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초의 해방신학자 ‘라스까사스’
남미 최초의 해방신학자 ‘라스까사스’
  • 양재영
  • 승인 2016.05.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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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제자학교 최남용 박사의 강의 정리

정의평화제자학교의 ‘역사 읽기를 통한 피스메이킹(Peacemaking Through Stories of Others)’ 네번째 세미나인 <라스까사스를 통해 조명하는 남미 역사와 선교의 어제와 오늘> 강연이 이스트 위티어 크리스천 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강의는 미국의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에서 ‘라스까사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남용 박사의 강의로 진행됐다.

라스까사스는 16세기에 스페인에서 라틴아메리카로 이주해 토착민들을 위한, 토착민들에 의한 신학과 실천을 살아 낸 인물로 후에 구스타보 구띠에레스 및 다른 해방신학자들에 의해 남미 최초의 해방신학자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 박사는 라스까사스를 정통적, 복음적 기독교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신학자이자 ‘인디언들의 사도’로 알려진 실천가라고 정의하고 있다.

16세기 가톨릭교회 소속의 라스까사스(Bartolome de Las Casas, 1484-1566)의 남미선교를 살펴본 최남용 박사의 강의를 소개함으로 21세기 한국교회 선교의 모습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두 문명의 만남과 충돌”

최남용 박사(사진제공:정의평화제자학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15세기 말, 그리고 16세기에 스페인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치적, 경제적, 또 종교적 부흥기를 맞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 (divine mandate)을 이루기 위해 스페인에게 신대륙을 발견케 하셨다”는 콜럼버스의 보고서는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향후 40년 동안 수천, 수만의 젊은 선교사들이 앞을 다투어 신대륙으로 향한다. 특히 프란시스코 수도사들은 ‘하나님께서 스페인을 통해 신대륙에서 당신의 나라를 이땅에 (Heaven on earth) 그리고 성령시대를 여실 것이다’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선교는 결국 그 정복자들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서 군림하는 “힘의 선교”로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1492년 스페인인들이 신대륙에 처음 도착하고,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처음 만났을때 원주민들을 인도의 어느 마을 사람들인 줄 착각하고 ‘인디언’, 즉 ‘인도사람’이라 호칭한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이 신대륙의 벌거벗은 원주민들을, 비록 원시적인 모습이지만 자연과 일치된 삶을 살아가는,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 묘사한다.

콜럼버스 역시 이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에덴동산의 새 아담과 새 이브들이라고 소개했으며, 콜럼버스가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록한다.

“이 사람(인디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칭송받을 만 합니다. 인디언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탐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남의 소유물을 결코 탐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믿고, 존중하며, 사이좋게 살아갑니다.”

콜럼버스는 “인디언들은 복음에 굶주린 사람들이기때문에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대거 크리스천이 될 사람들이다”라며 스페인의 인디언선교를 촉구한다.

그러나 정작 스페인인들이 신대륙에 도착해 접하게 된 인디언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이상한 말로 떠들어 대고, 체격도 왜소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고결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인디언은 사람이 아닌 짐승”

스페인 정복자들의 원주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진 결정적 원인은 무엇보다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였다. 

정복자들이 신대륙을 찾아온 것은 십자가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들에게 금과 영광이 신대륙 이주의 첫번째 이유이고 목적이였다. 원주민들은 일확천금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공짜로 노동력으로 착취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다.  

콜럼버스 역시 신대륙 뉴 스페인의 총독으로 인디언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악명높은 스페인의 노예제도 ‘엔꼬미엔다’(Encomienda) 제도의 시작을 허용했다.

정복자들은 차츰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이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소르본느 대학 신학장이자 스페인 최고의 지성인이였던 루비오(Palacio Rubio)는 ‘태어날 때부터 주인 또는 노예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인들은 이성으로 행동하는데 인디언들은 감성에 지배받고 있는 좀 떨어진,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인디언과 유럽인(스페인인)의 관계는 아이와 어른, 여자와 남편의 관계처럼 똑같은 관계가 될 수 없고 스페인 정복자들은 인디언들을 보호하고 가르쳐야 할 주인(master)이다.”

이 견해를 받아들인 식민지 총독부의 역사가 오비에도(Gonzalo de Oviedo)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디언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Bestia)’이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의 신대륙 역사책에 보면 다음과 같이 경고를 한다. 

“만일 스페인 군인이 인디언들과 단 둘이서 싸우게 된다면, 절대 칼로 인디언들의 머리를 치지 말라. 인디언의 해골은 유럽인의 해골과 같지 않고, 돌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에 크리스챤 군인이 칼로 내리치면 그 칼이 부러지기 때문이다.”

