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꾼 뺨치는 종교인들
정치꾼 뺨치는 종교인들
  • 신성남
  • 승인 2016.03.02 11:1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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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정치', 더 속이는 '종교'
   
▲ 신성남 집사 © <뉴스 M>

병신년 벽두부터 중국 증시가 심하게 폭락을 했다. 그 바람에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연동하여 침체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비력이 너무 급감하여 내수 경기가 거의 고사 직전이다.

그동안 부자들이 돈을 너무 박박 긁어가서 전세계 서민들은 주머니가 거덜나 도무지 소비를 더 하고 싶어도 더 할 여력이 없다. 속된 말로 "먹고 죽을 약"도 못 살 형편이다. 그래서 돈이 안 돈다. 부자는 돈을 굴릴 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 안 쓰고, 서민은 쓸 돈이 없어 못 쓴다. 따라서 물건이 잘 팔리고, 공장이 잘 돌아갈 리가 없다. 당연히 일자리는 더욱 감소한다. 

경제 위기의 근원은 '부자의 욕심'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툭하면 금리가 어쩌고, 환율이 어쩌고, 주가가 어쩌고, 부채가 어쩌고, 그리고 원유값이 저쩌고 장황하게 떠들고 있지만 그거 다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현재의 경제 구조에서는 성장률을 제 아무리 높혀 봐야 크고 탐실한 열매의 대부분은 소수의 부자들이 챙겨가고, 다수의 서민들은 여전히 손가락이나 빨 정도가 되는 것이 빤하다. 그저 언 발에 오줌 누기란 얘기다. 

서민들이 게을러서 못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고물가 저임금 구조하에서는 최소한의 생계에도 벅차다. 그나마 빚을 안 지면 다행이다. 게다가 임시직이 너무 많아 장래 또한 불투명하다.  

자본주의는 부자가 돈을 버는 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제 구조이다. 돈이 돈을 번다. 그래서 부자는 블랙홀과 같다. 하지만 거기에 빨려 들어간 돈은 대부분 자기들 덩치만 키우지 경제 활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경제가 나빠질수록 부자들은 돈을 움켜쥐고 투자하지 않는다. 불경기에 열심히 투자를 해 봐야 본전도 뽑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수의 부자들이 소비를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반면에 서민들에게 들어간 돈은 그 즉시 모두 소비에 직결된다. 그들에게는 써도써도 부족한 게 돈이다. 그래서 마침내 돈이 돌고, 물건이 팔리고, 기업이 살고, 그리고 시장이 활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최근 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주의적 양극화가 세계 경제를 초토화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이 분야에서 선두 그룹에 있다. 대충 상위 20%의 부자들이 전체 소득의 70% 이상을 가져간다. 그러니 중산층이 제대로 남아날 리가 없다. 결국 인간 욕심의 문제라는 거다. 그래서 이런 태생적 분배 구조는 단순히 기술적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부자들이 스스로 국가에 거액의 세금을 더 부담하며 파격적으로 '부의 재분배'에 앞장 서지 않는 한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구국적 각오로 직접 나서야 하는데, 부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많은 정치인들이 이를 선듯 지지할 리가 없다. 북유럽의 일부 복지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이런 과업에 성공한 나라가 극히 드문 이유이다. 

물론 한국교회도 양국화 해소에 별로 앞장서지 않는다. 아니 교회는 사회보다 도리어 더 심하게 양극화된 상태이다. 상위 20%의 대형 교회가 전체 교인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아울러 귀족 목사들은 오히려 틈만 나면 신도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한다. 그리고 그게 복받은 인생의 증표라고 떠벌인다. 

'사드'의 실효성 

이런 절박한 시점에 북한은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하여 동북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자 일부 인사들은 발빠르게 아직 그 성능조차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천문학적 액수의 '미국 고고도 요격 체계 사드(THAAD)' 방공시스템을 배치하겠다고 난리를 쳐 중국과의 마찰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그거 몇 포대 설치했다고 해도 유사시 적의 탄도탄을 몇 퍼센트나 요격할 수 있을지 기술적으로 지극히 의심스럽다. 사드는 제법 훌륭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드는 북한 미사일 방어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대중국 감시 레이더로서의 기능이 더 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북한은 사드의 방어 고도 아래로 공격하는 중장거리 미사일들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자칫하면 괜히 중국에게 원거리 공격의 빌미만 주고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른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병신춤을 춘 것 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정치판은 별로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일제강점기인 아비 때부터 대대로 기득권의 단맛을 누리던 친일 세력과 그 추종자들은 도리어 툭하면 적반하장식 '종북 몰이'를 하며 자신들의 부끄러운 치부와 부른 배를 시대착오적 이념 논쟁으로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패악을 볼 때마다 다음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들의 아비들은 내 양을 지키는 개만큼도 못한 자들이다(욥30:1)." 

