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부엌서 봉사하다 '시험'든 이야기
교회 부엌서 봉사하다 '시험'든 이야기
  • 김은정
  • 승인 2009.10.21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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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아들이 엄마의 유쾌한 신앙일기] '무서운 봉사'

은혜 받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받은 은혜가 너무 벅차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어떻게든 되갚아 보려고 내가 서둘러 해본 것이 봉사였는데, 그때 나는 받은 은혜를 가만히 묵상하는 것이 차라리 나에게도 남에게도 더 유익했다는 것을 몰랐었다. 

누가 미리 찔러 알려 줬더라면 가만히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남이 가르쳐주면 피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 겪어야 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나보다.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봉사가 부엌일이었는데, 그때 나는 교회에서 '시험'이라는 말을 처음 이해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툭하면 쓰는 말이 '시험'이라는 단어였는데, 나는 그때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해야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나보다 그랬다.

처음으로 다니던 교회 부엌에서 밥 당번인데 토요일 날 나오지도 않거나 어려운 일은 다 빼 먹었으면서 주일 날 밥 담을 때만 생색을 내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시험'에 들었다. 여름에 에어컨도 잘 안 되는 개척 교회 부엌에서, 나더러는 뜨거운 김이 솟아나는 밥을 퍼 담으라 하고 자기는 시원한 반찬 담으면서 '밥 하느라 고생 많아요~' 소리를 듣고 있는 어떤 집사님 때문에도 시험 들었었다.

정말 교회에는 얄미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보다 어린 자매한테 너는 교회를 20년도 넘게 다녔다면서 '고것'밖에 안 되냐고 혼쭐을 내며 울리기도 했다. 예쁘게 생긴 자매가 앞에서 폼 나게 찬양 인도만 했지 밥 당번은 안 하려고 해서 '저건 아니다' 싶어 뒤에서 열심히 그 자매를 욕했던 기억도 난다.

처음으로 봉사해보는 교회에서 나는 주일예배도 포기해가면서 인간적인 열심을 부리다 '시험'이라는 말만 배웠다. 내가 받았던 은혜가 그렇게 금방 바닥이 나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던 부엌 일이 누구에게도 덕이 되지 못했음을 다음 은혜를 받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 후 미국 교회에서 <Having a Mary Heart in a Martha World(마르다의 세상에서 마리아로 살아가기)>라는 책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할 때였다. 마르다가 예수님더러 자기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 마리아에 대한 불평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Martha, Martha, you’re upset about so many things. Only one thing is needed"(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너무 여러 가지 것 때문에 맘이 상하는구나. 꼭 한 가지만 필요할 뿐인데 말이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정말 필요한 것인데, 하나님과의 일대일 만남이 정말 내가 필요했던 것인데 나는 마르다처럼 주변 일에 바빠서, 나를 도와주지 않는 마리아만 얄미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봉사는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려 했던 행위였을 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와의 일대일 만남이었다. 그때 내게 필요 했던 것은 부엌에서 밥 잘 지어서 교회에 생색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의 더 깊은 만남, 예배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신앙생활 7년 차가 되는 나는 이제 봉사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의 주목 없이 혼자서 묵묵히 하는 일에는 힘이 딸리고 은혜가 딸려서 잘할 자신이 없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니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봉사가 아니라 혼자 으쓱한 기분이 들까 꺼려진다. 지금은 내 아이들이 어리고 풀타임 직장이 있는데다 남편 섬기는 것도 잘 못하니 일단 가정부터 잘 꾸리는 게 옳겠다는 생각에 큰일을 안 맡으려고 몸을 사리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역자들 봉사자들을 볼 때마다 맘이 찔린다. 아무도 뭐라 안하는데, 물어 보지도 않으시는데 사역자들을 보면 뜬금없이 "에고 제가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요. 제가 애들을 잘 못 보거든요. 살림도 잘 못하는데다…. 집도 너무 멀고…" 나는 우리 조아나 아들이를 주일날 돌봐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늘 빚진 마음을 갖는다.

