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언니, '여성'을 이야기하다
교회 언니, '여성'을 이야기하다
  • 유영
  • 승인 2016.05.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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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아쉽게도 교회에서는 여성 혐오 논쟁은커녕 여성 이야기 조차 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글을 쓰는 기자도 남성중심적 세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30년 넘게 그렇게 지냈다. 이런 생각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지금도 안에 있는 괴물이 불쑥 튀어나와 아내를 비롯한 많은 여성을 차별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차별을 심하면 여성혐오를 안 한다기 보다는 못하는 게 옳은 표현이다. 자기 검열과 아내 검열을 최대한 받는 탓이다. 

이 사실을 알도록 기초를 놓아준 책 중 하나가 양혜원 작가의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다. 기독교 서적 중 대중적 여성 관련 책으로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 성차별이 얼마나 내재화했는지 살펴보고 고민하게 많은 도움을 준다. 뒤늦게 책을 읽은 기자가 출판한지 4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서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프리랜서로 두란노 출판사의 월간지 <빛과소금>에 기고하던 시기였다. 최근 여성 혐오 논란을 이해하고, 교회 여성을 이야기할 기초를 쌓기에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에 당시 저자 인터뷰를 <빛과소금>에 허락을 받아 올린다.

교회 오빠'가 대세지만, 교회에는 오빠보다 언니가 많다. 교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속 깊이 있는 힘든 이야기는 오빠가 아닌 '교회 언니'와 더 많이 나눈다.

경험상 그런 교회 언니들은 정답같은 말만 들려준다.(누나에게 들어도 다르지 않다.)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듯 말해도 말씀을 보라거나, 더 기도해 보라는 수준을 넘지 않는다. 아쉽게도 이런 대답은 언제나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가끔은 박제 당하듯 신앙 이론 속에 내 삶이 구겨 넣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다른 언니를 찾아도 대부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러한 교회 언니와 결이 다른 한 언니가 지난 2012년 겨울 책을 냈다. 그 언니는 교회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언니와 무엇인가 다른 느낌이 든다. 언니는 자신을 애매한 지점 어딘가에 끼인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한 자신의 삶을 함께 돌아보며 교회 여성들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받기 원한다고 말한다. 

언니는 교회에서 흔히 사모로 불리는 존재다. 그런데 사모라고 불리는 건 사양한다. 목사 아내라는 소개를 선호한다. 주체적 표현이라 그렇다고 한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사모로 살기 어려운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남편이 전도사가 되자마자 여성학도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교회에서는 급진적으로 보이는데,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교회와 여성학 사이에 끼인 것 같다.

공교롭게 직업도 끼인 존재로 살아야 하는 업종이다. 우리말과 영어 사시에 낀 번역가다. 그것도 기독교 출판계에서는 알아주는 번역가로 지낸다. 유진 피터슨 전문 번역가로 유명한데, 저자의 표현을 가장 확실히 전달할 우리말과 표현을 찾기 위해 머리 아프도록 고민하며 지낸다. 

영어와 우리말 사이에 끼어 사는 언니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도 냈다. 이젠 번역가와 작가 사이에도 끼어 지낼 모양이다. 심지어 "번역을 할 때는 자기 글이 휴식 같고, 자기 글을 쓰면 번역이 휴식 같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 언니 이름은 양혜원. 그런데 호칭을 작가로 해야 할지 번역가로 해야 할지 애매하다.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데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저자 인터뷰로 진행했으니 그냥 작가로 부르는 걸로.

여자로 살기, 쉽지 않다

양혜원 작가는 한국에서 살기 어려운 '스펙'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가하기 좋아하는 경력으로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대학은 서울대 불문과를 나왔다. 졸업 후,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이랜드에서도 일했다. 온누리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전문인 선교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퇴사 후, 구도자들이 찾는 '라브리공동체'에서 협동간사로 6년여를 섬겼다.

