련된 갖가지 '비설'들을 쏟아냈다. 

음력 7월 15일은 양력으로 8월 10일, 바로 전 날인 9일에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집회가 열렸다. 그 여파로 시내 곳곳에는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고 명동 성당 후미진 곳 '정의 구현 사제단'에서는 신부들이 현수막을 만들고 있는데 '진실', '밝혀라' 등이 영화 속에서 얼핏 스쳐 지나간다. 8월 13일에 있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환영 현수막은 아니다. 국가적 행사를 위한 현수막을 이렇게 조악한 곳에서 만들리는 없다. 그들은 지금 뭔가 '비공식적'인 일을 꾀하고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 2014년)이 퇴마 영화의 전범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1973년)의 어설픈 베끼기라는 평론가들의 악평이 많은 것도 실은 이 영화에서 '세월호'를 놓쳤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은유했다고 해서 좋은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감독은 이 은유를 너무 깊이 숨겨두려고 은유를 과잉 사용했고 그 결과 영화는 산만해져 버렸다.

악령이 영신의 몸에 들어 왔다는 2014년 2월 10일을 세월호의 안전검사가 통과된 날과 연관시키면 지나친 비약이라고 지적 받을 수도 있겠으나 영화가 세월호를 말하고 있다고 느낀 내가 영화 관람 후 '세월호와 2월 10일'을 검색해 보니 '세월호 안전검사 통과'가 제일 먼저 떴다.  이날부터 거대한 악의 음모가 시작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국에서 12형상 악마 중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보고에 따라 퇴마 신부들의 모임인 장미 십자회 소속 신부 2명이 한국에 입국한다. 이들은 12형상 악마를 포획했지만 악마를 확실하게 없애기 위해 급하게 이동하던 중 여고생 영신을 치어 버린다. 악마의 제거가 더 시급하다고 느낀 두 신부는 뺑소니를 치는데 그들이 탄 차가 다른 차와 충돌하면서 숨을 거두고 결국 악령은 소녀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이 '교통사고'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거대한 악의 기획이었다. 그날의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때부터 한국 신부들이 부마자(악마의 숙주)가 되어버린 소녀 영신의 퇴마 사역을 이어 받으면서 악령과의 길고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는 내용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다. 줄거리로 치자면 전형적인 엑소시즘 영화의 틀 속에 있기 때문에 <엑소시스트>의 모작이라고 혹평 받아 마땅하다.  감독은 이런 비난을 고려한 듯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상징으로 2014(5)년 사회를 담아내려 한다.

 

맥거핀(?) - 새끼 돼지

맥거핀(MacGuffin)이란 영화 등의 줄거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이다. 영화 속 새끼 돼지는 영신의 몸에서 빼낸 악령이 자리잡게 될 새로운 숙주이기에  맥거핀은 아니다. 하지만 감독은 돼지를 맥거핀처럼 사용함으로써 예민한 관객들의 정신을 흩트려 놓는다.  악령 숙주를 삼기 위해 최부제가 다른 수사로부터 새끼 돼지를 넘겨 받을 때 돼지를 키우던 수사는 아무 것이나 먹이면 잘 토한다고 주의 사항을 준다. 그런데 영화 중반부에서 퇴마 사역에 함께 한 의사는 돼지에게 '아무 것'이나 먹인다. 그런데 영화 끝까지 돼지는 토하지 않는다.

단순 트릭인지 돼지 몸 속에 들어간 악령이 토해졌다는 영화 속편을 위한 설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트릭이었다면 맥거핀 아닌 것을 맥거핀처럼 사용한 감독의 예의 상실이다.

영화 속 돼지는 마가 복음 5장의 거라사 광인 이야기에 나오는 그 군대 귀신이다.  거라사 광인에게서 쫓겨난 악령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유대인들이 왜 돼지를 키웠을까? 당시 로마제국이 건설한 통상로였던 비아 마리스(Via Maris)를 오가던 상인들을 위해 돼지를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거라사 광인의 악령이 돼지 떼로 옮겨 감으로써 당시 유대인들의 천박한 '장사속'이 드러났다면 <검은 사제들>의 돼지는 '군대'에 방점이 찍힌 귀신처럼 보인다.

