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낫의 아들 삼갈, 아낫을 무너뜨리다
아낫의 아들 삼갈, 아낫을 무너뜨리다
  • 김동문
  • 승인 2016.01.12 00: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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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천천히 읽기

"에훗 다음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가 되었다.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만으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쳐죽여 이스라엘을 구하였다."(사사기 3:31)>

그림 언어,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이들이 다 공감하였을 어떤 그림 언어가 있다. 그것이 때로는 어떤 이미지 일수도 있고, 어떤 단어나 이름일 수도 있다.

위의 아주 짧은 표현에는 묘한 느낌이 담겨있다. 그것은 이렇다. 해양 민족인 블레셋 사람들은 지중해를 건너와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해안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이들도 종교적으로 동화되었다. 가나안 땅의 바알과 아세라 여신 등을 그들의 주요 신으로 수용한 것이다.

모든 신들은 형상을 갖고 있었다. 이미지 없는, 형상 없는 신은 없었다. 바알은 때로 '소'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여신 아스다롯은 아낫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들의 이야기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아낫)은 부부관계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림 언어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를 모는 막대기'이다. 고대 이스라엘 지역에서 소는 흔하지 않았다. 어쩌면 소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마치 오늘날 멧돼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도시 사람들이 있는 것 마냥, 그 시대는 소가 보기드문 존재엿다. 이유는, 소를 목축하는 지역이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산지에서는 벳세메스 같은 지역, 북쪽에서는 단과 같은 지역이 대표적이다. '소를 모는 막대기'는 바을을 희화한 한 표현이다.

다음이 '아낫의 아들 삼갈'이라는 표현이다. 앞에서 말햇듯이, 아낫은 가나안 여신의 이름이다. 그 당시에는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서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삼갈의 아버지의 이름은 아낫이 아니었다. 그런데 삼갈을 '아낫'의 아들이라 부르고 있다. “가나안 여신 아낫”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다. 삼갈 스스로 그 이름을 붙인 것 같지는 않다.

위의 짧은 문장은, 아낫의 아들 삼갈이, 소를 모는 막대기로, 아낫 여신과 바알 신의 추종자들에게 심판을 가하였다는 것이다. 삼갈을 묘사하고 있는 아낫과 소(바알)는 블레셋을 지키는 신들의 이미지 언어였기 때문이다. 이 그림 언어가 블레셋을 무찌르고 있다. 이것만큼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묘사는 없는 것 같다.

소 모는 막대기, 목동의 막대기로 그 시대의 최첨단 도구인 철기로 무장한 블레렛 군대와 사람들을 무찌르는 장면, 무협지나 활극에서도 보기드문 장면을 오늘 본문을 마주하면서 떠올려본다.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마음껏 조롱하는, 삼갈의 협극을 바라본다. '올바른' 성경 교육으로, '진실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야할 것 같다.

김동문 목사, 인터서브 코리아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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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2016-01-15 00:27:11
성서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지만 김동문 목사님의 글은 1)"중동의 눈"이라는 제목과 어떻게 그 내용이 결을 함께 하는지 의문입니다. 개념 정의 부터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인용 좀 해 주세요. 많은 부분 목사님의 생각이 아닌 듯 한데 인용과 주장을 구별해 주시는 센스가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