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은혜'로만 사역할 것인가
언제까지 '은혜'로만 사역할 것인가
  • 이용필
  • 승인 2016.06.1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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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부교역자 '사역 계약서' 모범안 제시…사역 기간, 사례비, 휴가 등 명문화
사실상 비정규직인 한국교회 부교역자는 청빙 절차를 밟을 때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기윤실은 부교역자들의 처우를 위해 '사역 계약서' 모범안 언론 발표회를 열었다. 사진 왼쪽부터 조성돈 교수, 강문대 변호사, 고형진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4대 보험 가입률 '3.2%', 평균 재임 기간 '2.9년', 계약서 작성률 '6.3%'.

지난해 5월 기독교윤리운동실천(기윤실·홍정길 이사장)이 발표한 '한국교회 부교역자 사역 현황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는 교회 부교역자들의 팍팍한 삶을 고스란히 보여 줬다. (관련 기사) 설문 조사에 임한 부교역자 949명은 경제문제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호소했다. 특히 응답자 중 상당수가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어렵게 고용이 된다 해도 근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교역자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었고, 근속 연수는 길지 않았다. 담임목사 눈 밖에 나면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겪었다. 교회와 부교역자는 고용-피고용 관계지만, 청빙 절차를 밟을 때 부교역자 93.7%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계약을 맺으니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분당의 한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는 A 목사는 청빙받을 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당연히 사례비도 얼마나 받는지 몰랐다. 그는 "하루 평균 10~12시간 일한다. 매일매일 대장(담임목사)이 업무를 지시하는데 이를 처리하느라 급급하다. 다른 곳보다 부교역자 이직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교회라는 특수성도 감안해야겠지만, 선을 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부교역자 79.8%는 설문 조사에서 "언제까지 사역할 지 협의하지 않고 사역한다"며 '계약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런 가운데 사각지대에 놓인 부교역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성돈 교수는 "계약서 하나로 부교역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강문대 변호사는 "'모범안'은 관점에 따라 혁신적일 수도, 반대로 애매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첫 발을 뗐으니 추후 보충해 나가면 된다. 이 모범안이라도 교회에서 정착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고형진 목사는 "'을'이었던 부교역자들이 교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어렵다. 그들을 위한 안전장치로 사역 계약서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기윤실은 6월 10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부교역자 사역 계약서 모범안 언론 발표회'를 했다. 조성돈 교수(실천신대)는 주먹구구 방식으로 이뤄지는 계약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부교역자들 인식도 변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부교역자'를 담임 목회를 하기 위한 훈련 과정으로 이해했지만, 지금은 '소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임시직이 아닌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교역자들이 안정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부교역자의 안정된 사역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약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계약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목회 활동을 '노동'이 아닌 '성직'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교역자가 '계약서'를 요구하면, 은혜롭지 않거나 세속적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법률적으로 부교역자 지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종속적인 위치에서 임금을 받기 때문에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과 수임자라는 의견이 맞선다. 수임자는 각별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법원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는 "거칠게 말하면 전도사는 근로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 부목사는 대체로 (근로자로)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부목사도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례도 나오고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위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부교역자 처우 문제다.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부교역자는 사역 도중 사고를 당하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강 변호사는 "4대 보험이 안 된다면 교회가 부교역자의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을 들어주는 등 보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역 계약서, 부교역자들 보호 장치 될 수 있을까

기윤실은 이날 '한국교회 청빙과 사역에 관한 서약 – 부교역자 사역 계약서' 모범안을 제시했다. 제1~8조까지로 구성된 계약서에는 동역 기간을 포함해, 1일 사역 시간이 8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 이밖에도 사례비와 휴일 및 휴가, 전별금, 서약 해지 등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다.

고형진 목사(강남동산교회)는 기윤실이 제시한 사역 계약서를 바탕으로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사역 계약서를 만들었다. 고 목사는 "부교역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계약서를 도입했다. 교회 상황에 맞춰 자구를 수정했다. 당회 동의를 구한 뒤, 부교역자들과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미흡한 점도 있다. 강 변호사는 "모범안에 부교역자가 '근로자'인지 '수임자'인지 애매하게 나와 있다. 부교역자가 권위와 존엄을 잃지 않고 사역에 종사할 수 있도록 최소 기준을 설정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사역 계약서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고 목사는 "담임목사가 함부로 (부교역자를) 해고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계약 내용을 바탕으로 '연장' 없이 부교역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범안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고 목사는 "적어도 지금과 같은 교회 환경에서 부교역자들이 버티는 게 참 힘들다. 사역 계약서가 '안전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일단 첫발을 뗐으니 추후 보완, 수정해 나가면 된다. 이 모범안이 교회에서 정착될 수 있기 바란다"고 했다.

아래는 기윤실이 제시한 '사역 계약서' 모범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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