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안전문
고장난 안전문
  • 송병주
  • 승인 2016.06.03 14: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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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의 젊은이 숫자보다 중요한 것"

송병주 목사 / <선한청지기교회>

청년사역 세미나를 하면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청년들이 비어가는 교회에 대책이 뭐냐고 질문받을 때 마다 꼭 대답하는 당부의 말입니다. 모두가 애매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저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참 부담이 됩니다. 적당히 프로그램과 방법론 말하는 것이 쉽지만 이 부담 되는 현실을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을 싼 노동력으로 소모 시키지 말고 그들이 소비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지금 교회안에 청년들이 많으냐 적으냐 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과 등록금에 허덕이고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타락한 세상 문화 즐긴다고 교회 안 나오는 젊은이는, 이런 배부른 소리한다고 교회 안 나오는젊은이들은 일부입니다. 오히려 탐욕으로 부패한 세상에 소모당하느라 교회 못 나오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등록금을 줄이고 장학금을 확대하는 일, 비정규직을 줄여가고 정규직 일자리를 확대하는 일이교회에 몇명의 젊은이가 있느냐 보다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먼저 가져야할 관심은 이것입니다. 젊은이 부서 성장의 방법론은 그 다음입니다."

젊은이를 숫자로 보는 눈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안에 있는 젊은이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목적으로 봐야 합니다. 젊은이를 수단으로 보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세상은 젊은이들을 알바로 비정규직으로 등록금을 위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으로 봅니다.교회조차 필요한 일꾼으로 여기고 있는 값싼 노동력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교회가 미래를 위해 젊은이를 걱정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사, 성가대원처럼 지금 당장의 필요를 위해 걱정하고 있습니까? 고장난 안전문으로 인해 죽어간 젊은이를 보면서,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교회의 고장난 안전문이 누구를 또한 죽음으로 내 몰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시키는대로 책임감 있게"

그 어머니가 절규합니다. "차라리 우리 애가 게임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는 아이였으면 지금 살아있을것입니다. 집에 보탬이 되려고 끼니 걸러가며 시킨 대로 일하다가 이렇게 죽임을 당했습니다"고 눈물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오열합니다. "내가 '회사 가면 상사가 지시하는 대로 책임감 있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우리 사회는 책임감 강하고 지시 잘 따르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죽음뿐인데 애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후회됩니다"

어느틈에 우리는 ‘시키는대로, 책임감 있게’라는 말에 의문표를 던져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세월호에서도 시키는대로 책임감있게가 행동한 사람은 죽음아니면 살아도 깊은 트라우마만 남았습니다.

더구나 규정을 지킬 수 없는 구조악을 만들어 놓고, 이런 젊은이에게 그가 사고로 죽은 것은 메뉴얼 대로 하지 않은 본인 과실이라고 말합니다. 애도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이 안전상의 문제로 부착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메모지 한장까지 챙기는 꼼꼼하고 섬세한 안전의식이 왜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는 그렇게 둔감할까요? 국회위원 조문 온다고 꽃 한송이 하얀 장갑까지 의전으로 챙겨드리는 그 사려깊은 마음이 왜 그 비정규직 젊은이에게는 그렇게 소홀했을까요?

몇년 사이에 천문학적 변호사 수임료를 챙겨든 전관예우를 누린 검사와 판사의 이야기가 겹칩니다. 오피스텔만 수십개라는 말부터, 한건에 몇십억이 오갔다는 뉴스가 넘치더군요. 이 뉴스를 보면서 한 19살 청춘은가방속에 든 컵 라면도 먹지 못한채 누군가를 보호하는 안전문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잃었다는 소식을 보는 일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한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끝낼 일일까?"

다시 한번 바라지만,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죽어간 젊은이 한 사람 애도하고 끝나면 또 냄비처럼 끓고 보상금 이야기로 식어버릴 이야기로 끝날까 두렵습니다.

전직 서울 시장들부터 이런 구조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찾아야 합니다. 왜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도록 왜 개선이 되지 못했는지, 누가 이런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예산을 갖고 장난을 쳤는지 바로 잡아야 합니다.

19살 젊은이가 죽었기에 그 나이의 연소함 때문에 사람들이 안타까워해서는 안됩니다. 사회 구조가 몰고간 죽음이기에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또 쓰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울 지하철 구의역 만이 아니라 그 고장난 안전문이 우리 사회 전반에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하나만이 아니라, 해양부와 해결 그리고 해운업체간의 구조악이 만연한 것처럼, 국방부와 방산업체간의 구조악이 만연한 것처럼, 국토부와 건설업체간의 구조악이 만연한 것처럼, 여전히 이런 지속적인 문제속에 젊은이 뿐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 자녀, 친구들이 희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응답하라 본 훼퍼"

이제 교회는 우리 교회 젊은이가 몇명인지 자랑하는 일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그들을 교회에 데려올 수 있는 전략 개발같은 무신론적 기획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이제는 교회 밖에서 청년세대의 고통과 현실을 끌어안을 수 있을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들의 고통에 교회가 응답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필요에 청년들에게 “응답하라~”고 호통치면 안됩니다.

청년들을 어떻게 교회 울타리 안으로 오게할 것이 기획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교회 울타리를 넘어 청년들에게 나아갈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청년들을 교회에 헌신시킬까 생각하는 것보다, 어떻게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헌신할 수 있을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고장난 안전문은 구의역에만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안전문이 고장난 이들이 안전문을 유지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슬퍼하고 애도하는 일이 교회가 할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미친 사람이 휘두른 칼에 죽고 다친이를 위로하고 돌보는 일도 해야 하지만, 그 미친 사람의 손에서 칼을 뺏는 일도 해야 한다고 외쳤던 본훼퍼의 사명도 생각해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를 목적으로 여기지 않고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와 교회에 내일은 없습니다. 지금은 “응답하라 본훼퍼”를 세상속의 젊은이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누구 그 외침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송병주 목사 / <선한청지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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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인간 2016-06-07 03:34:10
오랜만에 송목사님 글을 다시 읽게되서 기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거의 행동하지 않고도 ":순종" 했다는 타이틀을 받읕 수 있는 교회의 가르침이 너무 매혹적인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왔는데 ...제대로 보시는 목사님도 계시다는 것이 조금위로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