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셔도 괜찮다 가르치자
술 마셔도 괜찮다 가르치자
  • 조경윤
  • 승인 2016.01.16 16:43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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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윤 목사 ⓒ <뉴스 M>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하늘의 크기를 자신이 속해 있는 우물 사이즈로 밖에 알 수 없다. 크고, 넓고, 광대한 하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우물로 옮겨지게 되면 비로소 더 넓고 큰 하늘을 인식하게 된다. 자신이 속해 있는 우물의 사이즈가 커졌기 때문이다. 우물의 사이즈가 커지면 커질수록 하늘의 크기도 비례하여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고집하며 가지고 있던 작고 편협한 우물을 벗어나서 광대하시고, 광활하신 크신 하나님을 인식해야 한다. 선교사들의 우민정책 속에서 발전한 한국교회의 철학은 편협하고, 협소하기 짝이 없다. 나와 다른 생각과 의견을 피력하면 비판하고 정죄하면서 얼마나 많은 교파와 분파로 나뉘어 졌는가?  이제는 흑과 백의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모든 색들을 무지개 빛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성도가 술을 마시면 죄악시한다. 문제아,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는다. 심지어는 마귀 새끼로 취급하기도 한다. 성령충만하지 못하고, 악령으로 충만해서 술 마시고 방탕한다고 한다. 과연 술 마시면 죄가 되는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에만 있는 한국형 율법주의이다. 한국교회에서만 죄가 되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죄가 되도록 일부러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더 큰 하늘을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개혁함으로 편협하고 협소한 우물을 계속해서 넓혀 나가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는 장로님이시다. 한국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술을 마시는 자에게는 장로로 안수를 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금주, 금연을 확실하게 서약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께서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외교 무대에서 와인도 마시고, 삼페인도 마셨다. 한국교회는 이명박 장로님에게 중한 징계를 해야 하지 않는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한국교회 장로의 위상을 떨어뜨린 것 아닌가? 우리는 21세기 오늘날에  있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 미국을 국빈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께서 오바바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는 모습
   
▲ 멕시코를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께서 국빈만찬에서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는 모습

신앙의 근본이 되시고 모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마셨다는 사실을 아는가? 예수님께서도 술을 마셨다. 성찬을 거행하시면서 자신의 피를 기념하라 말씀하시며 포도주를 가리켜 이것은 참 된 음료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셔서 이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 7:34, 마 11:19) 종교 개혁가인 칼빈을 비롯해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예수님께서도 꺼리낌없이 먹고 마셨다고 해석하고 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의문을 가지자 예수님께서는 혼인집에서는 신랑과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셨고, 금식은 이때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혼인예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음식과 술이다. 이것이 떨어지면 안 된다. 성도의 신랑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이적으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큰 일이 나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교회에서 처럼 술 마시는 것이 죄가 된다면 예수님께서도 죄인이요, 예수님은 혼인집에 온 축하객들이 더 죄를 짓도록 원인을 제공해 주는 자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더불어 함께 기뻐해 주셨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더불어서 먹고 마시지 않는데 어떻게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죄인들이 포도주 잔을 건낼 때, 나는 너희와는 달라. 너희처럼 죄 짓지 않아. 이런 저급한 술은 마실 수 없어 했다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열 두 명의 제자들도 술을 마셨고, 종교 개혁가인 루터도 술을 마셨다. 1517년 이전에는 개신교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카톨릭의 변질과 타락으로 개신교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개신교의 뿌리는 카톨릭 교회이다. 카톨릭 교회는 성찬식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별히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에 실제로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화 된다고 믿는 <화체설>을 신학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성찬식 때 사용하고 남은 포도주를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예수님의 실제 피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사제의 몫이다. 카톨릭 교회의 신부들은 주량이 쌔지 못하면 사제로써 직무를 감당하기 힘들다. 많은 신부들의 코가 빨간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터 역시 카톨릭 교회의 사제로써 성찬을 집례했고, 포도주를 마셨다. 만일 한국교회처럼 술 마시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면 종교개혁을 하면서 이를 시정했을 것이다. 그가 주장한 95개 조항을 읽어 보라. 거의 대부분이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과 교황권의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고 있을 뿐 단 한 개의 조항에서도 술 마시지 말라고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 12 제자들, 종교개혁 이전의 카톨릭 교회, 마틴 루터 뿐만 아니라 한 때는 해가 지지 않는 세계 최강의 나라로 세계선교를 감당했던 영국교회도, 그 바톤을 이어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도록 그토록 헌신, 충성했던 미국교회도 술을 마셨다. 그리고 지금도 마시고 있다. 미국교회의 주방에서 와인 잔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주일 날 예배 후에 예배당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이었던 디모데에게 병치료를 위해서 포도주를 권했다. 술은 음료로써, 의료적인 목적으로써 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고기를 부드럽고 연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각종 소스를 만드는 데도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수구 보수 꼴통에 가까운 어떤 목사님께서는 술을 한 잔 마시면 한 잔 만큼 취하는 것이고, 두 잔 마시면 그만큼 취하는 것이기에 술은 절대로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억지 논리를 편다. 이분이 고기를 좋아하거나 일본요리를 즐겨 먹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술을 엄청 많이 마신 것이 된다. 웃기는 이야기이지 않는가? 수준 이하의 억지 반응이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초기에는 술과 담배를 허용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화여고 자리에 위치한 강 정승댁에서 1년에 몇 차례씩 사경회를 개최하였는데, 하루 종일 이루어지는 성경공부였기에 4번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 때에 술과 담배가 제공되었다. 그런데 한국인의 절제하지 못하는 성품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기 직전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이 술독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모습을 보고 금주, 금연 운동을 전개했고, 이로 인해서 생긴 돈을 독립자금으로 지원했다. <옥한흠 목사의 로마서 강해 45회, 술과 담배 중에서 참조>

