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스시맨으로 살다 (2)
목사, 스시맨으로 살다 (2)
  • 조경윤
  • 승인 2016.05.08 02:3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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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 뜨기(1)

“형님! 이게 그렇게 안 됩니까? 엔삐라(광어의 지느러미) 날려먹으면 어떻합니까? XX.” 

보통 일식집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내가 잡은 생선을 집어 던지면서 육두문자에 욕을 날리던 10년 연하의 중간 기술자가 내게 한 말이다. 횟집에서는 한 주에 300에서 500파운드씩 광어를 소비하기 때문에 광어 한 두마리 쯤 집어 던져도 주인은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다. 

엔삐라는 광어 지느러미로 가장 식감이 좋고 맛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제일 조금 나오는 부위이다. 횟집에서는 이 부분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 사시미 오더 자체에 엔삐라 1세트가 들어가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부위이다. 이것을 날려 먹었으니 화가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다. 미치고 팔짝 뛸 기분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일에 있어서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던 스시맨이었기에 욕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잘 잡고 싶은데 못잡는 나는 더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회를 뜨기 전 광어 (사진 제공 조경윤 목사)
광어회  (사진 제공 조경윤 목사)

나는 손 기술이 없다. 손에 감각이 탁월하지 못하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광어 잡는 법을 배웠던 스페니쉬 아이에 비하면 10배, 20배의 노력을 더 해야 했다. 손에 기술이 있고, 감각이 좋았던 과테말라 아이는 20마리쯤 잡으니까, 제법 광어를 잡기 시작했다. 한국 횟집의 주말 저녁은 거의 전쟁 수준이다. 

네 명 또는 다섯 명이 스시바에서 거의 기계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파트의 일을 컨베이션 밸트가 돌아가듯이 해 낸다. 미리 잡아서 2-3시간 동안 숙성시켰던 광어가 다 떨어지면 바로 잡아서 바로 썰어 주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광어를 잡아서 넘겨 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쉴 틈없이 썰어서 손님 상에 내 보내는 것이다. 이 때에 써 먹기 위해서 가르쳐 놓았던 스페니쉬 아이가 나 보다 훨씬 더 광어를 잘 잡았다. 당연히 나는 내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광어는 잡기 어려운 생선 중의 하나이다. 세밀하고 세심한 기술이 익혀져야 생선살을 날려 먹지 않고 뼈를 타고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어를 잡을 수 있으면 다른 생선들은 금세 잡을 수 있다. 나는 광어 한 마리를 제대로 잡기 위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나의 경우는 200마리, 300마리쯤 잡으니까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이 때에도 엔삐라를 온전히 살리지는 못했다. 

수없이 욕먹고, 멸시, 천대, 온갖 수모를 다 당했다. 나를 내 보내기 위해서 핫타임의 시간이 핵폭탄급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스시바 헬퍼 스페니쉬 아이의 일을 내게 주었다. 온갖 뒷 일, 잡일을 다 도맡아 해야 했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서 광어를 마스터하고, 연어를 마스터하고, 블랙피시를 마스터 하고, 고등어, 방어, 농어, 참치… 등등의 거의 모든 생선을 다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잡은 활어를 꼭 성도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열망 하나 때문이었다.

목사는 보통 대접 받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식당에 가도 계산은 장로님들이 감당하실 때가 많다. 목사와 장로가 식당에 2번 같이 간다면 내 상식으로는 한 번씩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경우 목사는 당연한 것으로 대접받고, 섬김을 받는다. 나는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도들을 섬기고 싶어서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선을 잡는 법을 배웠다. 1년에 한 번 정도 활어회로 성도들을 섬기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일이다. 그 어떤 목사가 활어를 직접 잡아서 성도들을 대접할까?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유투브를 살펴보면 광어 잡는 동영상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올라와 있다. 나는 낮에는 횟집에서 실제로 잡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매일 같이 20-40마리씩 보았고, 한가한 시간에는 광어 뼈다귀와 껍질을 갖고 수없이 연습했고, 퇴근 후에 집에 와서는 동영상을 수 천 번은 더 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출근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바보, 병신, 쪼다, 똘아이 취급을 받으면서 견디고 인내해야 했다. 