그런데 이 미안한 마음 때문에 섣불리 시간적으로 육체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일을 무책임하게 맡을까봐 함부로 봉사에 나서지도 못하겠다. 현재 나는 우리 교회의 영어예배부에서 몇 사람과 돌아가며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말 예배를 빠져가며 이 봉사를 하자니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허전해다. 그래서 수업 시간을 짧게 하고 설교 말씀이라도 듣겠다고 늦게나마 주일예배에 들어간다.

자기 것은 하나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한다는 흉잡히는 것 같아(아무도 그런 말 하는 사람 없는데) 그때마다 찔리지만, 주일예배를 빼먹어 가며 하는 봉사는 나에게도 교회 사람에게도 덕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과 경험 때문이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예배도 없이, 그때라도 받아먹는 영의 양식이 없이는 일주일 동안 나의 인간성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교회에 아빠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남편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담당 사역자에게, 걱정 마시라고 우리 남편이 할 거라고 교회에 미안했던 마음에 남편을 그냥 팔았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집에 가는 차 속에서 만만한 남편한테, 당신은 애들도 잘 보니 교회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봉사 좀 하라고 닦달을 했다.

시큰둥해 하는 남편에게 너는 교회에 미안하지도 않냐 화를 버럭 내다가, 순간 참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사람한테 봉사를 해야 한다 하고 있는지, 나한테 그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를 못 하고 있는 나의 죄책감을 우리 남편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다니. 역시 내가 교회를 섬기기 전에 먼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은 이렇게 늘 옳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옳지 않은 생각과 판단으로 최선을 다해 보았자 옳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것을 모르고 최선을 다하지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바닥만 날 뿐이다.

나는 내가 봉사하러 나설 만큼 은혜가 충전 되어 있는가를 점검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은혜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섣불리 나서지 않으려고 꾹 참는다. 머리만을 굴려 생각을 할 때 내게는 '아주 좋은 생각'들이 많이 떠오른다. 당장에는 다 교회를 위한 좋은 생각인 것 같지만 정말로 교회에 덕이 되는 일인지를 길게 생각해보면 아닌 일인 것 같아서 나는 또 그 생각을 접는다.

나는 우리가 완전하지 못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자니 가진 '달란트'를 그대로 땅에 묻었던 게으른 종이 나구나 싶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다. 돈 받고 가르치는 학교에서도 능력 있는 선생에, 집에서는 두 어린 아이들의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는 자상한 엄마에, 남편을 잘 섬기는 좋은 아내에, 남의 어려움을 돌봐 주는 친절한 이웃에, 거기다 책임감이 확실한 매주일의 봉사자까지. 내가 이 모든 걸 어떻게 다 만족시키랴 싶다. 시간이 딸리고 능력이 딸린다. 그래서 그 모든 것 위에 주님과의 시간을 두련다.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잘 되지 않을까…. 아직 잘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김은정 씨는 일명  '라면 강사'다. 끓이기 쉽고 맛있는 라면처럼, 배우기도 쉽고 알차게 써먹을 수 있는 생활영어를 <미주뉴스앤조이>와 <코넷> 등에 연재해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때 연재한 글을 모아 <굿바이 영어 울렁증>,  <굿바이 영어 더듬증>,  <긴꼬리 영어 학습법> 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예수 믿는 재미'를 나눠볼 요량이다. <미주뉴스앤조이>는 김은정 씨가 신앙생활하면서 맛본 은혜와 갈등을 솔직히 '까발리는' 신앙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현재 달라스중앙연합감리교회에 출석하는 김은정 씨는 U.T. Arlington에서 ESL 강사로 있으며 Texas Wesleyan University 심리학과 교수인 남편과 이름이 '아들'인 아들 그리고 딸 조아와 Fort Worth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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