1991년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에서는 신앙생활 지침서를 만들어서 금주와 금연을 가르쳤다. 지침서 속에는 7대 강령으로 예배출석 철저, 주일성서, 부모에게 효도, 일부일처, 가족전도, 근면성실, 금주와 금연을 강조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것을 암송해야 했다. 이만큼 금주와 금연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1914년 12월 26일 황해노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자는 절대로 장로로 세우지 않겠다는 원칙을 공표하였는데 이것이 전통이 되어 한국교회에서는 담배와 술을 허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강조되다 보니까 술 마시면 죄가 되는 것이고, 마귀새끼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옥한흠 목사의 로마서 강해 45회, 술과 담배 중에서 참조>

술을 마시는 것이 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아디아포라>의 문제이다. 이는 보통 윤리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어떤 사실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고 상황과 목적에 따라서 다르게 설명되 수 있는 문제를 지칭하여 사용된다. 신학에서 <아디라포라>할 때 그것은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하라 혹은 하지말라는 규정이 없고 선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문제들을 가리킨다.

특히 시대의 변화가 빠르고 각 시대간의 문화적 갈등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 이같은 아디아포라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자칫 교회 안에서 독선과 독단, 분쟁과 분열이 난무할 위험이 매우 크다. 과거 한국 초대교회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요청되었던 금주의 문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오늘날에 있어서는 새롭게 이해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금주를 강조하는 논거는 한 마디로 덕이 되지 않고,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시험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 춘향이 식으로 갖다 맞춘 논리이다. 초대교회, 카톨릭교회, 영국교회, 미국교회에서는 술 마시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교회에서 금주를 율법처럼 올무로 놓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올바르게 가르치고 제대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절제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마시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사실 입은 삐뚤어 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오늘날 평신도들이 술 한 잔 하는 것이 덕이 되지 않는가? 대형교회 목사들이 대형사고를 치는 것이 덕이 되지 않는가? 목사가 66억 원을 도박으로 탕진했다. 110억 원을 횡령하여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은퇴금으로 200억 원을 받았다. 논문을 표절해 놓고서도 만일 표절한 것이 사실이라면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겠다고 문서로 서명까지 해 놓고서도 뻔뻔하게 자리를 고수하며 수 천 억 원의 야망과 야심의 건축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사기치면서 강행하는 것이 덕이 되는가? 몇 년 동안 여러 명의 여자 성도들을 성추행하고 유사 성행위를 강요한 목사가 전별금 13억 원은 작은 돈이라고 말하며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버젓이 목회를 하는 것이 덕이 되는가? 교단과 총회는 이런 목회자들을 징계하지 못하고 있다. 징계 안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덕이 되지 않는가? 나는 성도들이 술 한 잔 한 것을 가지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비판하고 달려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목회자들이 부정, 불법을 저질렀을 때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몇 달이 지나도 비판하고, 교회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다.