스시바에서는 실력이 곧 서열이고, 실력이 곧 돈이다. 나이가 어려도 실력이 있으면 실장도 되고, 돈도 많이 받는다. 팁도 실력 기준으로 나눠 갖는다. 나는 스페니쉬 아이가 받는 돈과 똑같이 받았다. 생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주급을 낮춰서 횟집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연어 한 마리가 보통 60-100불 정도 하고 광어 한 마리가 20-40불 정도 하는데 일반적인 일본식당에서는 적은 양의 생선을 사용해 생선을 배우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필렛을 하기 전의 연어 (사진 제공 조경윤 목사)
필렛을 한 훈의 연어 (사진 제공 조경윤 목사)

 

진정한 스시맨이 되기 위해선 생선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스시맨이 생선을 잡지 못하면 스시맨이 아닌 것이다. 김밥만 만들면 단순한 일꾼일 뿐이지 스시맨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생선을 배운다는 것이 쉽지 않다. 보통 일본 식당에서는 생선을 많이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료비가 비싼 생선을 초보자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주지 않는다. 살이 연한 생선을 잡을 때, 각도가 조금만 잘못 되어도 사시미나 니기리 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 좋은 부분을 롤감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용납해 줄 주인은 많지 않다.

진짜 스시맨이 되기 위해서 횟집을 한 번 경험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횟집은 그만큼 생선을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보통의 일본 식당에서 무갱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는 무의 양이 한 주에 3-7개 정도라면 횟집에서는 10 박스를 사용한다. 게임이 되지 않는다. 횟집에 취직하여 15시간, 16시간씩 일을 했다. 야간일만 하면 12시간만 하면 되었지만 생선은 보통 아침 일찍 잡기 때문에 생선을 배우기 위해선 일찍 출근해야 했다. 또한 모두가 퇴근한 이후에 야간에 들어온 오더는 나 혼자 뽑아야 하기 때문에 생선을 썰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어서 직장을 옮길 때까지 야간 일을 도맡아 했다.

$300불 짜리 사시미상, 활어회상을 뽑아 내는 것은 내게는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을 채우는 일과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가능하게 하셨다. 생선은 원없이 썰어 보았다. 활어회도 원없이 떠 보았다. 육질이 쫄깃한 활어를 얇고 넓게 밑에 깐 무갱이 하얗게 보이도록 썰기 위해선 칼을 잡은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기술이 탁월하지 못했던 나는 무리하게 힘이 들어간 결과로 오른손 손가락 중, 네 번째 손가락이 병신이 되었다. 트릭커 핑거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관절에 있는 도르레 같은 것에 염증이 생겨서 다른 손가락에 비해서 2초, 3초 뒤에 움직인다. 통증도 엄청 심하게 따라온다. 이런 병이 생기도록 원없이 생선을 잡고, 썰고, 떠 보았다. 

모듬 사시미 (사진 제공 조경윤 목사)
광어 활어회 (사진 제공 조경윤 목사)

광어를 수 천 마리를 넘게 잡았다. 정확하게 카운트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조금 과장을 하면 만 마리 정도는 잡지 않았을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엔삐라를 날려 먹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잡아진다. 나를 가르쳐 주었던 실장님의 말처럼 “조 형! 많이 잡는 것이 장땡이야, 시간이 해결해 줘, 조급해 하지 말고, 지금 이대로처럼 열심히 하면 될꺼야, OK?” 시간이 흘르고 손에 감각과 기술이 익혀지자 이제는 나도 어떤 도마든지 상관없이 왠만한 칼이면 칼의 종류에도 구분없이 광어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처음에는 늘 사용하던 도마에서 늘 사용햇던 익숙한 칼이 아니면 잡을 수 없었는데 말이다.

스시맨의 종류를 크게 나누면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롤만 만들 수 있는 자이다. 김밥만 만드는 것이다. 일명 롤맨이다. 둘째는 롤도 만들면서 생선을 어느 정도 조금 다룰 수 있는 자이다. 사시미도 썰고, 스시(니기리)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큰 오더는 뽑아낼 수 없다. 기껏해야 기본적인 사시미와 스시 정도이다. 셋째는 여기에 생선을 직접 잡을 수 있는 자이다. 생선을 잡을 수 있으면 사시미와 스시(니기리)는 기본적으로 할 수 있다. 그만큼 생선을 많이 만져 봤다는 것이다. 넷째는 각종 소스와 스끼다시를 뽑아 낼 수 있는 자이다. 스시바에서 손님을 상대하려면 총알이 있어야 한다. 접대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스끼다시와 소스는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무기인 것이다.

나는 롤맨이었다. 중간 기술자로써 2번째 단계까지는 갔지만 생선을 직접 잡을 수 있는 실력은 못되었다. 이민교회 부교역자로 섬기면서 교회에서 받는 사례로는 렌트비 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형님께서 스시 가게를 운영하는 인연으로 생계를 위해서 스시를 배우게 되었다. 목사였기에 생활에 보탬이 되면 되었지 내가 뭐 스시맨 할건가 하면서 깊은 기술은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적성에도 이 일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25년 전 처음 미국에 와서 3개월 동안 웨이터로 일을 했던 적이 있다. 7천 불을 번 후, 이 돈으로 중고차도 구입하고, 은행 어카운트도 트고(이 때에는 최소 체킹과 세이빙에 1,000불 이상 발란스가 있어야 계좌를 만들수 있었다) 자동차 보험료도 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직장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다시는 식당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그 일을 끝까지 하게 하셨다. 이것을 깨달은 이후 나는 내 자신이 ‘스시 만드는 목사’라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 안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나를 깍고 다듬으셨다.