이후 많은 이가 선망하는 잘나가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살았다. 책을 썼을 당시에는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 과정도 수료했다. 지적인 이미지에 여성스러운 외모라는 평가도 많이 받았다. 화려한 여성의 길을 걸었을 것 같은데, 그런 교회 언니 양혜원 작가가 처음 꺼낸 말은 "여자로 사는 건 쉽지 않다”였다. 완벽해 보이는 이런 언니도 여자로 살기 어렵다니, 대체 우리나라에서 한국교회에서 여자로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양혜원 작가의 스펙은 어렵게 살아온 여성의 삶을 방증한다. 양 작가가 태어나던 날 할머니가 쓰러졌다. 우연한 일이었지만 친지들은 양 작가가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어린 가슴에 깊이 박혔다. 아들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아들 못지않은 딸이 되고 싶었다. 이후 남자에게 질 수 없다는 의지로 살게 하는 의지로 작용했다. 육체적 힘에서는 밀리지만, 공부와 논쟁에서 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대학 진학도 다른 이유가 없었다. 아들이라는 기준에 자신을 끼워 넣었던 시기를 보내면서 아버지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서울대를 간 것도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도 서울대를 나왔던 터라 서울대 입학을 자녀들에게 강조했다.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자의 기준에 스스로 맞춘 여성으로 자랐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끼인 사람으로 자라면서 처음으로 끼인 존재의 고뇌를 맛보았다. 늘 괴리를 느꼈지만 설명할 말도 찾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두고 살았다. 

목사 아내가 페미니스트 된 까닭

양혜원 작가가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남편과의 관계가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4년 동안 쉬면서 목회자의 길을 가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생계는 양혜원 작가가 번역 일로 해결했다. 남편 뒷바라지를 한 것이 아니라 동지이자 동등한 관계로 살던 시기로 여겼다. 그런데 남편이 전도사가 되고 부부의 파트너십은 바로 깨졌다. 흔히 목회자 아내에게 부여되는 사모의 삶이 양혜원 작가에게 강요됐다.

"이전까지 같은 평신도로 같이 예배도 드리고, 같이 활동도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전도사가 되면서 제자리가 너무 달라진 거예요. 교회 안에서 말이죠. 그게 충격이었어요. 남편과 파트너라고 생각했는데, 파트너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파트너는 제 착각이었어요. 

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이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았어요. 주변에서 이제 남편이 신학교 갔으니 너는 들어앉아서 애만 낳으면 되겠다고 했어요. 남편과 나는 처음부터 파트너 의식으로 같이 살아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신학교를 갔다는 이유로 남편은 갑자기 자리를 확고히 잡고, 나는 들어앉아 애나 낳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나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이런 질문에 답을 낼 수 있는 학문이 여성학이었다. 처음부터 여성학으로 답을 내려 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한 기독교 세계관으로 규명을 시도했으나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게 도와준 유진 피터슨의 일상과 영성 개념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접한 여성학은 많은 답을 주었다. 자신의 감정과 그동안의 괴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언어가 존재했다.

여성학에는 남성 입장에서 해석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이야기하는 여성이 있었다. 죄론과 구원론에 입각한 일반적 인간 이해보다 폭넓은 이해를 여성학을 통해 배웠다. 젠더 관점 인간 이해에서 말이다. 기독교는 여전히 인간 이해에 젠더 관점을 넣지 않는다. 기독교 세계관이든 영성이든 '백인, 남성, 중산층, 개신교인'이라는 보편적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라는 게 보편적 입장에 끼워 맞춰지던가.

"복음주의 신학에도 이제는 젠더 관점이 필요합니다. 보편적 입장으로 인간을 이해하면, 여성·장애인·가난한 자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어요. 여성신학과 진보적 신학들에서는 이런 관점에서의 이해를 많이 시도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세히 교회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와 교회가 얼마나 가부장적인지도 알 수 있어요.”

양혜원 작가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끼인 존재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오랫동안 자란 경험 때문인지, 여성학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남성 중심적 성 담론에서 탈피해야 하는 건 동의하지만, 가정을 넘어선 성은 감정적으로 동의하기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엄마, 현대 사회의 끼인 존재

'이러한 사실을 엄마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양혜원 작가는 자주 생각한다. 자신을 규명할 설명을 찾지 못한 채 엄마가 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잦았던 까닭이다. 그 기간 현대 사회가 살림과 양육은 물로 돈도 벌어야 하는 ‘원더우먼’을 엄마에게 요구하는 시기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라는 자리에서도 끼인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살았다.

양혜원 작가에게도 원더우먼으로 살라는 요구는 그대로 적용됐다. 전통적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는 끼인 자리에서 몇 년을 지냈던 시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육아는 양혜원 작가의 몫이었다. 사회에서 가장이라고 부르는 역할을 했지만, 주부로 엄마로도 살아야 했다. 남편은 집안 일을 거든다고 생각하며 지내던 시기였다. 남성들이 강요로 만들어 놓은 상황을 남편이라한들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지 않았을 터였다. 통념상 남성의 역할을 병행하며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단함은 어린 시절이나 결혼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공감과 관련한 이질감은 유산과 사산의 경험에서도 느꼈다. 양혜원 작가는 세 아이를 잃었다. 두 아이는 10주 만에 유산했고 마지막 아이는 36주에 사산했다. (현재 셋째 아이는 건강히 자라고 있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죽은 아이 때문에 아파하는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음에 더 좋은 아이를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위로는커녕 무언가 가슴에 진 응어리에 대한 질문만 남겼다.