유대인들은 248개의 하라와 365개의 하지 말라는 총 613개의 조항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겠다고 하는 의지는 좋으나 율법주의는 오히려 죽이는 일이 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안식일에는 형광등 불도 키고 끄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모든 층에서 자동으로 열리게 하여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형광등 스위치를 손대지 않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만지지 않았다고 해서 좋아하시겠는가? 기뻐서 덩실 덩실 춤을 추시겠는가? 생각해 보라. 웃기는 일이지 않는가? 한국교회에서 술 마시는 문제를 지금처럼 취급하는 것 자체가 이런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로 성도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올무라고 생각지 않는가?

바리새인들은 서서 따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블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며 하늘을 우러러서 자신들의 의로움을 자랑하듯이 기도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성도들이 술 마시는 자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김 집사가 술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대, 어머, 어머, 어머… 박 집사는 아직도 술을 끊지 못했다나봐. 무슨 집사가 그래 잡사아니야….> 한국교회는 이런 바리새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율법은 선한 것이나 율법주의는 안 된다.

술 마시는 것과 술 취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술 마시는 것을 허용한다고 해도 술 취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안 된다. 이 둘은 엄격하게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하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엡 5:18).

음식을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고 식탐을 범하는 것은 죄이다. 잠을 자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하여 게으른 것은 죄이다. 술도 마찬가지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결혼식에서 함께 기뻐할 수도 있고 친구들과도 사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고 술에 취하는 것은 죄이다. 절제하지 못하고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과음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술 마시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아는 술을 마시고 실수를 범한 대표적인 예이다. 벌거벗고 잠을 자서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하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렇게 마시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절제 속에서 이루어지면 아무 문제없다.

한국 횟집 스시바에서 일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중에는 믿은지 얼마 안 되는 분들도 계셨고, 교회를 다닌지는 오래 되었지만 신앙심이 깊지 않은 분들도 계셨다. 그러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정말로 신실하고 믿음이 좋게 여겨졌던 평신도 리더분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탁월한 평신도 지도자로 여겨졌던 분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볼 때 배신감 마져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직장에서의 회식 자리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삼성이나 LG, 현대 같은 대기업에서 회식을 하면 보통 5번에서 많게는 8-10번 정도의 구호를 외치면서 건배를 한다. 자기들만의 자부심, 회사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집단적인 문화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같이 한 잔 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퇴근 후, 직장 동료들이 가끔씩 모여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나누면서 회포를 푸는 일이 아름답지 않은가? 서민적이고, 소박하고, 소탈하지 않은가?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던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함께 마시고 같이 먹으면서 친구가 되어 주셨다. 나는 교회 다니기 때문에 술은 절대로 마시지 못 해 하면서 동료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바리새인처럼 여겨진다고 생각한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 하는데 믿지 않는 동료들이 교회의 모습을 볼 때, 상식에도 맞지 않고, 모순 투성이라면, 교회 다니는 자들이 일반 세상 사람들 보다도 못하고 부정, 불법, 탈법, 편법에 익숙한 자들이라면 이상한 괴물로 취급받지 않겠는가? 여성도와 간음하고, 성추행을 일쌈고, 잘못도 뉘우치지 않고, 수 백 억 원을 횡령하면서 감히 술 마신다고 우리를 죄인, 범죄자 취급을 해,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이지 않는가? 비웃고, 콧방귀를 낄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도 이제는 술 마시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건 생활에 지장이 되지 않고, 거룩함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절제 할 수 있다면 술 한 잔 마시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물론 사람마다 주량의 차이는 있겠지만 술 취하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예수님 처럼 우리도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술 마셔도 괜찮다고 가르치자. 절제의 열매 속에서 술 마시는 것은 좋은 음식이 될 수 있고 또 좋은 음료가 될 수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몸에도 좋을 수 있다.

술은 그 자체가 선하고 악한 것이 아니다. 잘 사용하면 좋은 것이고 잘못 사용하면 나쁜 것이다. 편협하고, 협소한 바리새인과 같은 우물을 가감하게 깨어 버리고 예수님 처럼 자유하며 진리 안에서 참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세상에 덕을 세우고, 연약한 성도들이 시험에 드는 것을 걱정하려면 술 마시는 것 대신에 각종 비리와 부정, 부패에 얼룩진 불법 목회자와 타락한 지도자를 심판하고 엄단하는 것에 더 철저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제발 술 마셔도 괜찮다고 가르치자. 제대로 가르치자. 한국형 율법주의는 깨뜨려 버리자. 올무를 걷어 버리자. 예수 좀 제대로 믿어보자. 예수 좀 잘 믿어 보자.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혼인예식에 기쁨이 더욱 넘치도록 역사해 주셨다. 술 마셔도 괜찮다.