도대체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거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거나, 또는 "정치 좀 바르게 해서 고생하는 서민들 좀 잘 섬기라"고 요구하면 그게 왜 종북 발언인가. 그게 북한하고 무슨 상관인가. 자기들 입맛에 조금이라도 틀린 말을 하면 일단 무조건 종북으로 매도한다. 

이자들이 원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노예다. 자신들은 '영주'이고 백성들은 '농노'나 하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과거에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는 더러운 말이 나왔을까. 백성은 눈물이 마를 날 없이 울고 있는데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정치는 수시로 표류하고 있다. 

'국민 기만'과 '교인 기만' 

최근의 정치 행태를 가만히 보면 국민은 안중에 없고 그저 정권을 잡기 위한 닭싸움으로 보인다. 사실상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대국민 사찰'을 가능케 하는 '테러방지법'이 그 중에 하나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필요시 국정원은 핸드폰과 메일과 사생활을 직접 감시하고 사찰할 수 있다는 말인데, 과연 그동안 국정원이 국민에게 깊은 신뢰를 주었는지 먼저 묻고 싶다. 도청, 댓글 조작, 서류 조작, 여론 조작, 간첩 조작, 그리고 불법 선거운동 등이 누구의 작품이었나. 국정원을'걱정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테러방지법은 국가기관이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제한할 수 있는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고, 때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무고한 시민을 해치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법이다. 한 야당 의원이 "테러방지법이면 대선 총선 다 조작 가능하다"고 한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아니면 이참에 이왕이면 '경제위기방지법', '민생파탄방지법', '국민기만방지법', '소화불량방지법', '가난방지법', '실연방지법', '고독방지법', '자살방지법', 그리고 '불행방지법'도 함께 만들지 그러나. 법이면 다 되는가. 엉큼한 속셈으로 법 핑계대지 말라는 얘기이다. 국민들은 결코 감시 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북한군을 전방에서 밀어내 후진 배치시켰던 개성공단은 심지어 서해해전 당시 교전 중에도 건재했던 공단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한 성급한 폐쇄 결정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입맛에 맞게 남북관계를 본격적인 대결구도로 가자는 서투른 자충수일 뿐이다. 아마 그 근시안적인 무모성에 대해서는 후일 역사가 분명히 심판해 줄 것이다.

   
▲ 세상 정치판에서도 결단코 용납되지 않을 엄청난 비리들이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성직'으로 은폐되거나 보호받으며 수시로 무마된다. 그 결과 요즘은 종교인이 정치인보다 훨씬 더 교활하다. 도대체 양심이라고는 개뿔만큼도 없는 작자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시국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일부 대형 교회의 '귀족 목사'들은 금년에도 여전히 밥그릇 챙기기와 교권 남용에 몰두하고 있다. 

자신을 반대하는 당회원들과 제직들을 무더기로 제명한 한 대형 교회의 표절 목사는 당회 장악을 위해 잽싸게 신규 당회원을 임명하려고 하다가 법원의 제지로 죽을 쓰고 있고, 유명한 성추행 목사는 과거사 지우기 작업에 열을 내고 있다. 게다가 한국교회 우민화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어느 복타령 목사는 교회 돈을 무려 800억 원이나 삼킨 혐의로 뒤늦게 수사를 받고 있다. 

세상 정치판에서도 결단코 용납되지 않을 엄청난 비리들이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성직'으로 은폐되거나 보호 받으며 수시로 무마된 덕분이다. 그 결과 요즘은 종교인이 정치인보다 훨씬 더 교활하다. 도대체 양심이라고는 개뿔만큼도 없는 작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직업 목사들의 권익을 위한 노동조합으로 타락한 교단의 노회들은 패거리로 작당하고 비리 목사들의 거수기가 되어 세상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그러니 이런 목사들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장바닥 잡배도 이런 밥배들은 드물 것이다. 이들이 전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볶음'일 뿐이다. 따라서 교인이 우연히 줄고 있는 게 아니다. 

