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주체와 교회
신자유주의적 주체와 교회
  • 장준식
  • 승인 2016.05.25 0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최고 키워드는 '데모'였다. 1990년대 대학생들의 최고 키워드는 '취업'이었다. 현재 대학생들의 최고 키워드는 '생존'이다.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낭만'이 있었고, 199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현재 대학생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래서 한국은 '헬조선'이라 불린다.

1997년 IMF 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왕은 '금융자본'이다. 지금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자본(돈)'이 세상의 왕노릇을 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자본이 우리에게 대항해야 할 '적'으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병철은 마르크스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자본은 자신의 번식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착취하는 것이다. 자유 경쟁 속에서 자유롭게 해방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자본이다"(심리정치 13쪽).

신자유주의 체제가 무서운 이유는 눈에 보이는 적이 없다는 것이다.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기' 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해야 한다'는 외적 강제 대신 '할 수 있다'는 내적 강제를 통해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자기 착취를 하게 끔 유도한다. '할 수 없다'며 내적 강제인 '할 수 있다'에 저항하는 자는 무능력한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고 만다.

요즘 대학생들은 모여서 ‘데모’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공공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모여서 ‘꿈’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넘어야 할 산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따로 각자 알아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자기계발’에 힘을 쏟을 뿐이다. ‘할 수 있다’는 자기 동기, 자발성, 자기 주도적 프로젝트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아는 신자유주의적 주체이다. 즉, 신자유주의 체제에 묶여 있는 주체이다. 한병철에 의하면, 신자유주의적 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 목적에서 자유로운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심리정치 11쪽). 여기서 존재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무한한 자유 경쟁의 토대를 만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주체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노예의 상태에 놓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체제의 주체는 개개인이 고립되어 있어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 기회를 박탈 당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관계의 어휘이다”(같은 책 12쪽). 결국 타인과 함께 자아를 실현할 기회를 박탈당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개인은 우울할 뿐이다.

고립에 의한 우울증과 자기 착취에 의한 소진증후군을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교회가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을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안정제’ 역할을 하는 데서만 머문다면 마르크스가 했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종교는 아편이다.”

‘해방과 자유’는 기독교의 존재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현재 당하고 있는 억압과 죽음의 상태에서의 완전한 ‘해방과 자유’이지 현재의 불의한 체제를 견뎌내게 하는 ‘안정제’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뒤 사흘 만에 부활한 사건은 사회 전복 사건이지,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한 마음의 안정제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개인의 그 어떠한 고립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과 십자가는 자기 해방이지 자기 고립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누리는 참된 자아의 실현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 있는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주체가 경험하는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을 위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유를 돌려주도록 신자유주의 체제 자체를 해체시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 자칫 하면 복음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할 수 있다’를 더 강화시키는 데 오용될 수 있다. 교회는 이러한 위험성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복음이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해방시키는 데 올바로 사용되도록 선지자적 목소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

장준식 목사 / 컬럼버스감리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