"보통 여성들이 그런 일을 당하면, 계속 우리 문화에서 자란 사람은 우리 문화에서 배운 대로 처리합니다. 분명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본인은 삼키고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식이지요. 사실 유산을 슬퍼하는 일은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어른들은 '빨리 잊어라, 가슴에 묻어라'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위로가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 때문에 슬프다면 그 슬픔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 문화가 그것을 정상으로 용납하지 않다 보니 혼자 슬퍼하거나 막연히 우울하게 여기다 넘어가지요."

죽은 아이를 가볍게 여기는 경험은 병원에서도 이어졌다. 두 번째 아이를 유산했을 때, 습관성 유산 클리닉에 가야 했다.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 클리닉으로 향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데 의사는 세 번, 네 번 유산한 사람도 많은데 겨우 두 번으로 왜 그러느냐고 호통을 쳤다. 의사의 반응에 양 작가는 아연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경험한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신이 아이 낳기 대회인가요. 산모가 인큐베이터인가요. 잘 생각해 보면 불임과 실패한 임신을 대하는 우리 태도에서 성공주의나 승리주의의 만연함을 볼 수 있어요. 불임과 실패한 임신을 출산에 성공하려고 달려가는 실패 사례로 취급합니다. 그러다 아이 하나를 얻으면 '그것 봐라 하나님이 좋을 것으로 주셨다'면서 승리주의나 성공주의로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결국 죽은 아이를 실패한 사례로 만들어 버리지요."

시간이 흘러, 외국에서 출판된 유산 관련 서적을 보며 죽은 아이와 이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신을 계획했던 부부라면, 그 아이의 미래까지 품었기 때문에 수정체도 생명이라고 봅니다. 이 생명에게 마음을 준 것이잖아요. 유산하고 다음에 오는 아기는 다른 아이지 지금 죽은 아이를 대체할 수는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보내는 애도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외국 병원에서는 사산할 경우 산모가 아이를 안아 보게끔 한다. 이별할 수 있도록 돕는 배려다. 더불어 죽은 아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이 이름을 부른다. 죽은 아이가 실패한 사례가 아닌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모가 알 수 있게 돕는다.

작가와 번역가 사이에서

양혜원 작가는 외국의 유명 저자들의 서적을 먼저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번역가가 된 것은 공부할 수 있어서였다. 대학원에 가서 깊이 공부하고 싶었지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생계 수단이자 공부하는 길이었다. 다행히 유명 번역가로 알려지면서 더없이 좋은 공부의 기회를 많이 얻었다.

유진 피터슨의 책을 보면서 한국교회가 얼마나 유교적인지 알 수 있었다. 유교적인 가치가 성경적인 것 마냥 포장된 사실도 배웠다. 하지만 외국 저자들의 책에서 배울수록 한국교회와 괴리를 크게 느꼈다. 가령 서구식 개인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보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건강한 개인주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유교 문화으로 집단의식이 강한 탓이었다.

"우리는 자아와 타인의 경계선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라는 개념을 배웁니다. 이건 힘 있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폭력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관계는 위계적이고, 철저히 윗사람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윗사람은 '내가'라는 말 대신 호칭으로 자신을 칭합니다. 반면 아랫사람은 '제가'만 말하지요. 우리 사회는 아직 개인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목사님 중심의 집단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지요."

양혜원 작가는 번역서가 아닌 우리말로 우리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책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교회가 얼마나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며, 성차별과 권력 다툼이 얼마나 심한지 설명하기 위해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조합해 사용하는 유진 피터슨의 글을 가독성 좋게 번역하려 할 때마다 이 소망은 더 커진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교회 언니

어디에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양혜원 작가는 상처받은 치유자다. 너무 흔한 표현인데, 막상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진지하게 돌아보며, 그 이유를 여성의 언어로 풀어간다. 그리고 공감한다. “내가 다 경험해 봐서 아는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소통하기 원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 원한다.

양 작가가 40년 넘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의 아픔과 상처, 고통과 지혜를 이야기하는데 인터뷰 지면은 너무 짧다. 남은 이야기는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에서 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럼 분명 양혜원 작가와 만나 커피 한잔 마시며, 대화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 교회 언니처럼 사람을 향한 따뜻한 눈을 가지길 바랄 테니까. 그리고 내 이야기를 공감해 주길 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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