"무지, 무능, 그리고 무책임" 

작금의 세상살이를 대충 훑어 보았다. 지금 서민들이 너무 힘들다.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특히 저소득층 1000만 명은 이젠 단순히 '생계'가 아니라, '생존'을 심각하게 염려해야 할 형편이다. 

그런데 나라를 말아먹거나 교회를 더럽히는 데에 앞장 선 '연놈'들이 너무 많다. 정치계, 경제계, 법조계, 교육계, 문화계, 그리고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시원한 구석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렇게 무능하고 맹랑한 군상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속이 터질 지경이다.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기는 사회와 교회를 성직자에게만 맡기는 종교는 희망이 없다. 그러느니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 낫다. 국민이 방관하는 정치와 교인이 방관하는 종교는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단순히 교회 속에서만 거룩하게 사는 '종교인'이 아니라, 먼저 세상 속에서 소금이 되는 '신앙인'이어야 옳다. 

근자에 한 젊은 코미디언에게 "당신은 코미디나 하지 왜 자꾸 정치 발언을 하느냐?"고 누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매우 분개하며 이렇게 답했다. "정치가 하도 코미디를 하니, 코미디가 정치에 나서는 것 아니냐"고. 교회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하도 개판을 치니, 동네 바둑이라도 나서야 할 판인 것이다. 

세상이 말세가 되니 목회로 개판치고, 설교로 개판치고, 표절로 개판치고, 학력으로 개판치고, 안수로 개판치고, 성추행으로 개판치고, 교권으로 개판치고, 돈으로 개판치고, 권력으로 개판치고, 언론으로 개판치고, 그리고 정치로 개판치는 자들이 갈수록 더 위세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 교회 부패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건 매우 인위적인 문제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장난을 쳐서 구조적으로 만든 문제다. 그들은 한국교회 '비리의 창고'에 자동문을 달았다. 그래서 목사만 접근하면 저절로 열어 준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 문짝을 고치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다. 저들 또한 그저 덧없이 흘러가는 불쌍한 인생일 뿐이다. 성경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고 했다. 결국에는 진리가 이긴다. 때가 되면 '악인의 빛'은 반드시 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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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13:06:58
이 시대의 사진에 나온 이런 자들이 모두 종교기술자들로서 참으로 암흑 같은 세상에 더욱더 어둡게 하는 자들입니다.

바른 말 2016-03-04 00:52:08
흠.. 이 기사도 잘 썻군요. 그런데 정이철 목사가 김성로 목사를 운운한 것은 완전 틀린거니 .. 앞으론 정이철의 글을 조심하시고 신하자들의 검증을 받은 후에나 오릴지 말지를 결정 하십시오

이광택 2016-03-03 09:55:12
이 나라의 크리스쳔은 대다수가 정치에 관해서는 침묵으로 말하고 기도로 위안을 받습니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식이 아니면 그 뜻도 가치도 드러낼 수 없으며 이 사회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면서도 대부분의 목사들은 정종 분리 원칙을 앞세워 방관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나서지 않기를 바라는 분위가 입니다 결국 평신도가 깨우쳐 일어나야 되는데 언제나 그리 될 수 있을지요

크로버 2016-03-03 09:25:21
이 나라의 크리스쳔은 대다수 침묵으로 말하고 기도로 위안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행동하는 양식이 아니면 그 가치가 아무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는데 목사들은 오늘의 안위 본인의 배만 부르면 되지 귀찮은 일에는 정종 분리를 외치며 방관하며 본인뿐만이 아니라 교인들도 그런 일에 나서지 말고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합니다 작금의 교회는 힘없는 행동 없는 보신주의 크리스챤을 양성하는 양성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평신도가 깨우쳐 일어나야 되는데 현재로선 그저 막막합니다

맑은샘 2016-03-03 01:10:03
구구절절 다 옳은 지적입니다. 집사님 글을 읽으면 언제나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수 있어서 좋습니다^^. 비록 앞이 보이지않는 칠흑같은 어둠속을 헤메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집사님같은 분들이 있어서 희망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이 시대를 깨우는 글을 올려주시기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