스시 만드는 목사 조경윤 <생명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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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2016-01-19 11:04:54
술은 조금 먹으면 활력소가 되죠. 금기시되는 것들보다 더 중요한 악이 도사리고 있죠. 그런걸 간과하고 이런것들만 때리면 안되죠. 그렇게 이해합니다. 교조주의로 착한척하면서 남을 해친다든지 억압한다든지. 오도한다든지.

술공화국 2016-01-18 22:32:48
술 못 마시게해서 시험드는 성도들을 위해 술을 마시게하자?
신앙인에게는 세상에서나 교회안에서 덕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집사나 장로가 술마시고 얼굴 뻘게져 있다면 덕이 되겠는가?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이나 별반 다를바없이 세상것을 즐기고
마시고 취한다면 신앙인의 모습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술 자체가 나쁜것은 아니겠지만 필자께서는 술이라는 음료가
가장 조절하기 곤란한 세속의 연결 고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밤이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불야성을 이루는 한국 도심의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는 술거리를 보고도 우리 신앙인들도
그 속에 섞여서 술을 마시자고 주장할것인가?
교회와 목회자들의 부패하고 썩었으므로 더이상 술을 금기시 해야할
필요가 없다라는 발상 자체는 더 큰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술 공화국이란 속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로서 교회도 교인들도
술 공화국 일원으로서의 술과 함께하자 뭐 이런건가??

.. 2016-01-20 09:40:22
글쓴이 교회의 교인들이 불쌍합니다.
술마시는 목사, 술마시는 장로, 술마시는 권사, 술마시는 집사가 출석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어떻게 할까요?
교회 개혁을 위해 술도 마셔야 합니까?
이런 글을 올리도록 하는 뉴스M이나 이런 글 올리면서 목회한다는 글쓴이나. . .

한 마디 2016-01-22 14:43:54
한 때, 루터는 로마카톨릭을 상대로 나는 한국교회를 상대로 개혁을 준비했다. 그 당시 전도하면 술 담배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풍토였다.얼마나 억울한가. 구원과는 상관 없는, 다만 건덕상의 문제를 왜 교회출석을 부담스럽게 만드나. 그래서 교회를 개척하여 친교실을, 술을 마실 수 있도록 그리고 담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계도 해 보았고 구체적인 교회 모습을 그려 놓았다. 그러다가 어느 집회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 그 동안 교육전도사로서, 성가대 지휘자로서, 청년부 담당자로서 일말의 양심적인 부담을 가지고 있긴 했으나 그래도 개혁의 정신은 드 높았다. 그런데 은헤를 받고 난 이후 나의 개혁의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제법 주량이나 거의 니코틴 중독에 가까운 흡연에 찌든 몸과 마음도 은혜 받은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동안 객기를 부린 것으로 결론내렸다. 난 그 이후 이런 류의 글을 보면 그때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감히 그리고 단언컨데 이런 류의 글을 쓰는 이는 은혜를 받지 못한 자가 객기를 부리는 수준이라 말하고 싶다. 위대한 신앙인들의 예를 들지 마라. 그리고 은혜를 구하라. 은혜는 구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 아닌가. 은혜가 임하면 이런 글은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한 마디 2016-01-22 14:46:16
한 때, 루터는 로마카톨릭을 상대로 나는 한국교회를 상대로 개혁을 준비했다. 그 당시 전도하면 술 담배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풍토였다.얼마나 억울한가. 구원과는 상관 없는, 다만 건덕상의 문제를 왜 교회출석을 부담스럽게 만드나. 그래서 교회를 개척하여 친교실을, 술을 마실 수 있도록 그리고 담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계도 해 보았고 구체적인 교회 모습을 그려 놓았다. 그러다가 어느 집회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 그 동안 교육전도사로서, 성가대 지휘자로서, 청년부 담당자로서 일말의 양심적인 부담을 가지고 있긴 했으나 그래도 개혁의 정신은 드 높았다. 그런데 은헤를 받고 난 이후 나의 개혁의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제법 주량이나 거의 니코틴 중독에 가까운 흡연에 찌든 몸과 마음도 은혜 받은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동안 객기를 부린 것으로 결론내렸다. 난 그 이후 이런 류의 글을 보면 그때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감히 그리고 단언컨데 이런 류의 글을 쓰는 이는 은혜를 받지 못한 자가 객기를 부리는 수준이라 말하고 싶다. 위대한 신앙인들의 예를 들지 마라. 그리고 은혜를 구하라. 은혜는 구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 아닌가. 은혜가 임하면 이런 글은 쓸 수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