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적 십일조, 사도들이 전한 바 없다
율법적 십일조, 사도들이 전한 바 없다
  • 신성남
  • 승인 2016.05.31 00:2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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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변절과 십일조 강요 (1)
신성남 집사의 <한국교회의 변절과 십일조 강요>(개정판)을 저자 허락을 얻어 연재합니다. 한국교회와 한인 교회에 퍼진 왜곡된 십일조 논의가 건강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말 2:13)."

신성남 집사 (<뉴스 M> 자료 사진)

2004년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인 '한미준'에서 조사한 십일조에 대한 통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신교도 중 매월 정기적으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교인은 전체의 약 30%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근자에는 그 비율이 그 때보다 더 현저히 높아졌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교회들이 십일조를 더욱 열심히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십일조 없는 교회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2011 년 미국 ‘Barna Group’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 교인 중에 십일조를 하는 비율은 대략 4%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한국교회 내에서 교역자들이 이 십일조 제도에 대하여 부정적 발언을 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단 내에서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는 일이 됩니다. 그럼에도, 일찍이 손봉호 교수님처럼 "십일조는 의무가 아니다. 신약 성경이나 초대 교회에는 십일조 사례가 없다"라고 소신을 가지고 명확히 입장을 밝히신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말 희한한 점은 툭하면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도 서로 쉽게 갈라서며 교단 분열을 밥 먹듯이 하던 한국의 교회들이 성경적 근거가 매우 취약한 이 십일조는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대다수 신자들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율법의 무거운 짐을 오직 한국교회만이 일심동체가 되어 반강요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국의 많은 목사들은 교인들의 등골이 빠지든 말든 이 십일조라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아마 한국처럼 이런저런 요상한 명목으로 많은 돈을 챙겨 가는 교회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십일조 강요가 초신자나 가난한 교인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지대합니다. 다른 무슨 특별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교회 내에서 괜히 위축되고 믿음이 약한 자로 손가락질을 받는 느낌으로 지내게 됩니다.

또한 친척들이나 다른 분들에게 전도를 하면서 교회에 나오기를 권면하면, 제일 먼저 튀어 나오는 말이 "나도 교회에 나가게 되면, 십일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부담스러운 질문입니다. 이보다 더욱 심하게 감정적으로 반발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사들이 십일조 장사를 해서, 자식들 유학 보내거나 고급차를 타고 다닌다"는 식입니다. 이런 반응들은 십일조 강요가 전도의 문을 얼마나 크게 막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개척 교회가 크지 못하는 데에도 십일조가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교인들이 작은 교회에서 십일조를 못 내면 너무 표가 나서 불편하기 때문에, 크게 표가 나지 않는 대형 교회로 이동하여 스스로 작정한 만큼의 헌금 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중대형 교회로의 수평 이동 현상에는 이 십일조와 기타 잡다한 헌금 강요도 크게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한국교회 내에는 기복적인 토속 신앙의 영향이 원래 강한데다가, 일부 목사들이 이를 악용하여 십일조를 축복의 수단으로 미신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십일조 제도에 대한 반론을 간략히 검토하고, '십일조를 하면, 복 받는다'는 허구적인 미신과 십일조 강요의 부당함에 대하여 주로 논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십일조의 쟁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다른 분들이 이미 지적하였던 주장이나 논리가 다소 중복되더라도, 이는 처음으로 이런 문제를 접하시는 분들의 체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너그럽게 양해하여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또한 일부 목사님들은 십일조가 교회의 중요한 재정 수입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다른 반론을 내면 마치 이단처럼 취급하며 몰매를 주시기도 하는데, 신앙 양심을 걸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구약 신정 국가의 십일조는 사실상 세금이었다

원래 구약에 언급된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바친 십일조처럼 일회성인 경우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신정 국가 체제에서 제사직을 전문으로 맡은 레위 지파를 위한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용도로는 절기 행사 비용으로 또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거의 세금에 가까웠습니다. 출애굽 이 후 땅을 분배받은 나머지 지파들과는 달리, 제사직을 맡은 레위인들에게는 다른 수입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백성들이 십일조를 온전하게 내지 않으면, 당장 제사직을 맡은 레위인들과 가난한 자들을 굶게 만드는 아주 심각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십일조를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따르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시금석으로 간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제는 모든 신자가 다 '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사직이 더 이상 별도로 필요 없는 신약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누구의 몫으로 드려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가 '성직자'이니 목사의 몫이라고 하는데, 그럴 듯하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의 목사직은 구약의 성직자인 제사장직이 아니고 신약 성경에 언급된 '가르치는 장로'나 '교사'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신자가 다 스스로 제사장의 신분으로 주 앞에 직접 설 수 있는 성직자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리적으로 신분상 성직자를 인정하는 가톨릭조차도 현재 율법적인 십일조 헌금을 걷고 있지 않습니다.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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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명 2016-06-01 18:28:49
이름이 쓰여진 헌금봉투에 헌금을 내다보니 얼마내는지 목회자가 다 들여다보고 있는것이 불편하더군요. 저사람은 얼마짜리 저사람은 얼마짜리 그렇게 안볼수가 있겠습니까. 돈많으면야 떳떳하게? 어깨펴고 내련만 액수가 빈약하다보니 중대형교회 이상으로 옮겨가게 되는 요인중 하나로 작용했던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글 이젠 그만 2016-06-01 10:18:18
신성남, 그는 과연 <교회 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
http://www.hdherald.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9

이런 글 이제 그만 2016-06-01 09:57:02
교회 비난 일색이고
목사의 설교를 인간의 말로만 듣고
예배를 등한시 하고 십일조 하지 않는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