더욱이 스시나 만드는 목사가 아니라 스시도 만들고, 스페설 롤도 만들고, 사시미도 뜨고, 니기리도 잡고, 찬양도 인도하고, 말씀도 선포하고, 성찬식, 결혼식, 장례식도 집례하는 목사가 된 것이 감사하다. 스시나 만드는 목사가 아니라 스시도 만드는 목사가 된 것이다. 교회로부터 일체의 사례를 받지 않는다. 사례비에 대한 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내가 섬기는 교회는 목회자들에게 주어야 할 사례비로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한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교회가 인건비에 얽매이지 않고 사명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스시는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 때, 그 때마다 나의 실력과 수준에 가장 잘 맞는 작업장으로 인도해 주셨고, 최적화된 환경 속에서 최상의 선생님들을 붙여 주셨다. 마치 속도 제한이 전혀 없는 고속도로에서 200마일, 300마일의 속도로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모셨던 IKE 선생님은 천운이었다.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해도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나는 돈을 주고 배운 것이 아니라 뉴욕과 뉴저지에 있는 모든 스시맨 중에서 거의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마음껏 배울 수 있었다. 사진도 수 백 장 찍었고, 주방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살필 수 있었고, 동영상도 마음껏 찍었다. 더욱이 궁금한 것은 꼼꼼히 물어 볼 수도 있었다. 

3주 동안은 선생님 식당에 가서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고, 3달 간은 선생님께서 내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식당에 한 주에 이틀씩 오셔서  돌보아 주셨다. 토로, 스페니시 마커엘, 일본 고등어 등을 비롯해서 고급 생선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한국 일식집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생선들이었다. 또한 일본 전통식의 특별한 소스들을 배울 수 있었다. 행운이었고 특별한 섭리였다.

생선을 잡는 일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진짜 스시맨이 되고 싶었다. 하나님의 뜻이 이곳에 있음을 깨닫게 되자 더욱 좋은 스시맨이 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서 일을 배웠다. 하루 하루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배우고 익혔다. 내게 큰 핫타임을 주었던 스시맨이 조형님이 다시 횟집에 와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자가 나를 아쉬워 하고 필요로 하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조경윤 목사 (<뉴스 M> 자료 사진)

믿음으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힘과 지혜와 인내를 주셨다. 참고 견디면서 몸에 익숙해 지도록 도와 주셨다. 자그마한 스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 나는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야 집에 돌아오지만 참으로 보람되고, 의미있고, 감사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해서 하루 종일 말씀도 듣고, 찬양도 듣고, 시사 교양 인문학 강의도 듣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면서 일과를 보낸다. 삶이 예배이고, 일이 곧 예배인 것이다. 일 하면서 예배하고, 예배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나를 부르신 곳, 인도하신 곳에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선을 통해서 나를 깍고 다듬고 연단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번 여름에는 최고로 신선하고 좋은 생선들로 성도님들을 섬기고 대접하려 한다. 큰 기쁨이고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내가 가장 하기 싫어했고, 잘 하지 못했던 일을 통해서 나를 죽이고 거듭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기쁨과 정성과 사랑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손님들을 섬길 때에 맛있게 먹고 행복해 하는 모습에 감사한다. 땀흘려 열심히 일함으로 수고한 분복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한다. 지나고 보니 모두가 다 감사한 일 뿐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조경윤 목사 / 스시 만드는 목사, 생명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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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2016-09-16 17:20:09
음... 개척교회 목사님들중 주중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교회 시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말 힘드실것 같더라구요.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시니...
힘내세요.^^

다니엘 2016-05-12 22:37:28
세습 재벌교회 김창인 그리고 아들 김성관
역시 실망시키지않고 교회헌금 으로 낸 돈 25억이나 통체로 먹을려다 목에걸렸네요
다늙어서 살 날도 얼마남지않았을텐데 하나님나라 통과하는 바늘구멍 에 25억 이 들어갈수 있을려나 세상에 공개 됬으니 해명이나 할려는지
조경윤 목사님 과 비교하면 잘못된건가 목사님 열심이
목사님 나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기좋읍니다

어휴 2016-05-12 20:29:52
어찌하면 감동을 먹나요? 성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