이는 나라의 정책이 군사작전 하듯이 돌아가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쿠데타냐 혁명이냐를 놓고 싸우고 어린이들에게 조차 병영체험을 시키는 '병영'국가처럼 되어가는 현실 말이다. 시민들을 IS라고 부르고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생각하는 군사정권 시절의 용어들이 등장하는 그런 현실이다.  비판의 소리를 옥죄고 모든 사상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상명하달의 군대와 같은 일이 2015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독은 돼지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 '새끼'돼지 였을까?  군대 귀신의 '새끼'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여성

엑소시즘 영화에서 악령은 주로 여성에게 기생한다. 여성의 나약한 이미지가 악령이 활동하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검은 사제들>에 나오는 악령은 남성에게 들어갔어야 하는데 잘못 들어간 존재다. 그래서 악령은 더 강력하게 활동한다. 영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악령의 소리는 '남성'과 '여성'을 반복해서 이야기 한다.  2월 10일 이후로 거대한 악의 기획을 담은 숙주가 된 영신이 그 상태를 벗어나려면 나약한 여성을 부마자 삼은 거대한 악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데 영화는 슬쩍 주제를 바꿔버리며 비겁한 결말을 내린다.

여성(영신)은 사제들을 가리켜 원숭이라고 비웃는다.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지 못하는 비겁한 '남성'들을 향한 질타다. 최준호 부제는 어릴 때 맹견에게 공격 당해 결국 목숨을 잃고 만 누이 동생을 두고 도망간 트라우마에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퇴마 예식에서 큰 역할을 한다. 김신부는 동물들은 자기보다 큰 존재에게는 덤비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권력자 보다 더 큰 존재가 되라고 일깨우는 듯 하다.   

세상을 비웃는 영신 속의 악령을 언제까지 두려워 할 것인가라고 영화는 묻고 있다.

 

신부님 저는 괜찮아요

퇴마 의식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영신이 힘들어 하자 최부제는 돌변해 김신부를 공격한다. 거대한 악과 싸우는 순간 최부제의 마음 속에서 두 명(동생과 영신)의 여자 아이를 죽일 수 없다는 온정이 꿈틀거린 것이다. 영신에게 있던 악령이 최부제에게 옮겨 갔다고 관객들이 추측을 막 시작할 때 최부제는 제 정신을 차린다. 거대한 악과 싸울 때 악의 전체성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고 그릇된 판단을 하는 어리석음도 악령에 씌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감독은 보여준다. 그래서 김신부는 최부제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도 야비할 정도로 냉소한다.  

악마의 얼굴로 변했던 영신이 착하디 착한 소녀의 얼굴로 돌아와 "신부님 저는 이제 괜찮아요, 다 나았어요"라고 이야기 할 때 김신부도 잠시 흔들렸었다.  이 아이를 죽여야 하는가?  거대한 악의 기획을 바로 잡는 방법이 이것 밖에 없나를 번민하던 김신부는 냉정하게 퇴마 예식을 진행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1-3)

 

사람들이 괜찮다(평안하다 안전하다) 고 할 때가 멸망이 닥칠 때다. 악마는 이 점을 노린다.  옆에서 수 백 명이 수장을 당해도,  노동자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져도 지금 나에게 당장 해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괜찮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악마의 속삭임이다.

김신부는 악마의 '괜찮다'에 속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길은 험한 길이다. 그래서 김 신부는 최부제에게 “이 길을 걷는다면 잠도 편히 못 자고 매일 술을 마셔야 할 거야”라고 경고한다.  '괜찮게 보이는 것'을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일이 종교인의 사명일 터 '괜찮지 않은 현실'을 앞장 서서 '괜찮다'라고 우기고 있는 지금의 종교인들의 머리 속에는 어떤 군대 귀신이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나약한 여고생으로 변장한 악령을 소멸시켰다. 마가복음 9장에서 자신들은 귀신을 내쫓는데 왜 실패했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기도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대답했던 예수의 말처럼 시대의 거대한 악의 기획과 맞서는 방법은 이런 퇴마의식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일까?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다.

김기대 목사 / 평화의 교회

이번 회로 영화 코너는 끝이 납니다. 그 동안 애정을 가지고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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