그후 16세기 중반 유럽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권위자이자 법률가인 후안 세뿔베다는 원주민을 ‘야만인(Barbarian)’이라 규정하고, 이러한 야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위해서는 먼저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다스려야 됨을 강변한다.

“라스까사스의 삶과 회심”

라스까사스

인디언들의 사도로 알려진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1484-1566)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신대륙에 오게 된다. 

라스까사스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후 불과 9년 뒤, 스페인의 최고 학부 살라망까 대학에서 법학교육을 받은 후 신대륙의 중심지인 히스파니올라 (현 도미니카 공화국)에 이주한다.

젊고 야심많은 라스 까사스의 이민 동기 역시 세상적인 성공과 부(Gold)를 움켜쥐는 것이였고, 얼마 지나지않아 그는 수십명의 인디언 노예를 거느리는 노예농장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고 그 회심의 경험을 통해 노예제도의 잘못됨을 깨닫게 되고 평생 노예제도의 폐지와 인디언들을 보호하는 일에 삶을 바치게 된다.

그의 회심의 계기는 1511년 12월 21일 노예제도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폐지를 촉구한 안또니오 몬떼시노의 설교로부터였다.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또 어떤 명분으로 무고한 인디언 형제들을 가장 잔악한 노예제도의 희생물로 삼는것입니까?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들은 우리와 같이 지적능력, 또한 영혼을 소유한 인간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이 인디언 이웃을 마치 내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야 할 의무를 가진것이 아닙니까?”

라스 까사스는 몬떼시노의 설교를 들으며 최근 자기가 목격했던 노예 시스템에서 착취당하던 인디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탄광에서 금을 캐다가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죽어간 인디언들, 부모들이 다 강제로 징용되 마을에 홀로 버려진 채 엄마의 젖이 없어 죽어간 수백명의 갓난 아기들, 시노아 섬에서 개가 물어뜯어 창자가 터진채 죽어간 인디언 추장 등등의 기억이 생생했다. 

노예시스템은 단순한 경제적 시스템이 아니라 사실은 영적이슈였다. 하나님께서는 인디언들을 유럽인들과 동일하게 사랑하시며, 그들을 착취하는 것은 결국 그들을 살인하는 행위이며, 그들을 형상(Imago Dei)들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그는 인디언들을 그리스도가 대신 고난을 받으신 소중한 존재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봐야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그리스도인들은 때론 인디언들의 입장과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구스타보 구띠에레스 및 다른 해방신학자들은 라스 까사스를 ‘남미 최초의 해방신학자’라 불렀다. 

마침내, 라스까사스는 자기 소유의 모든 노예를 풀어주고 히스파니올라 총독에게 이러한 자신의 결심을 보고하고 그날 이후 엔꼬미엔다 폐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향후 50년동안 헌신하게 된다. 

하지만, 인디언들을 똑같은 사람, 동반자, 인격체로 보지 못했던 교회는 라스까사스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인디언의 착취는 형태만 달리한 체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극심한 빈부현상을 낳는다.

“순수한 열정과 바른 선교”

197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교회의 선교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오늘날 18,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 18,000명 선교사들은 소중한 헌신의 간증이 있고 순수한 열정이 있다. 그러나 오늘 라스까사스를 통해 조명해보는 교훈은 우리에게 순수한 열정과 동기가 바른 선교, 참된 선교로 직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15세기 말 신대륙의 발견후 하나님께서 스페인을 들어 열방의 빛을 전하실 것이라는 순수한 열정가운데 시작된 스페인의 선교가 국가의 강력한 지원과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부장적 선교, 부패된 선교로 시대적 사명을 감당치 못했던 모습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또한 아무리 신학적 깊이가 있는 학자라도 바른 인간 이해가 없을때 잘못된 인간론을 갖을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들을, 이웃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복자의 행동들을 정당화시키는 이론으로 쓰여졌음을 본다.

물론 500년이 지난 21세기의 선교에서 지난날과 같은 노골적인 인종편견, 가부장적 선교, 힘의 선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복음주의 교회의 선교에는 아직도 바른 인간이해에 바탕을 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육신적 선교보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려하고, 선포하는 선교가 은연중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삶의 진솔된 만남의 광장에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Logos)은 친히 당신의 시간(kairo)에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그리스도 자신이 삶의 변화를 가져오시는 선교의 주체이심을 가르쳐 주신다.

바라기는 우리 18,000명 되는 선교사들의 사역 가운데 이러한 귀한 사역의 ‘면류관’들이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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