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과 소망의 분기점에서'
'탄식과 소망의 분기점에서'
  • 허현
  • 승인 2016.05.08 0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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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미국가톨릭대학에서 열린 서밋 컨퍼런스(사진:소저너 홈페이지)

작년 6월 17-20일,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가톨릭대학(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서밋(The Summit) 컨퍼런스가 열렸다. 소저너(Sojourners)의 주관으로 북미 뿐만 아니라 중동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온 정의와 평화 사역에 관계된 350명의 리더들이 <신앙과 정의를 통한 세상의 변화>라는 주제 아래 모였다.

첫날 저녁 기조강연에서 짐 월리스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적은 절망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작은 변화를 일구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내 소망을 가져야 하는 근거로 사람들에게 보이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궁극적 소망이 되신다는 것을 마음에 다시 새기자”라고 설파했다. 그날 밤엔 미주리州 퍼거슨市에서 온 흑인 인권운동가들도 참석해 환영을 받았고, 레드아이로 시작된 긴 하루의 피곤함도 소망의 축제 속에 묻혔다.

다음 날 아침 사우스캐롤라이나州 찰스톤市에서 일어난 참사 소식과 함께 눈을 떴다. 전날 밤 짐 월리스가 탄식과 소망을 이야기 하고 있을 바로 그 시간에, 우리가 소망을 가져야 할 증거라는 그 사람들, 평화의 왕 예수를 따르는 이들 중 아홉명이 쓰러졌다. 우리는 다시 탄식의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절망 보다 깊은 한숨으로 무너지는 흑인 형제 자매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소망의 눈도 흐려졌다.

그러나, “증오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로 서로를 격려하며, 주제 패널과 세미나 시간 뿐만 아니라 식사 및 휴식 시간에도 함께 앉아 건설적인 길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 기간 고난을 감내해 온 흑인들의 저력을 볼 수 있었다. 흑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비폭력 저항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같은 아시안들이 미국 땅에서 누리고 있는 인권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교회는 심각한 사회적 자폐증을 앓고있다"

예언자는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먼저 보고 알려주는 파수꾼과 길잡이 같은 이들이다. 지나간 역사나 앞으로 올 미래 속에서 "오늘"로 가려진 우리의 눈을 열어 살아남게 할 그 무엇인가를 먼저 본 이들이며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서 오는 핍박을 감내하며 말하는 자들이다. 이 미국 땅에 사는 흑인들이 그러한 예언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찰스턴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용서와, Mother Emanuel AME 교회의 성숙한 제자도, 그리고 추도식에서 선포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의 옷을 입은 설교는 교회가 세상에 어떻게 탄식과 소망을 담지한 예언자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교회사 속에 오래도록 회자되어야 할 예언자의 모습이었다.

총기문제와 인종차별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미국 사회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월터 브루그만은 “미국에 인종차별(racism)보다 더 심각한 불의는 없다”고 역설했다.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법 제정을 외치는 목소리들도 많았지만, 미국총기협회(NRA)와 무기상들의 로비, 국회의원들의 타협을 통해 법안이 상정되질 못했었다. 작년 말에는 총기문제의 해법으로 리버티 대학의 제리 폴웰 주니어 총장이 대학에서 총기를 소지하게 해야 한다는 설교를 하고, 미국의 여러 주에서 그러한 법을 상정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말같지 않은 뉴스가 보도되었다. 세계 최강선진국이라는 말이 우스울 지경이다.

교회는 세상에 대해 예언자의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모임이다. 세상이 맛보지 못한 하나님 나라를 선취(foretaste)한 탓에 곱씹은 탄식과 소망을 삶으로 쏟아내는 이들이다.

그러나 한인이민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 거주하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과 총기규제는 남의 집 일이 아닌 바로 우리 한국인과 후손들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대다수의 한인교회는 침묵하고 있다. 퍼거슨市나, 찰스톤市라는 말이 귀에 생소하다면, 어쩌면 당신과 당신의 교회는 심각한 사회적 자폐증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브루그만은 계속해서 외친다.

“교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 어떻게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교회로 모였을 때 어떻게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변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한 달 뒤면 Sojourner’s Summit 2016이 시작된다. 작년 짐 월리스의 말대로 예언자 예레미아가 부른 애가의 핵심이 3장 22-23절에 나오는 소망의 노래임을 다시 기억하며, 예언자 직무에 신실한 한인교회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한다. 또한 지구촌 안에 어느 때 보다도 타문화권으로의 이주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인종간, 문화간 화해를 위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교육과 훈련이 한인교회 안에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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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2016-05-09 22:04:5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기사에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한 달 뒤면 Sojourner’s Summit 2016이 시작된다"는 말보다는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물론 독자가 구글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기본적인 정보는 기사에 포함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