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데 교회는 문을 엽니까?
눈이 오는데 교회는 문을 엽니까?
  • 이계선
  • 승인 2016.02.04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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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로 문이 닫힌 교회를 뒤로하고 찍은 사진

“세계적인 폭설이 뉴욕에도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파킹한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시내버스도 안다닙니다. 오늘이 마침 일요일인데 교회는 예배를 드리나요?”

미국교회 다닌지 5년동안 주일날 천재지변을 당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교회는 문을 닫습니다. 학교 우체국 영화관처럼 기상이변이나 재난이 생길 경우 안전사고예방을 위해 문을 닫으라는 정부시책을 따르니까요”

교회 안가도 된다니? 공짜휴가를 얻은 기분이다. 그런데 마음이 찝찝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품을 팔러 다닐 때였다. 라디오도 없던 1950년대 농촌에 순회영화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조조할인(早朝割引) 동시상영(同時上映)까지 우려먹고 난 낡은 영화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설극장을 차렸다. 광목으로 울타리를 치고 영사기를 돌렸다. 필름 긁어대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인기가 대단한 농촌문화축제였다.

그날이 하필 수요일 밤 이었다. 난 동내교회로 가다가 초등학교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주연배우 조미령의 얼굴이 아른거려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 한번만 봐주세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년에 한두번 내려오는 영화상영이 하필 수요일밤이라 어쩔수 없습니다’

가설극장으로 달려가는데 중간에서 김윤수영수님을 만났다. 수요예배를 드리러 우리동내에 있는 교회로 오는 중이었다. 이북에서 피난온 영수님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나의 담임선생님이셨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성질이 급했다. “빨리빨리”를 “날래날래”로 불렀다. 그래서 날래선생이다. 호랑이 선생님답게 예수도 잘 믿었다. 그런데 그런분을 여기서 만나다니?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처럼 피할길이 없었다.

“어? 날래선생님 어디 가십니까?”

“수요일 밤이라 교회가지. 자네도 어딜가는 모양이군. 어서 늦지 않게 빨리 가봐”

인사를 뒷전으로 흘리며 내 달렸다. 드디어 극장표를 사는데 가슴이 마구 떨렸다. 날래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수요일밤 예배를 내동댕이치고 세상영화 보러 가는 걸 뻔히 아실텐데? 왜 선생님은 책망을 안 하시고 모른체 하실까? 궁금하고 무서웠다.

폭군네로의 박해로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불에 타죽고 있었다. 수제자 베드로는 죽는게 무서워 도망쳐나오다가 예수를 만난다. 난 불타는 로마를 버리고 도망치던 베드로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꼴이 됐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드 로마!”(로마로 간다. 네가 버린 십자가 다시 지려고 난 로마로 들어간다)

충격을 받은 베드로는 그길로 로마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

난 극장표를 던져버리고 동내교회를 향해 달렸다. 예배는 반 이상이 지나갔지만 아슬아슬하게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그이후로 단 한번도 교회예배를 빠져본적이 없다.

목사가 된후에는 더 했다. 목회 40년 동안 주일예배 주일밤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를 걸른적이 없다. 신기하게도 그 흔한 감기몸살도 그 시간만은 안 걸렸다.

그런데 미국교회 나가면서 최초로 주일예배를 결석하게 된 것이다. 합법적(?)이라지만 꺼림칙하다. 옥에 묻은 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를 나섰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걸어서 교회에 가봐야 겠소. 어차피 주일마다 걸어서 교회다녔으니 오늘도 운동삼아 다녀오리다”

차가 다니는 길은 제설차가 밀고 다녀 길이 나 있었다. 어쩌다 차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인도(人道)는 무릎높이로 눈이 쌓여 막혀있었다. 차길을 빌려 걸었다. 눈이 녹다가 얼어붙은 길은 빙판이 되어 넘어질뻔 아찔했다.

“조심하세요. 노인이 빙판에 넘어지면 병신됩니다”

눈을 치우던 미국인들이 걱정해준다. 파킨슨병으로 수족이 느리고 피곤한 나는 눈길이 힘들다. 던킨집에 들려 커피와 도너츠를 사들고 나왔다. 교회에 도착해보니 입구와 주차장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러나 정문도 후문도 잠겨있다. 교회올적마다 10분명상을 즐기는 교회 뒤뜰로 걸어갔다. 잔디정원이 흰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었다. 교회는 문이 닫혀 들어갈수 없지만 눈 덮인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고 온 던킨커피를 마시면서 명상에 들어갔다. 어디서 겨울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프라노 이규도의 목소리로...

“조그만 산길에 흰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 들때 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메이고 싶소/

외로운 겨울새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길을 잊어버리오”

이때 흰눈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려고 하자 아내의 손이 내눈을 감쌌다.

“몸도성치 않은 당신이 미끄러운 눈길을 걷다가 넘어져 사고가 날까봐 걱정돼서 뒤따라 쫓아왔어요”

“하하하, 난 이현자 소녀가 눈싸움 하자고 예까지 달려온줄 알았지”

70이 넘은 우리는 꼬마시절의 눈사람처럼 웃었다.

오늘 교회 나가니 활기가 넘친다. 오랜만에 만난 연인들처럼 얼싸안고 반가워한다. 찬송을 부르는데 어찌나 목소리가 크게 나오는지 앞사람에게 미안했다. 후렴을 부를때는 눈물이 하도 흘러서 옆사람에게 주책스러워 보여 송구스럽다. 스톤여사와 시몬이 부르는 이중창“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찾아”는 목이 메이게 한다. 소프라노 스톤이 부른 편곡“저 높은곳을 향하여”는 더 기가 막히도록 아름답다.

“여러분, 지난주일 예배를 못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지난주일 몫까지 더해 모든게 더불이 됐습니다. 물론 헌금도 더불로 내주셔야 해요”

마리아 윌리암스여자목사의 익살에 모두가 웃는다. 난 뒷주머니를 뒤져 갑절헌금을 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아내가 말한다.

“한국교회는 지난주 폭설에도 일사각오로 교회마다 예배를 드렸데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예배를 쉬는 미국교회신앙이 엉터리만은 아닌것 같아요”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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